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 3564

함안총쇄록 답사기 (19) 비 올 때까지 지냈던 코리안기우제

가물 땐 깜깜무소식 비 올 땐 억수처럼 경국대전은 최대 12차례 규정했지만 오횡묵은 공식 13차례 비공식 2차례 “몰래 쓴 무덤 부정 탄다”며 모두 파내고 신령·용 얽힌 영험처 옮겨 다니며 기도 해갈된 뒤엔 닷새 폭우로 수재도 겪어 가뭄은 예로부터 인간 사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는 엄청난 자연재해였다. 그나마 요즘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나름대로 대응할 방책이라도 있지만 옛날에는 그대로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재난을 맞닥뜨리면 대부분 백성들은 처음에는 나름 이겨내려고 애를 쓰지만 한계를 넘으면 임금이나 수령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조세를 거두고 지배하고 명령하고 집행했으면 그에 걸맞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임금이나 수령인들 별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효과가 있든 ..

함안총쇄록 답사기 (18) 지역민 사랑 독차지한 원효암·의상대

남녀노소 즐겨 찾으니 절 문턱 맨들맨들 소박한 당시 유일 사찰 칠석날 어린아이도 치성 수령도 시주에 적극 동참 원효암(元曉菴)과 의상대(義相臺)는 여항산이 북쪽으로 뻗어내리는 미산(眉山) 골짜기 가파른 비탈에 붙어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일대에서 북한군과 유엔군이 격전을 벌이는 바람에 불에 타서 칠성각(七星閣)만 빼고 옛날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원효암과 의상대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 하지만 130년 전 오횡묵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콘크리트 좁은 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속인데도 그때는 그랬다. 오횡묵은 여기서 재를 지내기도 하였고 일반 백성들 또한 친근하게 여기며 즐겨 드나들었다. 오횡묵이 치성 들였던 자리 1890년 1월 22일 아침 오횡묵은 왕대비의 생일을 ..

가본 곳 2023.05.28

손혜원 똘끼는 어디까지 갈까?

보름쯤 전에 전라도 목포 옛 도심 거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의 성우제 작가와 함께였다. 먼저 ‘창성장’에 들렀다가 문이 잠겨 있기에 ‘손소영갤러리앤카페’를 찾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소품도 하나 장만했는데 둘 다 괜찮았다. 이 두 곳은 2019년 초입에 신문 방송이 떠들썩하게 들끓었던 손혜원 당시 국회의원의 조카들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들이다. 옛 도심 거리는 지금이나 4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꿔져 있고 조금 더 차분해져 있는 것이 달랐다. 1. 조선일보류는 투기라 했고 그때 신문 방송들은 손혜원 의원이 투기를 위해 알박기 차원에서 조카들 이름으로 건물을 구입했다는 식으로 연일 보도해댔다.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목포시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활용했다고도 했다. 정치적으로 목적이..

함안총쇄록 답사기 (17) 한강 정구 놀았던 멋진 별천계곡

명망 두터웠던 선배 군수 한강 정구 즐겨 찾던 유적에 흔적 뚜렷 오횡묵, 여러 번 들러 찬양 글자 새기고 시집도 펴내 오횡묵보다 300년 가량 앞선 시기에 함안에서 군수를 지낸 인물로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년)가 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 모두에게서 배웠고 따로 한강 학파를 이룰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대 함안군수 가운데 인품과 학문이 가장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함안 사람들은 지금도 한강 정구를 많이 기억하고 높이 받들고 있다. 한강 정구의 작품 함안 사람들에게 정구는 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지역 역량을 끌어모아 를 편찬했던 것이다. 함안의 산천과 인물·문화·산물을 담은 함주지는 지금껏 남아 있는 우리나라 읍지(邑誌) 가운데 가장 오..

박노자 강의를 듣다 보니 조선일보가 생각났다

1. 박노자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경남도민일보가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그해 12월 29일 저녁 7시 ‘한국 식민지 유산의 특징과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특강을 마련했는데 그때 내가 연락과 섭외를 맡았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간절히 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내 기억으로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처가가 마산이니까 한국 들어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이 왔고 고맙게도 그게 그대로 지켜졌다. 그 후에도 2007년인가에 한 번 더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특강을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어쨌든 예전 강의에서 나는 정말 얘기를 똑 부러지게 하는구나 하고 느꼈었다. 논증에는 허술함이 없었고 예시는 구체적이었으며 결론에는 비..

창원공단의 기억 - 뿌리뽑힌 사람들, 뿌리내린 사람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사로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공공의 기억입니다." ---벌써 남겼어야 할 공공의 기억 ---창원공단 50년 만에 기록하다 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내년이면 만 50년이 된다. 창원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에 이르기까지 숱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펼쳤다. 국가 시책 차원에서 만들어진 창원공단은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원(原) 창원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남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와서 크고작은 기업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어른이 읽어도 좋을 동화 '들꽃처럼 별들처럼'

좀 의아했다. 보통 동화책 표지라면 예쁘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그림을 쓰지 않나? 그런데 이 동화는 어두운 표정을 한 초로의 남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는 그림을 표지에 썼다. 뭐지?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됐다.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아이가 5.18 광주 학살의 현장에서 또 한 번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고, 평생 그로 인한 어둑시니에 시달려온 남자. 그런 남자를 이해하고 보듬어준 여자. 어둑시니의 괴롭힘을 예술로 극복하고 승화하여 마침내 다시 광주를 찾아온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런 어두운 이야기도 동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존 인물의 삶을 동화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18 주간에 아이와..

