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카피 때문에 슬퍼진 최진실 인생

김훤주 2008. 10. 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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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을 딴 최진실

저는 63년생입니다. 제가 이름을 알고 나름대로 좋아하기까지 하는 여자 연예인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나이가 저보다 적은 사람은 아마도, 최진실 씨와 정선경 씨 둘 정도가 전부이지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제가 스무 살 청춘을 보낸 80년대 대부분과 90년대 초반은, 정치로 보면 독재가 깨지고 지배 구조가 재편되는 어수선한 국면이었습니다만, 경제 측면에서는 독점 자본의 성장과 지배가 안팎으로 안정되고 완성되는 시기였습니다.

독점 자본의 안정된 지배의 완성이란 사회적으로는 계층 이동의 제한․제약으로 나타납니다. 90년대 들어 더욱 심해졌지요. 적어도 80년대 초반에만 해도 시골 촌놈이 이른바 좋은 대학 나와서 출세하는 얘기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 같은 ‘성공한 촌놈(또는 촌년)’이 드물어졌습니다. 갈수록 적어졌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진실 씨는 거의 마지막으로 신분 상승을 이룩한 연예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88년으로 저는 기억을 하는데요, 최진실 씨가 삼성전자 광고에 나왔습니다. 아주 앳된 모습으로 “남자는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합니다. 알려진대로 이 광고 하나로 최진실 씨는 발 딛고 선 현실을 떠나, 마음으로 그리던 별을 따 자기 가슴에 달고야 말았습니다.


2. 별이 된 최진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저는 이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뒤에 가려진 사연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번에 최진실 씨 자살이 있고 나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춰보니 최진실 씨도 자기가 갖고 있었던 ‘최초’ 기록이 적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광고로 스타가 된 최초입니다. 더 이상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메니지먼트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최초입니다. 세 번째는 92년 그이가 출연한 ‘질투’가 새로운 트렌드 드라마로서 최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이가 혼자 노력해서 스스로 별이 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모자랐습니다만, 제 또래에서는 이리 생각하기가 십상입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기 연예인들의 상징 조작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여우면서도 갖은 풍상을 다 겪은 듯한 타고난 겉모습에,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기획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압구정동 가지 마라, 디스코테크 가지 마라. 남자를 만나도 한 남자만 사귀어라.”(‘시사인’ 10월 11일치 56호 “그녀의 죽음은 우리 시대의 패배”에서 재인용)


최진실 씨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귀여움에다 친근함이 겹쳐졌습니다. 그이가 겪었던 어린 시절 가난과 청춘 시절 성공을 위한 피어린 몸부림도 좋은 도구가 됐습니다. 이럴 때 이 말을 써도 좋을지 망설여지기는 하는데, ‘서민성’까지 띄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서민성은, 많은 서민으로 하여금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자체만 두고 보면 이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서민들도 대부분은 나중에는 결국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리 될 수 없어.’ 깨닫기 때문이지요.


3. 사라진 별 최진실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탄 듯이 신분 상승을 이룩한, 그러면서도 귀여움과 친근함 이미지로 둘러싸인 그이는, 그에 걸맞게 여러 어려움을 맞이하고 또 그 어려움을 어떻게든 뛰어넘었습니다.


94년 최진실 씨 운전기사(요즘은 ‘로드 매니저’라 하지요.)가 최 씨 매니저 배병수 씨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네요. 이 때도 악성 루머가 무성했습니다. 2000년 프로야구선수 조성민 씨와 결혼하고 2004년 이혼했습니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가정 폭력까지 겪었으나 최 씨는 오히려 폭력을 유도했다는 비난을 받았어야 했지요. 이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져 자기가 출연했던 광고업체에게서 3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따위는 최진실 씨의 당당함과 악착스러움을 보여주는 또는 돋보이게 하는 보조 도구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그이는 이 모든 것을 물리치고 뿌리치고 이겨가면서 자기 면모를 날마다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너무 많은 미디어들이 너무 많이 떠들어댔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결론 삼아 말하자면, 최진실 씨는 지난 20년 동안 높고 험한 산을 많이 넘었으나 결국은 야트막한 언덕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원인은 지금 눈앞에 있는 작은 언덕이 아닙니다. 그이가 넘어온 숱한 산들이 원인입니다. 그이가 그 숱한 산을 넘을 때 도구로 썼던 여러 가지들이 원인일 것입니다. 거듭거듭 피로가 쌓였습니다. 그 피로를 풀기 위해 먹었던 것들이 중독 증세를 일으켰습니다.

4. 깨지게 마련인 신화

1988년 스물여섯 어린 때였지만, 저는 스물 한 살 그이의 등장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이가 입에 물고 나온 ‘남자는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가 더없이 황당무계하고 앞뒤조차 맞지 않는 ‘신화(神話)’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화는 필연 결핍과 동시에 개연 과잉을 겪습니다. 저는 언젠가 최진실 씨가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우스개 삼아 한 적도 있습니다. 최진실 씨의 진실과 달리, 제가 아는 진실은 이렇습니다. ‘남자는요, 여자 하기 나름이 절대 아니에요.’


이 말을 일반화하면 이렇게 됩니다. ‘세상은요, 사람 하기 나름이에요.’ 범주를 바꿔 보면 ‘선생은요, 학생 하기 나름이에요.’, ‘대통령요, 국민 하기 나름이에요.’, ‘자본가요, 노동자 하기 나름이에요.’ 등등이 ‘생성’됩니다. 그러나 그렇습니까?


최진실 씨 살아온 나날로 이를 재구성하면 허황됨이 더 뚜렷해집니다. ‘남편 조성민 씨 폭력은 아내 최진실 씨 하기 나름이었어요.’ 또 최 씨의 자살을 두고는, 광고 카피의 변주인 ‘세상은요, 사람 하기 나름이에요.’가 거짓 명제임을 입증한 사건이라 규정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던져진 메시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 분명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이가 귀여워서 좋았습니다. 조성민 씨와 결혼한다 할 때는 살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헤어진다 할 때는 안타까웠습니다. 어쨌거나, 최진실 씨의 명복을, 늦었지만 한 번 더 빕니다.


김훤주

※ ‘창원대신문’(2008년 10월 20일자)에 써 넘긴 글을 조금 많이 고쳤습니다.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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