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둘러보는 데만 두 시간 걸리는 망한 절터

김훤주 2009. 11. 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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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사 터 석등 틈으로 모산재 보는 재미

경남 합천 모산재 아래에는 폐사지(廢寺址-이를 망한 절터라고 이르면, 느낌이 또 달라지지요. 하하.)가 있습니다.
 고려 시대 들어섰다는, 그러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영암사 터입니다. 여기는, 적어도 제게는 엄청 멋진 존재입니다. 한 번 말씀드렸듯이, 망한 절터임에도 기상이 아주 밝고 맑고 씩씩합니다.

절터가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든지 배경으로 삼은 모산재가 바위산이어서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기운 때문이라든지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절터에 갖가지 돌들이 옛적 가공을 겪은 그대로 많이 남아 있는 덕분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한 번 둘러 보시지요. 여기에 빠져서, 하나하나 바로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따져도 보고 생각하면서도 보고 아무 생각없이 넋놓고도 보고 하면 그리 넓지 않은 둘레지만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리는 명승(名勝)이랍니다.(물론, 덜 떨어진 제 심미안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일 뿐입니다요. ^.^)

가장 멀리서 보는 영암사터. 아래쪽은 요즘 들어 복원했습니다. 제가 얘기하는'여러 절터'입니다.


영암사 절터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금당 터, 조사당 터, 삼층석탑 자리, 그 아래 여러 절터로요. 여기 조사당 터는,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탑비 귀부가 있는 데 비춰, 여기 영암사를 지은(절간에서는 이를 개산開山이라 하지요) 조상 스님(祖師) 모시는 곳입지요.

스카이 라인에 맞추려다 보니 석탑이 기울어지게 찍었습니다. 하하.


금당(金堂) 자리입니다. 한가운데 모셨을 부처님은 석가모니불입니다. 왜냐하면 동쪽을 향해 있거든요. 경주 석굴사 석가모니불도,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가모니불도 모두 동쪽 동짓날 해뜨는 방향을 그윽하게 바라봅니다.


조사당 자리입니다. 한가운데 조사 모셨던 자리가 있고, 그 앞으로 석등 부러진 자취가 있습니다. 양쪽으로는, 세상 떠난 조사 등의 한살이를 기리는 탑비를 꽂고 있었을, 귀부가 둘 남았습니다.

조사당 뒤쪽 언덕에 올라 찍었습니다. 조사당 자리와 금당 자리는 계단으로 이어집니다.


모산재 꼭대기에서 바라본 영암사 자리입니다. 금당 터랑 석탑 따위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금당 터에서 석탑을 바라보고 찍었습니다. 금당 터 부처님 자리와 석등과 석탑은 같은 직선 위에 있습니다.


금당 본존 부처님 계시는 자리로 오르는 돌계단입니다. 조각이, 섬세하지는 않지만 씩씩은 하답니다요. 하하.


금당 터를 받치고 앉은 연꽃입니다. 단순합니다. 어쩌면 이런 단순함이니까 부처님을 받쳤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뭥미? 금당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짐승입니다. 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제가 지식이 없어서 뭐라 단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요. 그러나 뭐, 하는 일은 척사斥邪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삿된 기운을 몰아내는 일입지요.


진짜 여기 이 녀석도 앞발이 귀엽네요.(보라매님 말씀처럼)


오른쪽으로 돌아나오니 이 녀석이 반깁니다. 저 쪽 친구보다 조금 더 사나워 보입니다.


같이 있는 다른 친구인데, 제가 보기에 해태랑 가장 가까운 모습니다. 해태는 불 기운을 막는다지요.


건물 정면 왼쪽 아래에 있는 녀석입니다. 이끼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 녀석은 돋을새김입니다. 이 친구가 오른쪽 친구랑 함께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조금 있다 말씀을 올리겠습니당.


같은 그림.


금당 오른쪽 아래에 있는 친구입니다. 친구라 하고 보니, 이런 녀석도 참 정겹습니다.


같은 그림.


좀 있다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 녀석들은 계단을 통해 아래에서 올라오는 존재들에게 눈길을 던지고 있습니다.


보라매님 댓글에서 꼬집으신 바대로, 자세한 설명을 제가 건너 뛰어 버렸네요. 미안합니다. 깜박 잊었습니다. 이 녀석 눈길을 한 번 눈여겨 보시지요. 살짝 아래로 내려가 있습니다. 이 녀석이 축대에 올라와 있는 존재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눈을 치뜨고 있어야 마땅하겠지요. 

