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우후죽순 골프장, 문제는 없나

일본 골프장이 줄줄이 망하는 이유

기록하는 사람 2008. 10. 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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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소나기가 그쳤다. 토치기현 오타와라시 외곽에 있는 나수쿠로바네(那須黑羽)골프장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미사와(三澤) 회장이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곧 다시 비가 쏟아질텐데, 코스를 둘러보려면 지금 보시고, 인터뷰는 나중에 하는 게 어떨까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코스 안내는 구로다(黑田) 대표취체역 총지배인이 맡았다. 그는 승용카트를 몰고 연못으로 조성된 워터해저드(Water hazard)가 아름답다는 7홀로 우리를 안내했다.

다른 홀도 둘러보겠느냐고 했지만 사양했다. 일본의 여느 골프장처럼 숲이 많았고, 퍼팅그린은 한지형 잔디인 밴트그라스, 가장 넓은 페어웨이는 흔히 금잔디로 불리는 한국산 고려였다. 코스를 벗어난 러프는 모두 한국형 들잔디였다. 더 둘러볼 것도 없었다.


연못으로 된 워터헤저드가 아름답다며 안내해준 나수쿠로바네 골프장의 7홀.


미사와 회장은 골프장 업계에서만 33년을 일해온 사람이다. 스스로도 '일본 골프장 업계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며 웃었다. 그는 일본 골프산업의 역사에서 세 번의 골프 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1차 골프 붐은 1952년 캐나다컵 골프대회에서 나까무라 선수가 우승을 했을 때였고, 2차는 1972년 다나카 수상 시절, 골프장의 도시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지방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런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골프장이 급격히 늘었죠. 3차 골프 붐은 1988~89년 거품 경제가 찾아왔을 때였죠."

일본 골프장 업계가 한국에 주는 충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3차 골프 붐이 일본 골프산업을 망하게 했습니다. 그 때도 골프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는데, 당시일본도  회원권이 몇 억 엔씩 했어요. 이렇게 회원권을 모집해 골프장을 짓는 예탁금 제도가 일본 골프장을 망하게 한 원흉입니다. 거품이 걷히면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는 게 예탁금 제도라는 겁니다."


그가 일하고 있는 나수쿠로바네골프장도 2차 골프 붐 때 640명의 회원을 모아 건설됐다. 그러나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이 골프장도 부도가 났고, 2년 전 4명의 한국인이 공동출자해 인수했다.


"거품 경제 시기에는 1인당 100만 엔씩 500~1000명의 회원을 모집해 골프장을 짓고도 충분히 경영이 될 것으로 생각했죠. 물론 그 때도 도심에서 먼 골프장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곳이 많았어요. 하지만 예탁금과 연회비, 비싼 이용료로 메꿀 수 있었죠. 그 때만 해도 접대골프가 많아 이용료가 비싸더라도 회사에서 지불하니 문제가 없었지만, 경기 불황이 오면서 접대골프가 줄어들자 거의 모든 골프장이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한 나라에서 700개가 넘는 골프장이 부도 또는 경영난으로 소유주가 바뀐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걸로 입은 손실만 해도 15조 엔(약 150조 원)이예요. 결국 멤버(회원) 방식이 이런 사태를 불렀던 거죠."


그의 말처럼 100억 엔을 들여 조성된 일본 골프장이 부도가 나면 10억 엔 정도의 가격으로 외국 자본에 팔리고 있다. 한국 돈으로 골프장 한 곳당 900억 원이 손실을 보는 셈이다. 국가경제로 볼 때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미사와 회장의 이야기는 한국 골프산업에 대한 충고로 이어졌다.


"일본에서 부도가 난 700개 골프장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먼 곳에 있었습니다. 수도권 주변은 땅값이 비싸다보니 먼 곳에도 장사가 될 것으로 보고 마구 지었기 때문이죠. 적어도 대도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곳은 망한다고 봐야 합니다."


골프 수요가 넘칠 때는 회원권과 비싼 이용료로 그럭저럭 유지가 가능하겠지만, 경기가 어려워지고 골프 인구가 늘어나지 않으면 십중팔구 회원권 가격이 하락하고 반환요구가 들어오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미 골프장 이용객수와 회원권 시세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한국도 일본처럼 줄도산과 부도사태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국 골프장 업계에 세 가지 충고를 해줬다.


"첫째, 예탁금(회원제) 제도는 경영파탄의 지름길입니다. 둘째, 대도시에서 한 시간 거리, 멀어도 한시간 반 안에 갈 수 없는 곳에는 안 됩니다. 세째,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 이상 서양잔디는 일본이나 한국에 맞지 않습니다."


일본 토치기현 우쓰노미야시에 있는 레이크랜드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일본은 회원제 골프장에서도 이미 캐디 없이 스스로 승용카트나 수동카트를 끌고 다니는 셀프 플레이가 정착돼 있었다. 또 가족이 따라와 구경하는 것도 허용한다. 이용료도 한국 골프장의 절반 수준이다. 골프장에서 일하는 직원도 한국보다 훨씬 적다. 기후와 토질에 맞는 한국산 잔디 덕분에 코스 관리 비용도 적게 든다. 또 한국은 일본 동북지방처럼 겨울엔 가동하지 못하는 골프장이 많다.

이런 것만 봐도 한국 골프장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중앙정부가 골프장 건설을 부추기고 지방자치단체는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몇 년 뒤, 일본과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지 궁금하다.

골프장은 돈 버는 산업이 아니다

다케야마 취체역지배인.

역시 토치기현 우쓰노미야시에 있는 레이크랜드골프장은 일본의 유명한 양복 기업인 온워드 소유이다. 대형 리조트도 운영하고 있다.

레이크랜드골프장의 다케야마(高山) 취체역지배인은 40대 중년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골프장은 돈을 잘 벌 수 없는 업종'이라고 생각한다. 레이크랜드는 현재 연 1300만 엔(약 1억30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이 정도 적자는 양호한 편이죠. 불경기가 되면 가장 먼저 서비스 업종부터 위축이 됩니다. 그래서 일본의 골프장은 현상유지만 되면 잘 되는 걸로 보는데,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많죠."


그는 경기 불황뿐 아니라 젊은 골프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스포츠와 여가생활이 다양화함에 따라 젊은 층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골프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도 이미 골프장 이용객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국 골프장의 이용객수 추이에 대한 통계를 이야기해줬더니, "일본이랑 똑같은 상황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더 이상 골프장을 지으면 안된다"고 충고했다.


이쿠다골프장의 우미노 총지배인.

가나카와현 가와사키시에는 시가 출자한 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이쿠다(生田)국제골프장이 있다. 이곳의 경영자는 대개 환경공무원 출신이 맡고 있다.

이 골프장의 총지배인 우미노(海野)씨는 "한국이나 일본의 골프장은 불도저로 자연지형을 바꾸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런 것은 "미국인이나 영국인에게 맡길 일이며 아시아인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린 아시아형 코스를 개발해야 합니다. 한국의 골프장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골프장이어야 한다는 거죠. 한국의 소나무를 최대한 활용한 코스도 좋을 것 같네요."


그 역시 골프장은 흑자를 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골프장은 주식회사로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식회사는 매상이 계속 올라가야 하지만, 골프장 자체가 많은 흑자를 남길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골프장은 재단법인이나 큰 대기업에서나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골프장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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