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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아는 몸과 고통을 아는 몸

'김형률'을 읽었습니다. 아직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 핵피폭자가 2만 명 넘게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이들이 낳은 자식(핵피폭2세)이 적어도 1만 명 가까이 되는데 그들 또한 ‘핵피폭에 따른 유전 (위험)’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들 핵피폭1세와 2세에 대한 실태조사가 거의 전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는 사실 또한 제게는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하나씩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이 터진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라 합니다. 김형률은 핵피폭2세입니다. 1970년 태..

팩트의 힘은 강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 레드 툼

"저는 아버지란 사람이 원래 없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다른 아이들 집에는 아버지가 있는 거에요. 그때서야 우리 아버지만 없다는 걸 알았지요." 엄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를 잃었던 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민간인학살로 살해됐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보통 우리는 부모를 잃고 1년 만 지나도 슬픔을 잊는다. 아버지 제사가 돌아와도 우는 경우는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영화 (감독 구자환)에서는 나이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65년 전 헤어진 사람을 그리며 서럽게 운다. 빗속에서 진흙탕에 막걸리를 뿌리며 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원통하게 했을까? 영화 은 어설프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

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

대출해주고 못 받아도 된다는 은행 지점장

박종권. 한국나이로 올해 64세라고 하니 1952년생 용띠일 것이다. 근 10년 전 54세에 기업은행 마산지점장 자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나왔다. 그 후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운동을 열심히 해왔고, 얼마 전까지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경남블로그공동체(경남블공)가 초청해 '은퇴 후 재미있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6월 25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다. 1시간정도 강당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통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간담회를 계속했다. 박종권 씨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는 아주 솔직하고 소탈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은행 지점장으로서 대출에 대한 그의 소신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사업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

권력자들은 수평폭력 심리를 어떻게 이용할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강자에게 당한 설움을 엉뚱한 약자에게 푼다는 말이다. 프란츠 파농이 제시한 '수평 폭력'의 심리적 기제와 비슷하다. 자신을 억압하는 거대 권력의 수직 폭력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만만한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심리다. 권력자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통치술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조선인과 중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일본 내무성은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경찰에 지시한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

12화. 조현오의 조직장악 비결은 '감찰'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

포크레인 타고 해저 42미터까지 내려간 남자

포크레인에 사람이 타고 35~40미터 해저에 들어가 바닷속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실제 가능성이 확인됐다. 지난 6월 28일 태종대가 보이는 부산 앞바다 5마일 해상에서 포크레인을 개조한 해저 유인탐사정 '해마1호'가 실험 결과 35~44미터 해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던 것이다. 이 휘귀한 실험을 우연히 내가 지켜보게 됐다. 지인을 통해 이런 실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호기심이 일어 크레인선에 동승했던 것이다. 해양개발사업 법인 Inner Space Won Jung 정도현 대표는 "이번 실험으로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점이 있었지만, 일단 공기통 없이 대기상태와 똑같은 조건에서 해저까지 내려가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1. 포크레인 엔진 열로 인해 내부가 더웠다는 점 2..

언론노조와 기자협회에 드리는 부탁

[바심마당]연감 강매, 이것만이라도 해결해보자 김영인 아시아투데이 전 논설위원이 쓴 (지식공방)라는 책을 봤다. 제목 그대로 기자들이 받아먹거나 뜯어먹는 추악한 촌지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지방 출장과 해외 취재를 빙자한 호화 술판과 성매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길 포기한 기자(棄者)의 적나라한 맨살을 드러낸다. 기자의 이런 고백이나 고발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김 전 위원이 일선에서 일하던 시절과 지금의 언론 환경은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촌지’에 관한 한 그때보다 훨씬 맑아졌다고 본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언론계의 구습이 있다. ‘연감 강매’다. 출입처 취재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가장 광범위한 피해자를 양산한다. 구습이라 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사기나 공갈이다..