바라보는 상대가 누구일까요? 그것은, 계단을 통해 올라오는 존재들일 것입니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 제가 돌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머리가 축대 위로 올라가게 됐을 때 찍은 것입니다. 이렇게 아래 계단을 밟고 올라 오는 존재들에게 자기 눈길을 꽂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단을 통해 금당으로 부처님 뵈오러 올라오는 존재들에게서 삿된 기운을 빼앗고 아울러 그 존재를 정화해 주는 구실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까닭입니다. 하하. 물론 저 혼자 해 본 짐작일 따름입니다만. 그냥 단순한 장식물 노릇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말씀입지요.

아무래도, 세속에서 오는 인간들이 없지는 않다 보니까, 나쁜 기운을 쫓는 구실을 맡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답니다.


금당으로 올라가는 왼쪽 계단. 꽤 가파른 편입니다.


금당으로 올라가는 오른편 계단.


계단 오른쪽 구멍은 아마도 난간을 박아 넣은 자취겠지요. 그런데, 그 난간이 나무였을까요, 아니면 돌이었을까요. 저는 돌 쪽에 겁니다.


금당 본존 부처님 앉아 계시던 자리에서 해뜨는 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해가 뜰 때, 평범하지만 아주 아늑할 것 같았습니다. 부처님은 절대 비범을 얘기하지 않으십니다.


기둥을 받치던 주초柱礎.


마찬가지 주초. 아마 맡은 구실에 따라 모양도 달랐나 봅니다.


이렇게요!!!! 하하.


마찬가지.


네모난 주초.


본존 부처님 앉으셨던 자리.


조사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쌍사자 석등. 뒷다리가 얼마나 튼튼한지는 제가 챙겨보지 못했습니다. 굳이 뒤집어 말하자면, 리얼리티가 조금 떨어지기는 합니다요. 하하하하하. 그렇지만 푸른 하늘이 그런 따위를 단번에 가려버립니다.


석등 아래를 받치는 짐승. 코끼리 같기도 합니다. 저는 사랑합니다.


돌려서 한 번 더 찍었는데 같은 모습입니다.


석등 위에 새겨진 모습입니다. 아마 십이지신 같습니다. 아니라 해도 상관 없고~. 옆에 조그만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옛날에도 바람을 가리면서도 빛는 나게 하는, 무엇인가가 저기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표지입지요. ^.^


석등 틈 새로 모산재 산마루를 바라봤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좀더 깊이 집어넣어, 잡아당겨 찍어 봤습니다. 마찬가지, 재미 있었습니다. 하하.


제 식으로, 조사당 자리입니다.


조사당 자리.


정면 오른쪽에 있는 귀부. 거북이 억수로 씩씩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씩씩하지 않아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씩씩하지 않은 모습 1.


씩씩하지 않은 모습 2.


왼쪽에 있는, 씩씩한 모습 1.


씩씩한 모습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에서 인공을 봤습니다. 옛날 여기에 이렇게 파내고 무엇을 했을까요. 힘드네요. 하하.


여태까지는 금당 자리와 조사당 자리를 둘러봤습니다. 이제는 둘레입니다. 둘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물들에게도 눈길을 줄 필요가 없지는 않습니다. 어쩌다, 여기 기와조각이나 돌붙이에서 명문(銘文)이라도 하나 나오면 그야말로 중요하고도 획기적인 발견이 되겠지요.

금당 자리를 보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입니다. 그런데요, 당간지주는요, 대부분이 이렇게 옆구리에 붙어 있지 않는데요, 어떻게 이 절간을 바라봐야 맞을지 억수로 헷갈려 버리는 순간이올습니다.


옛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계단도 있었겠지요. 꼭, 각이 져야만 좋은 일인가요.


아마 짐작건대, 당대에 쓰고 남은 부재部材들이지 싶습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요, 저는 석굴사에 는데, 그 아님을 부재들이 말해줬어요. 하하.


영암사 절터에서 나온 갖은 것들을 여기 쌓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명문이 하나라도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발굴하는 이들이 죄다 훑어보고 여기 이렇게 쌓았겠습니다만.




영암사 터에서 새로 짓는 영암사로 내려오는 길에 볼 수 있는 부재들. 끼워 맞추면, 영암사가 완성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멋집니다. 양 옆에 붙어 있는 허름한 집(절간)이 없으면 더욱 멋질 것입니다.


석등에서 석탑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석탑이 석등을 보고 이쁘다고 좀 봐 달라고 찍었습니다.


따라붙은 새 식구 새 영암사 절간입니다. 21세기답게, 돈 칠갑입니다. 지우고 싶습니다.


따라붙은 새 식구 새 영암사 절간입니다. 21세기답게, 콘크리트 칠갑입니다. 지우고 싶습니다.



김훤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전3권)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유홍준 (창작과비평사,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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