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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진주 김장하 선생, 남성문화재단 35억 재산 경상대에 기탁 경상국립대학교(GNU·총장 권순기)는 12월 9일 오후 5시 가좌캠퍼스 GNU컨벤션센터 3층 다목적홀에서 ‘남성문화재단 재산 수증증서 전달식’을 개최한다. 이 행사는 진주지역 대표적인 비영리 공익재단법인 (재)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해산하고 그 재산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함에 따라, 김장하 이사장의 숭고한 뜻을 예우하고 대학 구성원의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과 대학본부 보직자, 남성문화재단 김장하 이사장, 정병훈 이사(진주문화관광재단 창의도시추진단장), 김중섭 이사(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 문은진 사무차장 등 10여 명이 참석한다. 행사는 참석자 소개, 김장하 이사장 약력 소개, 김장하 이사장 동영상 시청, 출연증서 전달, 수증증서 ..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6) 가뭄 속 단비 같은 무진정 첫눈에 반한 마음의 안식처 산수 으뜸이라 잔치·대회도 자주 열고 "어진 선비들과 좋은 정자서 사귀어 가슴 트이고 머리 맑아지네“ 오횡묵의 행적을 보면 거의 쉬는 여가가 없었다. 하루에 100리 넘게 길 위에 있기도 했고 자정 전후 해시(亥時)에 횃불을 들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떤 때는 비를 쫄딱 맞기도 하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어 옷을 입은 채로 한두 시간밖에 못 자고 일어나기도 했다. 바깥에서 업무를 보다 기운이 빠져 뒷산에 숨어 잠깐 쉬는 등 지쳐 떨어지거나 아파서 옴짝달싹할 수 없거나 땀이 비 오듯 쏟아지거나 하는 표현도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오횡묵에게 무진정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고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업무에 바삐 쫓기는 틈틈이 몸과 마음을 두루 편안하게 하면..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5) 검암마을이 품은 자연과 인물 탄복스러운 풍광과 이씨 조씨 가문의 절개 함안천·검암천 합류 지점 소출 넉넉한 들판 이령·조순 등 인물 배출 수령으로서 존경심 표현 후손과 깊은 인연도 검암(儉巖)마을은 지금은 가야읍이지만 오횡묵 당시는 산외면(山外面)이었다. 낙동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함안읍성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함안천과 검암천이 만나는 어귀에 있는 마을인데 함안천은 광려산 산줄기 서쪽 골짜기에서 시작되는 중심 물줄기이고 검암천은 광려산 산줄기 동쪽 골짜기에서 비롯되는 가지 물줄기다. 두 물이 만나는 자리는 들판이 너르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무엇보다 농사부터 잘되고 보아야 했기에 넉넉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런 자리가 좋았다. 함안군수 오횡묵은 편한 날이 없었다. 조세 걷느라 장부를 뒤적거리며 노심초사하고,..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4) 한 손에는 매 한 손에는 꿀 세금 못 낸 백성들 엄벌 내렸지만 속으로는 '아프냐…나도 아프다' 처벌할 때는 엄격했지만 죄수와 아전 차별 없이 별식 배급 민생고 덜고자 틈틈이 베풀기도 오횡묵의 대민 업무는 대체로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나는 조세를 공정하게 거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받아내기 위해서는 족치고 때리는 형벌도 서슴지 않았지만 세심하게 보살펴 나누고 베푸는 데에도 열성을 다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정 조세와 복지 실현을 동시에 추진했다. 어쨌거나 하나는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는 것이어서 얼핏 보면 서로 반대되는 듯하다. 하지만 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근본은 조세가 아닌 백성이었다.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면 일을 하기 어렵고 일을 하지 못하면 조세 내기..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3) 군수의 파업 "결연히 떠날 수도" 원님 밀당에 양반들 화들짝 밀린 조세 4만 7500냥 걷고자 양반들에게 방편 찾아라 지시 피해 볼까 미루자 '극약 처방' 선정 베풀던 군수 떠날까 염려 수령 파업 엿새 만에 양반 백기 징수 현장 감시자 동행도 관철 양반 쥐락펴락한 뚝심 바탕에는 백성 향한 공정하고 선한 성품이 엄청나게 떼어먹은 조세 1889년 함안은 파업으로 물결쳤다. 노동자인 관노들이 파업을 벌였고 사용자인 군수도 파업에 나섰다. 노동자의 파업이면 당연한 권리려니 하겠지만 사용자가 파업이라니, 130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한 상황은 아니다. 왜 파업을 했는지 내막이 궁금하다. 군수의 파업은 밀린 조세를 농간 없이 거두는 데 목적이 있었다. 밀린 조세를 걷는 과정에서 아전과 양반의 장난질을 막아 백성들이 엉뚱한 손해를..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2) 관노의 파업 아전·양반 군정 농단해 떵떵 백성은 주린 배 붙잡고 엉엉 토호 세력 조세 착복하며 활보 오횡묵 군수 '부정부패와 전쟁' 일손 차출해 10년치 장부 조사 조정, 현물서 현금 징수로 바꾸자 임금으로 받을 현물 없어져 죽을 길밖에 없다며 관노들 파업 급료 줘야할 양반들 나몰라라 혁신 강행하며 사태 뒷수습 세금은 나라 살림살이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재원이다. 지금은 국세청을 따로 두어 조세 업무를 전담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군수 같은 고을 수령에게 가장 중요했던 업무가 바로 조세 징수였다, 1889년 4월 17일 오횡묵이 부임 인사차 대구 감영을 찾았을 때 경상감사는 거짓으로 꾸민 재결(灾結=재해를 입은 농지 면적)을 실태 조사하고 밀린 조세를 받아내어 장부를 깨끗이 정리(淸帳)하는 두 가지를 토호 제압과..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1) 낙화놀이 시가 절로 나오는 불꽃비 암벽 타고 우수수 사월초파일에 등불 달기 읍성 일대 민가에 줄줄이 멋 더하려 낙화봉 뒤섞어 마을 명소 불꽃 대량 설치 바람에 흩날려 장관 연출 일제강점기 단절 후 부활 함안에는 무형문화재가 셋 있다. 화천농악(化川農樂)·낙화(落火)놀이·함안농요(咸安農謠)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에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낙화놀이 하나다. 낙화놀이라 하면 하늘에서 불꽃이 뻥뻥 터지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안낙화놀이는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경관을 연출한다. 130년 전으로 거슬러가면 함안낙화놀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속으로 들어가 그 원형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성 위에 오르지 못한 첫 .. 더보기
함안총쇄록 답사기 (10) 입곡 숲안마을 연계 골짜기 수령 오횡묵의 '어쩌다 기숙 생활’ 외근 중 옆 고을서 살인사건 거처 옮기며 수사 임무 모면 주민 정성스런 대접에 감동 춘궁기 민생 파악 계기도 옥사를 피하여 입곡마을로 함안에서 오횡묵과 가장 인연이 깊은 동네는 산인면 입곡리 숲안마을이다. 계기는 살인사건이었다. 오횡묵은 여기서 열흘 넘게 묵으며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주민들과 인연도 쌓았다. 골짜기에는 오횡묵의 글씨도 새겨져 있다. 살인사건 같은 중대 범죄를 당시는 옥사(獄事)라 했다. 옥사가 나면 먼저 초검(初檢)을 하고 뒤이어 복검(覆檢)을 했다. 초검 수사는 해당 고을의 수령이 하고 복검은 제3자인 이웃 고을 수령이 초검이 맞는지 검증하는 절차였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시신을 살피는 일은 고역인데 옛날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십중팔구 몽둥..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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