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진주 촉석루도 사랑하고 밀양 영남루도 사랑합니다. 둘 다 풍경이 시원하고 눈맛이 상큼하고 드러누웠을 때 마루바닥에서 느끼는 몸맛이 가뿐하기 대문입니다. 긴늪유원지 새마을문고에 나뒹구는 성인만화를 본 그날 오후, 저는 이날도 일부러 누각에 올라가 큰 대자로 누웠습니다.
가운데에서는 여고생 서넛이 둥글게 모여 깔깔댔습니다. 왼쪽에는 부부 같아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서로 어긋나게 앉아 건너편으로 멀리 눈길을 던졌습니다. 뒷쪽 들머리에는 남자 하나가 기둥에 기대 앉았고 오른편에는 외국인이 하나 다리를 쪼그린 채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누운 채로 고개를 아래위로 돌렸습니다. 우리 딸이 어디 있나 살펴볼 요량으로 그리 했습지요. 그런데 누워서 고개를 오른쪽 위로 돌리는데, 보려 했던 딸은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 기와가 한 장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워 있던 자리에서 찍은 사진.
바로 이랬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것을 사래기와라 하는 모양입니다. 추녀 끝에 잇대어 겹처마를 이루게 하는 나무를 사래라 하고 사래기와는 그 사래가 물 따위에 썩지 않도록 끝에 붙이는 기왓장인 것 같습니다.(막새와는 다릅니다.)
누워 있는 데서 보기에는 그냥 모양이 좀 이상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호기심은 잘 참지 않는 편이라 곧장 일어나 다가갔습니다. 가면서 보니 눈이 동그랗고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져 있으며 코 또한 실제보다 많이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한 발짝 다가가며 찍은 사진. 동그라미 안이 사래기와.
제가 몇 번 들른 적이 있는데도 여태 보지 못하다가 이날 처음 봤습니다. 모양이 아주 재미있어서 사진으로 찍어봤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조선 시대 귀면와(鬼面瓦) 가운데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더군요. 하하.
네모난 도깨비 얼굴이 사래기와. 그 위에 있는 전체적으로 세모난 기와는 막새이지 싶습니다만.
아마 이 기와가 하는 구실은 축사(逐邪)일 것입니다. 사악한 모든 것들을 쫓아버리는 노릇이지요. 뒤집어 말하자면 이 공간은 청정하게 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조금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과장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천진난만이랑 통하는 듯도 합니다.
본루가 아니고 왼쪽에 있는 능파각(凌波閣)의 사래기와인 것 같습니다. 밀양에서 이런 멋지고 상큼한 것만 봤으면 이날 기분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기회 긴늪에서 새마을문고에서 '무슨 얄궂지도 않은' 성인만화를 눈에 담은 잘못이 컸습니다.
※관련 글 : 성인만화가 뒹구는 유원지 새마을금고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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