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천 황매산 모산재와 영암사 절터

합천 모산재 아래에는 영암사 절터가 있답니다. 이를테면 폐사지(廢寺趾)인 셈인데, 그러나 망한 절터답지 않게 스산하지도 않고 을씨년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그 기상이 참 씩씩하고 아름답습니다.

절터가 씩씩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남아 있는 물건들이 돌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돌 축대가 층층이 쌓여 있어 힘이 느껴지는데다 쌍사자 석등이나 삼층석탑, 금당터 축대 연꽃 문양이나 해태 모양들, 탑비 거북들이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까닭은 배경을 이루는 모산재 덕분이라 해야 옳겠습니다. 모산재는 영암사 절터를 감싸고 있습니다. 소나무 노각나무 참나무 따위로 푸르거나 울긋불긋하게 우거진 산이 아니라, 깎아지른 바위가 밝은 빛을 뿜으며 줄을 지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비치는 느낌이 환한 것입니다.


물론 뜨고 지는 해도 절터를 씩씩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절터와 모산재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줄곧 밝은 빛을 받는다는 얘기랍니다.



2. 표정이 재미있는 바위들

사진 왼쪽에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습니다.


모산재 오르는 길목은 영암사 절터 왼쪽 6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는 옆구리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바위를 타는 산행이 이어집니다. 산행에서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서두르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모산재가 자기 아름다운 모습을 쉽게 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오른쪽 왼쪽으로 눈길을 던지면 그만입니다.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즐거운 풍경들이 눈맛을 키웁니다. 맞은 편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바위 절벽들이 먼저 그러합니다.

무지개 터에서 바라보는 바위 절벽.


바위 절벽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느낌이 시원합니다.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봤으나, 짐작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숲이 우거진 가운데 허옇게 여백처럼 공백처럼 드러나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만.


가파른 바위를 딛으며 30분쯤 오르면 무지개터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좀 오래 머물러도 좋습니다. 왜냐고요? 눈에 담을 거리가 많으니까요. 먼저 괴수가 있습니다. 오르면서 치뜨고 보면 잘 모르는데 올라가서 마주 보거나 내려 보면 모습이 뚜렷하게 들어옵니다. 왼발을 옆으로 넓게 벌리고 입을 벌린 형상입니다.



다음으로, 오른쪽 바위 가장자리로 나가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면 코가 긴 돼지 모양을 한 바위가 있습니다. 어째 보면 코가 짧은 코끼리처럼도 보입니다. 물론 이를 알리는 표지판 따위는 없습니다. 돌이 저 생긴대로 그냥 있는 것이겠지만 색(色)에 홀리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인지라 이렇게 지어(作) 보는 것이리라 싶습니다.


여기서부터 맞은편 바위 절벽을 바라보는 시원함이 줄곧 이어진답니다. 바위에는 풀 나무들이 자라지 않습니다. 바위와 바위 틈새에는 풀과 나무들이 자라는데 저기 자리잡은 것들은 바탕이 척박하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경쟁에서는 자유롭습니다.

이 또한 사람의 마음 작용일 뿐일테지만, 빽빽한 숲에 들어가지 않고 비껴 서 있는 여유 비슷한 느낌이 오기도 한답니다.


3. 산마루 조금 못 미쳐 내민 물건 하나

다시 20분쯤 오르면, 이번에는 사람이 꾸며놓은 물건이 하나 나타납니다. 좀 짖궂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산꼭대기에 서둘러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 보지 못하고 놓치기 십상입니다.


밑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호젓한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다가다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어 눈길을 그냥 툭 던져 보면, '아휴, 이게 뭐야. 흉물스럽잖아!' 이러면서 손에 잡힌답니다. 손때가 까무잡잡하게 묻어 있는 까닭이겠습니다.


여기서 산마루(767m)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시원스레 사방이 탁 트여 있기는 하지만 별로 산마루답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태 오른 길이 많이 가팔라서 고생스러웠기 때문입니다(시간으로 따지면 1시간도 안 돼 짧기는 하지만).

산마루에서 바라보는 바위 절벽.


여기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내쳐 발걸음을 내딛어 산을 한 바퀴 둘러도 좋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두 시간이면 충분하답니다.

오면서 바라봤던 맞은편 바위들 가운데에는 '순결 바위'도 있습니다. 가운데가 패여 있는데, 순결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면 바위가 오무라들어 나올 수 없답니다. 도대체 순결 이데올로기의 끈질김이란!

모산재 산행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나서는 영암사 절터를 꼭 둘러봐야 합니다. 왜냐, 그리 하지 않으면 후회하기 십상이기 때문입지요. 하하. 돌들에 새겨진 갖은 표정들이 사람을 달뜨게 합니다. 쌍사자석등 틈 사이로 바라보는 모산재는 여전히 상큼합니다.



4. 합천 모산재 가는 길

창원이나 마산에서 가자면 남해 고속도로를 타야 합니다. 함안 군북 나들목에서 내려 의령으로 들어간 다음 길 따라 대의 고개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도 33호선과 마주칩니다. 진주 쪽에서는 도로가 대의고개 도로랑 만나는 여기 대의 나들목까지 곧바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합천 쪽으로 4km정도 가면 삼가면이 나옵니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틀어서 11km 남짓 거리에 가회면 소재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7km 가면 모산재 들머리가 있습니다. 여기 들머리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적어도 50대는 들어설 수 있습니다.

벌써 나뭇잎이 노랗게 바뀌고 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단풍 들게 생겼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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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 영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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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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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9.10.18 1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언젠가 꼭 가보고 말테야!!!

  2. 보라매 2009.10.19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산은 참 멋집니다.
    이곳에 이사와서 살면서 재삼 느끼는 겁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20 1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나라서 살다가 오셨군요. ^.^

      같은 우리나라라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지요.

      경상도 산은 우쭐우쭐거리는 무엇이 있어서 남성스럽다고들 하고요, 전라도 산은 둥그스럼 봉긋하게 솟아 있어서 여성스럽다고들 합니다만. ^.^

  3. 아이러니 2009.12.10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망한 절터라니... 사찰이 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윗글 보니 사찰의 기업화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를 가지고 계신듯 한데... 사찰이 망했다는 의미는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말의 아이러니가 여기 있네요.

    언어라는 것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죠. 세상에 내보여진 글이 고칠 수 없듯이...기자분이시니 한 단어 한 단어가 인간의 인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아실겁니다. 개인의 인식은 사회로 퍼져나가겠죠. (이러한 의미에서 현 대통령이 미디어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어찌됐든...올바르고 건강한 비판과 적절한 단어 선택등이 필요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