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가본 곳 477

둘러보는 데만 두 시간 걸리는 망한 절터

영암사 터 석등 틈으로 모산재 보는 재미 경남 합천 모산재 아래에는 폐사지(廢寺址-이를 망한 절터라고 이르면, 느낌이 또 달라지지요. 하하.)가 있습니다. 고려 시대 들어섰다는, 그러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영암사 터입니다. 여기는, 적어도 제게는 엄청 멋진 존재입니다. 한 번 말씀드렸듯이, 망한 절터임에도 기상이 아주 밝고 맑고 씩씩합니다. 절터가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든지 배경으로 삼은 모산재가 바위산이어서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기운 때문이라든지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절터에 갖가지 돌들이 옛적 가공을 겪은 그대로 많이 남아 있는 덕분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한 번 둘러 보시지요. 여기에 빠져서, 하나하나 바로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따져도 보고 생각하면서도 보고 아무 생각없이..

가본 곳 2009.11.04

70년대 가을 느낌을 주는 삿갓배미논

'삿갓배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여 들어보셨나요. 저도 얼마 전에 이 말을 알게 됐는데, 삿갓처럼 생긴 논배미, 삿갓 만큼이나 조그만 논을 뜻한다고 합니다. 배미, 논배미는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하나하나 논을 말한다지요. 삿갓배미가 얼마나 작으냐 하는 것은, 이를테면 그 '탄생 설화'를 들여다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농사꾼이 산골 논에 일하러 갔답니다. 가서는 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잠깐 삿갓을 벗어놓고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보는데, 어라? 참 이상한 노릇이군. 논이 한 배미가 적더랍니다. 원래 논배미가 넷이었는데, 지금 눈에 들어오기로는 셋뿐이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래 한참 헛고생하면서 헤아리다가, 벗어놓았던 삿갓을 무심코 들어보니 글쎄, 거기 잃어버린 논배미 하나가 들어 있더라는 것입지..

가본 곳 2009.10.25

모산재 다람쥐는 겨울을 어떻게 날까

엉뚱한 얘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합천군 황매산 모산재에 가면 이상한 물건이 있습니다. 산꼭대기에서는 보기 드문 색다른 물건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거기 있을 까닭이 없거든요. 저는 이 물건이 여기에 어떻게 있게 됐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녀석은 아마 이렇게 서 있는 상태로 말라죽었던 나무이지 싶습니다. 밑둥치를 보니까, 밑둥치와 땅바닥의 이음새를 보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짐작이 되십니까? 삭정이가 되도록 있다가 이렇게 됐다고는 볼 수 없겠고,(그러면 부서져 버리니까) 물기가 그나마 남아 있을 때 이렇게 가공을 당했을 것입니다. 저도 산이나 들을 남 못지 않게 돌아다니지만, 700 고지 등산길에서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가본 곳 2009.10.20

망한 절터가 내뿜는 씩씩한 기상 정체는?

1. 합천 황매산 모산재와 영암사 절터 합천 모산재 아래에는 영암사 절터가 있답니다. 이를테면 폐사지(廢寺趾)인 셈인데, 그러나 망한 절터답지 않게 스산하지도 않고 을씨년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그 기상이 참 씩씩하고 아름답습니다. 절터가 씩씩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남아 있는 물건들이 돌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돌 축대가 층층이 쌓여 있어 힘이 느껴지는데다 쌍사자 석등이나 삼층석탑, 금당터 축대 연꽃 문양이나 해태 모양들, 탑비 거북들이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까닭은 배경을 이루는 모산재 덕분이라 해야 옳겠습니다. 모산재는 영암사 절터를 감싸고 있습니다. 소나무 노각나무 참나무 따위로 푸르거나 울긋불긋하게 우거진 산이 아니라, 깎아지른 바위가 밝은 빛을 뿜으며 줄을..

가본 곳 2009.10.18

도깨비 표정이 재미나는 영남루의 사래기와

저는 진주 촉석루도 사랑하고 밀양 영남루도 사랑합니다. 둘 다 풍경이 시원하고 눈맛이 상큼하고 드러누웠을 때 마루바닥에서 느끼는 몸맛이 가뿐하기 대문입니다. 긴늪유원지 새마을문고에 나뒹구는 성인만화를 본 그날 오후, 저는 이날도 일부러 누각에 올라가 큰 대자로 누웠습니다. 가운데에서는 여고생 서넛이 둥글게 모여 깔깔댔습니다. 왼쪽에는 부부 같아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서로 어긋나게 앉아 건너편으로 멀리 눈길을 던졌습니다. 뒷쪽 들머리에는 남자 하나가 기둥에 기대 앉았고 오른편에는 외국인이 하나 다리를 쪼그린 채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누운 채로 고개를 아래위로 돌렸습니다. 우리 딸이 어디 있나 살펴볼 요량으로 그리 했습지요. 그런데 누워서 고개를 오른쪽 위로 돌리는데, 보려 했던 딸은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

가본 곳 2009.10.07

다양한 장묘, 당신이 묻히고 싶은 곳은?