진주성 7만의총 건립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월간 피플파워 7월호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 저는 요즘 언론비평 전문지 에 매월 고정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무모한 실험, 지역에서 출판하기'라는 글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풍성해지려면 다양한 지역 콘텐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홈플러스와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는 전 국민의 소비 형태를 획일화·평준화시킨다. 그러나 전통시장에는 그 지역 고유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살아있다." 그렇습니다. 최근 이라는 책을 펴낸 신영복 선생은 인터뷰에서 '변방'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대칭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군림하는 집단은 다 자기 이유가 있는데. 그런데 그런 중심부 집단은 그게 또 약점이 돼요. 중심부는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드..

11화.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막후 암투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

올해 진실의 힘 인권상 강기훈 씨 선정

6월 26일은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이라고 하는군요. 이날을 맞아 재단법인 진실의힘이 '진실의 날 인권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이번 제5회 수상자로는 유서를 대필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 씨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블로그에 보도자료 전문을 올립니다. 강기훈씨, ‘제5회 진실의힘 인권상’ 선정!2015년 6.26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 한국의 고문생존자들이 만든 재단법인 진실의힘은 매년 6월 26일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United Nations Day in Support of Victims of Torture)'을 기념합니다. 특히 을 시상하여 고문과 국가폭력 생존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고문의 재발방지에..

따오기 인공번식은 동물원도 할 수 있다

6월 17일 창원 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에서는 ‘습지 생태계 생물 다양성 증진 및 멸종위기종 복원을 위한 서식처 관리 전략 수립 전문가 회의’가 있어서 한국과 일본의 습지·생태 전문가 스물 남짓이 모였습니다.(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주최) 이 날 저는 ‘사도시 따오기 야생 복귀를 위한 서식처 관리 방안’에 눈길이 갔습니다. 일본 니이가타대학 부설 필드(フィ―ルド·Field, 야생? 들판? 현장?)과학교육연구센터의 홈마 고스케(本間 航介)씨가 발표를 했습니다. 일본 사도시는 인공 번식지에서 자라난 따오기를 2008년부터 해마다 야생에 풀어놓아 2013년 현재 142마리가 됐습니다. 홈마씨는 이번에 사도시 사례를 통해 따오기의 움직임, 생존 환경, 먹이, 둥지 등이 어떤지 보여줬습니다. 아울러 서식지 전체에 ..

뉴스펀딩과 지역출판 중간보고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남도민일보 이사/출판미디어국장을 맡고 있는 김주완입니다. 요즘 저희가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일을 알려드리려고 메일 올립니다. 1. 저희는 최근 '뉴스펀딩'이라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포털 다음에서 이미 뉴스펀딩을 하고 있고, 저도 '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이라는 프로젝트를 다음의 플랫폼에서 연재했고, 나름의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포털에 의존한 뉴스펀딩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고 한계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아예 자체적으로 뉴스펀딩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오마이뉴스나 민중의 소리 같은 매체도 이미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 등 이름으로 기사에 후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희는 좀 다르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모든 기사에 적용하는 게..

포로수용소는 거제를 어떻게 바꿨을까?

1. 포로수용소가 왜 거제도에 있었을까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알리는 팸플릿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여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국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3000여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1년 최초의..

가본 곳 2015.06.25

지심도 일본 포병에게 동백꽃은 어땠을까?

동백으로 이름높은 섬 거제 지심도. 아울러 일제 군사시설 잔재가 가장 밀집돼 있는 데가 바로 이 지심도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태 나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가 빼곡하니 남아 있는 일제 군사기지 유적을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5년)을 앞두고 진해만 일대를 장악했습니다. 지금 창원시 진해구 우리나라 해군 시설이 있는 데는 물론이고 거제도 일대가 모두 포함됩니다. 방어와 공격에서 요충임을 알아챈 일본은 1903년 거제 송진포에 방비대를 설치한 이래 거제 전역을 군사 지역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심도에는 원래 살던 조선 사람들을 죄다 쫓아내고 1936~38년 3년에 걸쳐 포대(100명 규모)를 설치했습니다. 2003년인가에 이를 말해주는 일본군 문서가 발견..