기형도 : 어두운 시세계 vs 밝고 환했던 일상

성우제가 쓴 책 를 보면 기형도 시인 관련 글이 세 꼭지 실려 있다. 세 살 많은 형 성석제(소설가)의 대학 친구가 기형도였고 그 때문에 성우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형도와 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성우제의 글을 다른 이들의 기형도 관련 글과 비교하면 색깔이나 무늬가 다르다. 기형도가 등단하고 알게 된 사이도 아니고 대학 시절 무엇을 함께 도모하거나 행동한 관계도 아니다. 친구의 동생으로서 보고 들은 기형도의 일상을 꾸밈없이 적었다. 여기에서 기형도는 밝고 환하고 명랑하고 경쾌한 모습이다. 어둡거나 침울하고 무거운 구석은 없다. 예의도 바르고 노래도 잘하고 말재주도 좋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할 줄도 알았다. 그 중 몇몇 대목을 고르면 아래와 같다. “기형도는 친구들 중에서 어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

비춰볼 결심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저출생 극복과 출산 장려를 위한 정책을 펼쳐 왔다. 쏟아부은 예산만 2006년부터 2022년까지 280조 원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은 갈수록 텅텅 비고 이제는 대학 폐교도 모자라 군부대까지 해체·통합되고 있다. 30년 동안 애써왔지만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인 0.78명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흐름 가운데 하나가 저출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라 자체가 소멸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민밖에 없다.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태어나지 않으면, 나라 바깥에서 구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정치..

습지에 문화유산이 많은 까닭은

호랑이는 산중호걸? 호랑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다.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으로 한반도를 표현하기도 하고 호랑이가 호시우행하는 그림은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호랑이는 친근하게 여겨지고 사랑도 듬뿍 받는 바람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15년 12월 개봉된 였다. 덩치가 엄청난 이 호랑이는 영물이었다. 인간의 얄팍한 간지(奸智)에 휘둘리지 않고 그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물론 결국에는 인해전술로 몰아붙이는 인간들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대호는 마지막 장면조차 감동과 장엄 자체였다. 영화 에서 호랑이는 지리산에서 살아가다가 지리산에서 죽는 것으로 나왔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호랑이는 깊은 산중에 산다는 일반 상식과 맞아들어가는 ..

가본 곳 2023.04.27

빌어볼 결심

40년 전 1982년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서울은 신세계였다. 나는 어리숙하고 가난한 촌놈이었다. 속에 가득한 열등감을 숨기려고 겉으로는 오만을 떨었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남루함과 초라함을 가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문학 동아리에는 부끄러워서 가입하지 못했다. 동아리가 두 개 있었는데 얄팍한 실력이 들통날까 봐 얼쩡거리기만 하고 말았다. 반면 같은 불문학과 동기 성우제는 잘 나가는 문학회의 멤버였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우제는 적게 마시는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는 참 잘 지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피동적이었다. 유신 교육이 결정적이었다. 그때 초·중·고는 폭력이 의사소통의 수단이었고 멸시가 교육의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선생과 선배는 말 그대로 ‘하느님과 ..

경남 일본군'위안부' 관련 이상한 용역 입찰

경남지역일본군‘위안부’역사관건립추진위원회(공동대표 이경희, 윤소영, 이병하, 전옥희, 조형래)가 4월 5일 기자회견을 연다. 경남도청이 발주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용역입찰에 아무런 전문성 없는 업체가 연속으로 선정된 데 대한 의혹 제기를 위해서다. 나도 이에 대해 좀 이상하게 생각해왔다. 이번 용역은 경남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위한 전 단계로 자료조사와 발굴, 수집을 위한 것인데, 이미 앞선 용역에서 '자료 부족으로 역사관 건립이 타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결과물을 내놓은 업체가 이번 2차 용역을 또 맡았기 때문이다. 의심이 가는 건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경남도민일보의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대답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 당시 박완..

혼내고 야단치면 잘못된 행동이 고쳐질까?

이재명 지음 는 출판 전 펀딩에 참여하여 받은 책이다. ‘산골 청소년과 놀며 배우는 배추샘’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청소년이 읽는 책이라기 보다는 청소년 관련 기관이나 단체 관계자들, 학부모,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도 이번 학기 대학에서 강의 하나를 맡은 터라 청년 대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이 책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저자는 배제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혼내고 야단치면 잘못된 행동이 고쳐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청소년이 계속 수업 분위기를 흐렸다. 뚱한 표정으로 참여하기 싫다는 느낌을 강하게 드러냈다. 다른 아이들이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생각해낸 저자는 뚱한 표정의 청소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방해받지 않도록, ..

