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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빙 필자의 글/박영주의 사진과 역사 이야기 11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마산번창기'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통, 호구, 경제사정, 마산잡록잡황, 마산의 노래 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안내서 성격이다. 1900년대의 마산에 대한 일본 문헌으로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 여러 문헌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자료가 처음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

일제강점기 마산의 일본 사찰 앞에 서 있던 누각의 정체?

넓은 공터 왼편으로 이층 누각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마산만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완월동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曹洞宗 福壽寺라는 절에서 본 풍경이다. 예전에 이 사진을 보면서 복수사는 일본 사찰인데 저 이층 누각은 뭐지? 분명히 조선식인데?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 건물인가? 저런 건물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닌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곤 시간이 흘러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누각은 원래 鎭東에 있었는데 '진동학교조합'에서 이 절에 기부 이건하였고 복수사는 이를 山門으로 삼아 觀海樓란 이름을 붙이고 1928년 5월에 낙성식 및 관음제를 성대히 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당시 마산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하게 됐다. ..

1953년 마산YMCA 사진 찾았다

당시 마산 상남동의 YMCA 회관 앞이다. 설명이 붙어있지 않아 정확한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당시의 신문보도 등을 볼 때 1953년 5월 3일로 추정된다.당시 마산Y는 서울여자의과대학(현 고대 의대)의 김영택 박사를 초청해 '육아 강연과 좌담회'를 열었는데, 이 행사를 전후해 찍은 것으로 보인다.초창기 마산YMCA의 상황과 활동을 알려주는 사진으로 앞에 앉은 이가 당시 마산YMCA 총무 남행수 선생이다.이 사진은 바로 남행수(1917-1997) 선생의 유품 중에서 찾은 것이다. 남행수 선생은 경남 산악계의 대부로 불리는 산악인으로, 초창기 마산YMCA에서 총무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의 사진이다.그가 남긴 각종 등산장비 등의 유품과 산악회 활동자료 등이 국립산악박물관에 기증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네팔 출입국 카드에 성별표시란이 3개인 까닭

네팔에 간다면 받게 될 출입국카드. 일반적인 폼과는 다르게 성별을 표시하는 난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Other(기타).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적 고려이다. 네팔은 이미 2007년에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제3의 성을 인정하고 여러 형태의 제도적 틀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게이나 레즈비언의 군 복무도 당연히 허용되며 자신의 성별이 O로 표시된 여권도 발급된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네팔의 상황이 떠올랐다. 카스트 차별이 강하게 남아있는 힌두교 문화가 지배적인 보수적인 사회지만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시키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나라 보다 네팔이 훨씬 앞선 것 ..

일제강점기 마산에도 세계여성의 날 행사 열렸다

國濟婦人데이를 맞이하여.오늘은 109주년 세계여성의 날... 하루가 저물어가긴 하지만 올려본다.이 사진은 1929년 3월 6일자 동아일보에 '國濟婦人데이講演'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실린 것으로, 기사는 마산청년동맹 여자부 주최로 3월 8일 하오 7시 마산부 석정 독립교회당에서 기념강연을 개최하니 많은 사람들의 방청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김귀동, 김종신, 여해 등 세 사람의 연사가 각각 국제부인데이 유래, 조선여성운동, 부인운동의 의의 등에 대해 강연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념 강연회는 계획대로 열리지 못했다. 일제경찰이 강연회를 금지시켜 버렸기 때문이다.세계여성의 날을 당시에는 주로 '국제부인데이'라고 불렀는데 '國濟無産婦人데이'라고 하여 '무산'을 강조하기도 했다. 1924년에 염군사(焰群社)..

운좋게 본 히말라야 타르 암컷

운좋게 본 히말라야 타르Himalayan Tahr, near Sanasa, May 2016.고쿄리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쿰중으로 이어지는 긴 비탈길을 내려 오는데 산비탈 위쪽에 한 떼의 타르 무리가 보인다. 가만 보니 새끼도 여러 마리다.좀더 가까이서 찍으려고 몸을 낮추고 올라갔다. 다들 잎을 뜯느라 연신 고개를 움직이는데 한 녀석만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경계를 풀지 않는다. 덕분에 이 녀석을 찍었다. 무리의 리드 격인 암컷이다.예전에 네팔에서 들은 얘기인데 타르는 가을철 번식기 때만 암수가 함께 있고 그외의 시기엔 암수가 따로 그룹을 형성하고 새끼는 암컷이 키운다고 한다. 그러니까 새끼가 보이면 암컷 그룹인 것이다.몇년 전 안나푸르나에서 수컷 그룹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수컷인지 아느냐면 타..

마산 최초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사진

세 명의 아이들이 사이드카가 달린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타고 사진을 찍었다.자세히 보면 개와 큰 부엉이도 보인다. 뒤로 보이는 집은 마산 상남동 제비산 언덕에 있던 호주 선교사 사택이다. 아이들은 호주 선교사 맹호은(孟晧恩, Rev. F.Macrae) 목사의 자녀들이다.맹호은 목사는 1915년 마산에 와 신사참배 거부에 따른 일제의 탄압으로 마산지부를 철수해 호주로 떠날 때까지 25년간 마산에서 사역한 선교사이다. 그는 창신학교 3대 교장을 맡아 회원동 교사 신축을 맡은 당사자이기도 하다.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터를 돌아다니며 코넷을 불며 선교를 했다고 한다. 사진에서 보는 오토바이는 1922년부터 타고 다녔는데 마산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거라고 한다.그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마산에서 태어났다. 남..

마산 몽고정의 애초 모습을 찾았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마산의 명소 몽고정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며칠 전 그 앞을 지나다보니 지붕 공사를 하고 있기에 이 사진을 떠올리고는 올려본다. 예전에 일본의 경매 사이트에서 찾아둔 사진엽서이다. 오늘 다시 찾아보니 사라지고 없다. 그 사이 팔린 건지... 이 사진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찍은 게 한 장 더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은 없고 우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좁은 길이 보인다. 그 사진보다 당시 상황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이 사진을 소개한다.사진을 가만히 보면 우물은 벽돌로 쌓은 네모난 우물틀(우물턱) 위로 나무기둥에 함석지붕이 있는 모습이다. 우물가에는 납작한 판석을 깔았고 돌담이 둥글게 우물을 에워싸고 있다. 돌담 뒤로는 울타리로 심은듯한 몇 그루 나무가 서 있고 왼쪽으로..

주기철 목사를 항일독립운동가로 부르는 게 옳을까

창원시의 '주기철 목사 성지순례길' 안내판 유감지난 일요일 근한달여 만에 무학산에 갔다. 등산로 초입 백운사 앞에 그동안 못보던 게 있어 보니 창원시에서 세운 ‘주기철 목사 성지순례길’ 안내판이다. 그런 길이 생겼나?그 옆에는 ‘십자바위 1.4km’라 적힌 이정표도 있다. ‘주기철 일사각오의 길’이란 이름의 안내판에는 “항일독립운동가인 주기철목사가 마산문창교회에서 목회 활동시 매일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던 장소이다.”라는 설명이 우리말과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적혀 있다.그런데 한번더 읽어보니 유감이 생기는 안내문이다. 우선 ‘항일독립운동가’인 주기철 목사가 “매일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다”는데 그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기에는 한참 설명이 부족하다. 왜 매일 밤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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