모두들 추석은 잘 쇠셨습니까? 저도 잘 쇠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들 추석에 조상이나 부모님 묘소에 다녀오셨을텐데요.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어머니 묘소가 있는 남해군 서면 연죽리 남해추모누리는 김두관 전 장관이 남해군수로 있을 때 조성한 공설묘원인데요. 이곳은 남해군이 개발한 새로운 장묘 문화인 '납골평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납골평장은 얼마 전 조성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인돌 묘역의 축소판이라고 할만 합니다. 즉 화장한 유골을 나무 유골함에 넣어 자연적으로 부식되도록 하는 자연친화적 장법으로 화장과 매장을 결합한 혁신적 장사문화입니다. 물론 남해추모누리에는 납골평장만 있는 게 아닙니다. 기존의 매장묘역도 있고, 납골당도 있..

가본 곳 2009.10.05

신라 황룡사터를 뒤덮은 코스모스 물결

'한들한들'이라는 우리말 단어 아시나요?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부사] 가볍게 이리저리 자꾸 흔들리는 모양.'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 부사가 오직 코스모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어릴 적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요즘의 초등학교) 가는 비포장 도로 옆에 코스모스가 길게 피어있었는데요. 등·하교 때마다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책보를 맨 채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기억이 워낙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김상희라는 가수가 불렀죠? 한번 불러볼까요?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 김상희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코스..

가본 곳 2009.09.24

둘레길이 아름다운 도심의 산속 호수

경남 마산과 창원, 그리고 진해 사이에는 해발 328m의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팔용산입니다. 마산시 봉암동과 양덕동, 합성동, 그리고 창원의 팔용동을 끼고 있는 산입니다. 지금은 대부분 매립이 되어 강처럼 느껴지지만, 창원과 진해방향으로는 봉암갯벌이 있는 바다를 끼고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761m)에 비해 낮은 산이기는 합니다만, 창원과 마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다, 제법 험한 암벽들도 적지 않아 시민들이 가벼운 등산을 위해 자주 찾는 산입니다. 그런데, 이 산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산중 호수를 갖고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마산시 봉암동에서 완만한 숲길을 따라 약 1.5km정도 걸어올라가면 해발 100m쯤에 마치 댐과 같은 석축 콘크리트로 된 저수지 둑이 ..

가본 곳 2009.09.23

도쿄도청보다 훨씬 멋진 우리동네 전망대

서울에 처음 가보는 사람이 남산 서울타워나 63빌딩 전망대를 찾듯, 대개 낯선 곳을 방문하게 되면 그 지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찾게 마련입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를 찾는 관광객들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저도 두 번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공짜 전망대인 도쿄도청에 가봤습니다. (도쿄 타워는 돈을 받는다고 해서 못 가봤음 ㅠㅠ;) 가 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사실 도쿄도청 전망대는 공짜라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습니다. 오히려 도쿄라는 도시에 대한 실망만 느끼게 된다고 할까요? 일단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본 도쿄의 밋밋하고 삭막한 모습부터 한 번 보실까요?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산도 바다도, 강도 없이 그냥 빼곡한 건물뿐인 도쿄를 확인하게 되는 곳이 도쿄도청 전망대였습니다. (물론 오다..

가본 곳 2009.09.10

미처 몰랐던 동네 공원의 아름다움

엊그제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산호공원'을 언급하면서 "말이 좋아 공원이지 규모가 작아 인근 주민들이 아침 운동삼아 오르는 곳일뿐 놀러 갈만한 곳은 아니다"고 썼습니다. (관련 글 : 이젠 독재의 증거물이 된 국민교육헌장) 마산 산호공원의 꽃무릇 4만 송이 어제 도서관 가는 길에 산호공원을 다시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제가 알던 산호공원과 달리 군데군데 볼 거리가 적지 않더군요. 그 중에서도 9월에 피는 꽃이라는 꽃무릇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자생 꽃무릇인줄 알고 '신기하네. 습기가 많아 이런 꽃이 올라왔나?'라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둘러보니 그냥 한 두 군데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룬 게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인공적으로 조성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많은 꽃무릇이 밭..

가본 곳 2009.09.0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