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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외국 나와보니 환율폭등 실감나네

"외국에 나와보니 정말 환율 폭등이 실감 나네." 지난 주 홍콩과 중국 선전(심천)에 출장을 다녀왔다. 홍콩과 선전에서는 한국의 KBS월드 TV를 볼 수 있다. 일행의 관심사는 온통 환율 변동 추이였다. 하루가 달리, 아니 몇 분 단위로 달라지는 환율 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다. 인천공항에서부터 희비(?)가 엇갈렸다. 30분 전 홍콩달러로 환전한 사람과 지금 막 환전한 사람의 환율이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현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한국돈도 자연스럽게 받던 관광객 상대 매장에서도 한국돈은 일체 받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인 가이드도 한국돈을 받길 꺼렸다. 오직 미국달러와 홍콩달러, 그리고 중국 위안만 통용됐다. 여행객들 역시 면세점에서조차 쇼핑을 꺼렸다. 가격표를 보고, 머리속으로 환율 계산을 ..

STX의 마지막 수정만 사기극은?

제가 STX를 두고 글을 쓰기는 거의 50일만이군요. 어쨌거나, STX그룹의 경남 마산 수정 주민에 대한 마지막 사기는 바로 고용을 두고 벌어집니다. 수정만 매립지에 조선 기자재 공장을 짓고 가동할 때 하겠다고 한 약속 가운데는 고용 보장도 들어 있습니다. 과반에 못 미치는 찬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주민 동의’라 바꿔치기한 첫 사기와, 공해가 적은 공정만 한다는 약속과 마을발전기금에 더해 이주 보상금까지 준다는 약속을 팽개친 데 이은, 월드 베스트 사기극의 대단원인 셈입니다. * 이전 글 : STX의 월드 베스트 사기는 언제 끝날까 (http://100in.tistory.com/418) 1. 직접 고용은 한 명도 없으면서 무슨 고용 보장? STX는 이처럼 시작부터 사기를 쳤는데, 고용 보장에서도 처음..

카피 때문에 슬퍼진 최진실 인생

1. 별을 딴 최진실 저는 63년생입니다. 제가 이름을 알고 나름대로 좋아하기까지 하는 여자 연예인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나이가 저보다 적은 사람은 아마도, 최진실 씨와 정선경 씨 둘 정도가 전부이지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제가 스무 살 청춘을 보낸 80년대 대부분과 90년대 초반은, 정치로 보면 독재가 깨지고 지배 구조가 재편되는 어수선한 국면이었습니다만, 경제 측면에서는 독점 자본의 성장과 지배가 안팎으로 안정되고 완성되는 시기였습니다. 독점 자본의 안정된 지배의 완성이란 사회적으로는 계층 이동의 제한․제약으로 나타납니다. 90년대 들어 더욱 심해졌지요. 적어도 80년대 초반에만 해도 시골 촌놈이 이른바 좋은 대학 나와서 출세하는 얘기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

정부·지자체 골프장 효과는 거짓말이다

이제 골프장 시리즈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의 골프장 정책과 허가 및 건설과정의 문제점 등 몇 가지 더 살펴봐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간의 보도과정에서 간간이 언급한 걸로 갈음한다. ◇농약 오염 우려는 다소 과장됐다 = 다만 농약 살포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서는 좀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 분명한 것은 오염을 주장하는 환경단체 쪽이나, 오염이 없다고 주장하는 골프장업체 쪽이나 둘 다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잔디 관리를 위해 농약을 살포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환경오염의 개연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300여 개 골프장 가운데 명백하게 농약으로 인한 환경오염 사례가 입증된 곳은 없다. 환경단체 또한 그런 사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

삼성 야구가 지기를 바라는 까닭

저는 대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를 속으로는 많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는 삼성라이온스가 많이 이기기는 바라지를 않습니다. 아니 바라지 않는다기보다는 크게 싫어합니다. 왜냐고요? 삼성이란 존재 때문입니다. 삼성은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해결된다고 여기는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서 본다면 삼성은 괴물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을 거의 완벽하게 자기 손아귀에 잡아넣고 있습니다. 지난해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그야말로 겉으로 드러난 빙산밖에 안 됩니다. 스포츠에서는 그런 ‘돈빨’이 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 그게 아니었다 속을지라도 당장은 그리 확인하고픈 욕심 같은 것이 제게 있습니다. 이런 심정을 담아 6년 전에 쓴 글이 있습니다. 2002..