가본 곳 2015.06.24

삼가장 재첩으로 길어올린 옛 기억

재첩. 70년대 중반 부산 서대신동 산동네 살 때, 잠을 깨우는 새벽 소리는 "재치꾹 사이소~~ 재치꾹 사이소, 재치꾹~"이었습니다. 그 때 이미 경남에서 부산으로 편입돼 있었던, 하단에서 온 아지매들이었습니다. 하단(下端)-그러니까 낙동강 가장 아래 끄트머리라는 뜻인데 바다의 짠물과 육지의 민물이 뒤섞이는 장소(기수역汽水域이라고들 합니다만.)였습니다. 윗섶이 날리지 않도록 허리 위를 끈으로 동여맨 아지매들은, 양동이를 머리에 이었으면서도 산동네 그 가파른 골목길을 잘도 헤치고 다녔습니다. "재치꾹 사이소~~~" 소리에 선잠이 깬 우리는,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대문이라 하기에는 퍽이나 초라하지만, 그래도 달리 부를 이름은 없는 곰삭은 나무문을 삐걱 열고 나가 50원 어치 100원 어치를 양..

김형률이 온몸으로 보여준 ‘핵피폭의 유전’

여태까지 기록을 보면 1945년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떨어진 핵폭탄 관련 통계는 대충 이렇습니다. 전체 피폭자 69만1500명에 폭사자가 23만3500명(33.77%)입니다. 이 가운데 조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처음 듣고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7만명이 조선 사람이었습니다. 4만명이 죽고 나머지 3만명 가운데 2만3000명은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7000명은 일본에 그대로 남았다고 합니다. 조선으로 돌아온 2만3000명은 대부분 이북이 아닌 이남에 연고가 있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수탈과 전쟁물자 강탈로 먹고 살 터전을 잃어버린 조선 사람들이, 남쪽은 주로 일본으로 가고 북쪽은 주로 만주로 갔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2만3000명 ..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정상화는 사기업화

5월 22일 부산시청에서 ‘부산지역 공공기관 노동조합 협의회’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오후 2시 즈음으로 기억돼 있는데, 이 자리에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몇몇 블로거들을 초청하는 바람에 저도 덩달아 끼였습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구분없이 부산에 있는 공공기관 노조면 모두 참여한 모양이었는데 그런 때문인지 협의회 대표는 한국노총 공공노조연맹 부산본부 의장(도용회)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장(석병수)이 공동으로 맡고 있었습니다. 공공기관이라 하면 우리 사회 유지·발전에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일 텐데 이를테면 전기·철도·환경·가스·교통·고용보험·연금·의료 등등이 되겠습니다. 부산 지역 24개 조직 1만3000명 조합원이 함께한다고 합니다. 협의회를 따르면 공공기관 노조들이 지역 ..

숲과 어울려 더욱 멋진 옛집과 절간

6월 3일 충북 보은으로 떠난 생태·역사기행(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후원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주관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 주최)은 법주사와 선병국 가옥을 찾았습니다. 선병국 가옥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134칸이나 되게 엄청난 규모로 지어진 대단한 옛 집이고 법주사는 신라시대 들어선 이래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지금도 명찰로 이름높은 대단한 절간이랍니다. 법주사와 선병국 가옥은 이런 대단함 말고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숲을 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 8시 창원 만남의 광장을 출발한 버스는 10시 40분 즈음 선병국 가옥에 닿았습니다. 잡초가 곳곳에 우묵하게 자라 있고 농기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등 잘 가꿔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씩 들르는 관광객에게는 어수선한 모습이겠으나 여기..

가본 곳 2015.06.20

핵피폭2세 김형률의 삶과 반핵=인권

5월 22일 부산지하철공사노동조합이 불러주는 바람에 부산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 말고도 몇몇 블로거들을 더 불렀던 모양입니다. 가기에 앞서 이메일로 일정을 받아봤습니다. 노동조합 기자회견 하나, 농성 현장 방문 하나, 그리고 김형률 생가 방문과 추모문화제 참가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김형률이라……, 부산에서 여러 모로 대단하게 활동을 펼치다가 세상을 떠난 유명 인물이 있는 모양이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산 가기로 돼 있는 날 아침 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원폭 피해자 2세’ 김형률 아시나요?” 몰랐습니다. 이름은 부산지하철노조가 보낸 메일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이가 핵폭탄 피해자 2세인 줄은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기사를 따라 읽어내려가면서 참 무심하게 살았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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