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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총쇄록 답사기 (9) 자이선·연처초연 독특한 바위와 영험한 기운 열린 광장이었던 되살려 내고픈 그 때 그 명승지 신령에 기도하던 자리 글자 새기고 단장해 개방 지금도 다수 흔적 존재 지금 함안읍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 풍경이지만 130년 전에는 빼어난 명승이 있었다. 자이선(自怡墠)이다. 얼마나 멋진 곳이었을까? 을 따라가보면 그럴 듯한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갈라터진 돌등에 새겨진 전임 군수의 행적 자이선은 동헌이 등지고 있는 자리였다. 지금 함안초교와 함성중학교가 만나는 경계의 뒤편에 해당된다. 오횡묵은 1890년 6월 23일 처음 관심을 보였다. “비봉산 앞면을 보니 돌등 가운데가 갈라터져 휑뎅그렁하게 파인 것이 일부러 쪼개 깨뜨린 것 같았다.” 통인들의 대답은 엉뚱했다. “쪼개지기 전에는 부유한 아전들이 .. 더보기
경남도지사배 e스포츠 캠퍼스 대항전 열린다 경남에서도 e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원장 김영덕)과 경남e스포츠협회(회장 장기영)는 제1회 경남도지사배 e스포츠 캠퍼스 대항전(경남예스컵)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경상남도와 진주시, 경남교육청 진주교육지원청이 후원하는 예스컵에는 경남대, 경상대, 창원대, 진주교대, 동원과기대, 가야대, 인제대 등 9개 대학 10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한다. 또한 진주시 관내 16개 중고등학교가 참여하는 학교 대항전도 열린다.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 피파 온라인4, 카트라이더 모바일 총 3개이며, 11월 6일과 11일 예선을 거쳐 11월13일 경상국립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총상금 1200만원, 종합우승 트로피(경상남도지사상)를 두고 결승전을 벌인다. 김영덕 원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지역의 e스포츠 산업..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8) 함안대군물 함안대군물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한 해 두 차례 대규모 군악의장 그야말로 장관 복장부터 절차까지 전통 양식 꼼꼼하게 기록 관련 무형문화재 전무해 학자들 "재구성·활용을" 기존 행사 연계 제안도 군물(軍物)은 전통시대 군악의장으로 보면 된다. 군물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여태까지 확인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에는 진행 순서와 절차, 복장과 양태는 물론 참여 인원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평상시에 보통 규모로 치러지는 ‘군물’이 한 차례, 특별한 때에 대규모로 펼쳐지는 ‘대군물’이 두 차례였다. 진을 치고 전투까지 연출하는 대군물 1890년 3월 14일자 에는 오횡묵 군수에게 아전들이 대군물에 대하여 “봄·가을 군사 점고 때 거행합니다” 하고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좌수·..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7) 세시풍속 2 음력 3월 끝자락엔 봄을 보내며 아쉬움 달랬다네 여름 앞두고 '전춘' 풍속 즐겨 형식 자유롭고 여러 번 열기도 전문 재인 불러 재주 놀음 관람 먹을거리 더해져 풍성한 행사로 세시풍속에 대한 오횡묵의 기록을 보면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동작이나 행동은 물론 주변 경관이나 사람들의 반응에 더해 본인의 느낌까지 두루뭉술하지 않고 손으로 만지듯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적었다. 그 속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130년 전 당시 우리 지역의 민속 현장을 상세하게 알려 주는 소중한 대목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섣달그믐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세시풍속들이 많았다.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으나 수세에 관한 기록들이 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섣달그믐밤 뜬눈으로 새우다 지금..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6)세시풍속 1 새끼줄 엮어 5000명 힘겨루니 천지가 들썩들썩 줄다리기로 그해 작황 점쳐 면민 25% 참가해 장관 연출 승패 떠나 놀이 즐기기도 오횡묵은 역시 기록의 달인이었다. 여태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았던 당시 풍속을 곳곳에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오횡묵은 자기가 봤을 때 새롭거나 흥미로운 것을 자세하게 적었다. 에 적혀 있는 당대 세시풍속을 보면 지금 우리한테 잘못 알려진 것도 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있다. 바로잡고 고치거나 새로 되살려야 할 것이 그만큼 된다는 얘기다. 복날에 팥죽을 먹다 팥죽은 동짓날에 쑤어 먹는다. 지금도 그렇고 에서도 그렇다. “팥죽을 끓여 삼반관속에게 나누어 먹이고 동지음을 지었다.(煮豆粥 頒饋三班 作冬至吟)”(1892. 11. 3.) 삼반관속은 관아에 딸린 아전·장교과 ..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5) 성산산성 아라가야 점령한 신라가 쌓아 수백년 전부터 고적 인정 오횡묵 기록서도 '옛 읍터' 가치 관심 가진 흔적 보여 1991년 본격 발굴 시작해 목간·아라홍련 발견 성과 무진정·말이산고분군 등 생태역사관광 연계 가능성도 오횡묵은 성산산성을 두고 ‘옛 읍터(古邑基)’이고 ‘이름은 조남산(趙南山)’이라 했다. 그러면서 1890년 3월 2일 오전에 올라갔다. 부임 이튿날 읽은 에는 고적(古蹟)조에 ‘가야국 옛 터(伽倻國 舊墟)’로 소개되어 “북쪽 5리 성산 위에 있다. 성터가 완연하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 바로 성산산성이다. 목간의 최대 보물창고 성산산성은 1991년에 발굴되기 시작했다. 성을 쌓은 주체는 신라인이었고 연대는 600년대 초반이었다. 아라가야가 먼저 쌓았는 ..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4) 함안읍성의 지금 모습은? 조 씨네 돌담 감나무밭 언덕 범상찮다 싶었더니 성벽이라네 산지 중심으로 자취 뚜렷 민가에도 일부 형태 유지 잡초·흙만 정리해도 옛 모습 회복 충분 1510년에 처음 쌓고 1555년에 다시 쌓은 함안읍성은 오횡묵 군수 시절에 이미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오횡묵이 1889년 4월 22일 읽은 에 7003척이라 적혀 있고 닷새 뒤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며 "넉넉잡아 5리 정도(洽爲五里許)"라 했던 많은 구간이 그랬다. 다시 1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함안에 사는 사람들조차 함안읍성이라 하면 대부분 무너지고 허물어진 정도를 넘어 거의 없어졌다고 여기고 있다. 산지에 쌓은 읍성은 대부분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성벽과 치성에 더하여 마른해자와 명문 각석도 확인이 되었다. 옛..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3) 함안읍성의 130년 전 모습 북쪽은 장대 남쪽은 달구경 명소 동서남북 4문4색 서문, 지금 '성고개'에 위치 비밀통로로 쓰다 허물어져 남문은 민관 어울리던 장소 등불 낙화 구경 등 함께해 방 내걸고 치안 살피고 사람 출입 잦았던 동문 북문은 위치 탓 이용 적도 북장대는 군사지휘소·피서지로 활용 무너지지 않은 지과정 남쪽 성벽 함안읍성은 1510년 경상도에서 삼포왜란이 터졌을 때 처음 쌓았고 1555년 전라도에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고쳐 쌓았다. 오횡묵이 함안군수를 지낸 때는 이로부터 33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읍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889년 4월 21일 부임 행로에 읍성이 나온다. “(무진정 방향에서 오면) 지과정 오른편(서쪽)이 읍성이다. 북문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지과정 남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동문은 절반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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