부산 황학대의 진사 방치주 각자를 보면서

1. 부산 기장 죽성리 두호마을 바닷가 황학대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이다. 붉게 주칠(朱漆)이 되어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이런 각자를 통해 지역 역사를 짐작해보고 살피기를 즐기는 처지에서는 그런 까닭에 이런 주칠이 무척 반갑다. 옛날 처음 새길 적에는 주칠이 되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져 지금은 바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보는 비석과 바위벽 각자가 거의 모두 그렇다. 그래서 원래부터 글자에 아무 색칠이 되어 있지 않은 줄 알았다. 찾아봤더니 그렇지 않았다. 옛날에는 반드시 주칠을 했다. 옛사람들이 길가 바위벽에 글자를 새기고 빗돌을 세운 까닭은 오가는 사람들더러 보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요즈음 플래카드와 같은 역할이었다. 옛날 비석이나 ..

가본 곳 2023.02.21

경주, 그 친구

경주, 라고 하면 나는 아득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눈물 어리게 좋아했던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용명1리. 나는 문학소년이었으나 간이 작아서 문학반에 들지는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문학반 ‘태동기’의 당당한 멤버였고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태동기에서 시를 잘 쓰는 친구로 우뚝 꼽히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우리 반은 참 별났다. 모두 50명 남짓이었는데 화가,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가수 지망생이 숱하게 많았다. 현직 건달 또는 건달 지망생 대여섯까지 더하면 스무 명가량이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웃는 모습이 기막히게 멋졌다. 웃으면 자그마한 눈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꼬리가 처지면서 얇은 입..

할부지 계시는 데는 한장딴일까 두장딴일까

시골 집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길이 제법 멀었다. 아부지는 8키로라 하셨고 할부지는 20리라 하셨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렸는데 읍내 중학교 다니는 형들은 새벽밥 얻어먹고 6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었다. 할부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셨다. 어둑어둑한 으스름에 사랑방에서 나는 “에헴!” 소리는 집안을 깨우는 신호였다. 식구들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산함을 어린 꼬맹이였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할부지 옆자리 이불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게으름을 부렸고 할부지는 사랑채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셨다. 콩깍지랑 볏짚이 삶아지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할부지는 소마구의 구시를 김이 펄펄 나는 소죽으로 가득 채우셨다. 아침 세수는 소죽 끓인 솥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물로 하셨다. 아침밥 먹는 자리는 안채 대청마루였다...

<줬으면 그만이지>…김장하 바이러스와 나비 한 마리

여기 바이러스가 하나 있다. 아는 이들은 김장하 바이러스라고들 한다. 발원지는 서울에서 1000리 떨어진 한반도 동남쪽 경상남도의 중소도시 진주라는 곳이다. 이 바이러스의 첫 번째 특징은 자기가 가진 바를 한사코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다. 증상이 가장 먼저 발현한 김장하 선생의 삶을 보면 그것은 이렇다. 태어날 때는 그럭저럭 먹고사는 집안이었으나 1950년대 6.25전쟁을 비롯한 시대의 격랑에 가세가 기울면서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남의 한약방에서 점원 노릇을 해야 했다. 힘든 조건에도 틈틈이 주경야독한 실력으로 10대 후반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하고 이를 바탕으로 20대부터 한약사로 성공해 대단한 부를 일구었다. 이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으면 그 성과를 자기 앞으로 쌓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도 그는 ..

어른 김장하 선생 깜짝 생일 축하 행사 계획

2019년 1월 16일 김장하 선생의 깜짝 생신잔치를 열어드린 진주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이 워낙 이런 걸 싫어하시는지라 철저히 비밀리에 계획되고 추진되었다. 다행히 계획은 사전에 노출되지 않았고, 김장하 선생은 영문을 모른 채 "좋은 공연이 있다"는 아들의 안내로 경남과기대(현 경상국립대) 100주년 기념관을 찾았다. 당시 계획서를 보면 얼마나 세밀하고 치밀하게 행사가 준비되었는지 알 수 있다. 기록으로 올려둔다. *해당 기사 https://100in.tistory.com/3490 진주사람들이 '어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

강제윤의 '입에 좋은 거 말고 몸에 좋은 거 먹어라'를 읽고

페이스북에서 스스로를 '나그네'라 칭하는 강제윤 시인의 (어른의 시간)를 읽었다. '말기 암 어머니의 인생 레시피'라는 부제에서 보듯 저자의 3년에 걸친 어머니 간병기를 책으로 엮었다. 아들이 본 ‘어머니의 재발견’이다. 암 환자의 간병기라 침울하거나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글이 워낙 간결한데다, 글 한 편의 길이가 많아야 서너 페이지, 대개는 두 페이지 남짓이어서 부담없이 읽힌다. 또한 저자의 마음이 참 맑고 투명하며 따뜻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맑고 따뜻해진다. -병석에 누운 후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무 일도 못 하고 누워만 있는 당신이 가치 없는 삶을 살고 계시다 한탄하셨다. 그래서 당신의 살아 있음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알려드리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당신의 말씀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