왜 아등바등 서울에 사세요?

우리나라 대중교통업계에서 최고의 소비자를 뽑아 주는 상이 있다면, 아마 내가 받아야 할 것이다. 아예 자가용 승용차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다, 워낙 많이 싸돌아다니기 때문에 버스나 기차, 택시업자에겐 최고의 고객이다.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쓴 대중교통요금만 모으면 아파트를 몇 채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특히 택시는 최소 하루에 서너 번은 탄다. 모르긴 몰라도 마산·창원의 택시 기사 중 지난 17년간 한 번쯤 나를 태워보지 않은 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은 구면인 기사님들도 꽤 있다. 지역에 오면 삶이 윤택해진다 자주 다니는 서울이나 대전, 진주, 남해도 그렇다. 나는 타지역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사납금과 만근 일수, 월수입 등을 물어본다. 그 결과 서울이나 마산이나, 대전이나 남해..

10대들 "청와대·조선일보 못믿겠다"

오늘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책 한 권이 나에게 배달돼 왔다.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다. 지난 촛불집회의 주력이자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한국의 10대. 그들은 미디어와 권력기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언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흥미로워 할 설문조사 결과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한국언론재단 유선영 연구위원이 리서치&리서치에 의뢰, 서울 거주 중고등학생 408명(남학생 204, 여학생 204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한 결과를 10월호에 발표한 것. 10대들은 언론 및 정부 사회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정부와 청와대, 한나라당, 국회에 꼴찌 점수를 매겼다. 가장 못믿을 집단과 기관이라는 것이다. 반면 MBC와 KBS를 가장 신뢰하고 있었으며, 네티즌과 인터넷포털, 한겨레신문이 그 뒤를 이었..

‘빠구리’ 때문에 돈 벌게 생겼다고?

2008년 3월에, 뜻하지 않게 표절을 당하게 됐고, 뒤늦게 알기는 했지만 꼭 고소를 하겠다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속보(續報)인 셈입니다. *이전 글 : ‘빠구리’ 때문에 당한 황당한 표절 낱말은 같지만 전라도 말뜻과 경상도 말뜻이 서로 다르다는 것과 이에 따른 말맛의 쫀득쫀득함을 적은 글이 ‘에로틱’하게 상업적으로 악용돼 아주 기분이 사나웠다는 말씀도 그 때 드렸더랬습니다. 그 때 곧바로 제가 살고 있는 창원중부경찰서를 찾아가 곧바로 고소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있다가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공소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2004년 9월 표절을 했으니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하려면 공소 시효 3년이 적용돼 늦어도 2007년 9월에는 기소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

일본 골프장이 줄줄이 망하는 이유

마침 소나기가 그쳤다. 토치기현 오타와라시 외곽에 있는 나수쿠로바네(那須黑羽)골프장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미사와(三澤) 회장이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곧 다시 비가 쏟아질텐데, 코스를 둘러보려면 지금 보시고, 인터뷰는 나중에 하는 게 어떨까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코스 안내는 구로다(黑田) 대표취체역 총지배인이 맡았다. 그는 승용카트를 몰고 연못으로 조성된 워터해저드(Water hazard)가 아름답다는 7홀로 우리를 안내했다. 다른 홀도 둘러보겠느냐고 했지만 사양했다. 일본의 여느 골프장처럼 숲이 많았고, 퍼팅그린은 한지형 잔디인 밴트그라스, 가장 넓은 페어웨이는 흔히 금잔디로 불리는 한국산 고려였다. 코스를 벗어난 러프는 모두 한국형 들잔디였다. 더 둘러볼 것도 없었다. 미사와 회장은 골프장..

20년 동안 노조 위원장만 한 사람

9월 초순 제가 몸담고 있는 언론노조가 단체협약을 두고 사용자 집단과 교섭을 벌이다가 조정신청을 하는 바람에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 가서 무슨 책자를 뒤적이다가 조정위원 명단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아니, 조그맣지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노조 쪽 조정위원 가운데 눈에 익은 이름을 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민주노총이 아닌 한국노총에서 추천을 했습니다. “어째 이 사람이 아직도…….” 그 사람 이름을 보고 제가 그렇게 놀란 까닭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3년 전인 95년 5월에도 노조 위원장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창원공단 중소 규모 노조였는데, 그 공장은 임금도 아주 적고 작업환경도 너무 나빠 사흘 들이로 그만두는 사람이 많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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