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모산재 다람쥐는 겨울을 어떻게 날까

김훤주 2009. 10. 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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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얘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합천군 황매산 모산재에 가면 이상한 물건이 있습니다. 산꼭대기에서는 보기 드문 색다른 물건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거기 있을 까닭이 없거든요.

저는 이 물건이 여기에 어떻게 있게 됐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녀석은 아마 이렇게 서 있는 상태로 말라죽었던 나무이지 싶습니다. 밑둥치를 보니까, 밑둥치와 땅바닥의 이음새를 보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짐작이 되십니까? 삭정이가 되도록 있다가 이렇게 됐다고는 볼 수 없겠고,(그러면 부서져 버리니까) 물기가 그나마 남아 있을 때 이렇게 가공을 당했을 것입니다.


저도 산이나 들을 남 못지 않게 돌아다니지만, 700 고지 등산길에서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없습니다. 700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 야산서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저는 여기 이것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더욱 궁금합니다.

제 솜씨로는 종일 걸려도 이렇게 다듬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나무를 다듬은 솜씨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한결같거든요. 한 사람이 했다면 적어도 두세 시간은 들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두세 시간씩 걸려가면서 모산재 산마루 바로 아래에다 이런 물건을 만들었을까요? 일부러 시간 내어 여기까지 와야 하고, 게다가 자동차도 안 다니는 산길을 한 시간 가량 걸어올라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로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갖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도 사람이 그리 많이 다니지도 않는 이런 등산길에 이런 물건을 만들어 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냥 한 번 만들어 봤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여유롭지 않게 서둘러 오가면 이 물건이 눈에 들어오지 않거든요. 산에서 천천히 다니는 즐거움을 주려고 누군가가 공짜 품을 팔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이렇게 한편으로 찜찜함을 안고 내려오다가 다람쥐를 만났습니다. 요즘은 고양이 때문에 청설모가 늘고 다람쥐는 즐었다고는 합니다만 아주 귀한 동물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진까지 찍혀주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귀여웠습니다.


다람쥐는 아시는대로 크기도 작은데다 재빠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사진을 찍을 틈을 잘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모산재에서 마지막 만난 다람쥐는 이런 '포즈'로 한동안 멈춰 있어 줬습니다.

사실, 그윽한 산골이라 그런지 이날도 다람쥐가 눈에 들어온 것은 여러 차례였습니다. 다만 녀석들이 멈추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더 멀리로 움직여 달아날 뿐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포즈'를 바꿔주기도 했습니다.


집에 와서 사진 속 다람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조그맣고 까만 눈과 마주쳤습니다. 어떤 사람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제게 이렇게 말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숲 속 동물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사는지 관심이 없거든. 그냥, 저절로 살아가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지."
 
"겨울에 굶어죽는 수도 있어. 산에서 도토리나 산밤을 줍는 일이 우리는 그냥 즐거운 장난이지만, 산 속 짐승에게는 가혹한 시련이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일 수도 있는 거야."

앞으로는 그리 않겠지만, 저는 그날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도토리 몇 알을 넣어왔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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