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형 작가/조현오의 구겨진 제복

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반응형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까. 근거없는 비난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만 아니라면 이 블로그는 글쓰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편집자 김주완]



[구겨진 제복] 13화. 조현오는 조폭과 어떻게 싸웠나


2011년 10월 22일 오전 조현오는 전날 밤 인천길병원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을 보고받는다. 장례식장 앞에서 조직폭력배끼리 단순 충돌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일 저녁 SBS 뉴스는 전혀 다른 영상을 내보냈다. 화면에서는 인천 조폭 130여 명이 도심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조현오는 허위·축소 보고를 받은 것이다.


격노한 조현오는 감찰과장에게 바로 전화했다. 경찰청 감찰팀은 인천남동경찰서 사무실 CCTV를 면밀하게 살폈다. 112 신고 접수가 되자 경찰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파악했다. 조사가 끝난 23일 인천남동경찰서장이 직위해제됐다. 남동서 형사과장, 강력3팀장, 상황실장, 지구대 순찰팀장 등도 중징계를 받았다.


조현오는 “경찰이 조폭에게 위축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질책했다. 이에 현장에 출동한 강력3팀장이 반박하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게 외부로 공개됐다.


‘저는 사무실에 있다가 상황실 연락을 받고 테이저건 등 장비를 챙겨 장례식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중략) 저는 현장책임자로서 동료 직원과 더불어 흉기를 소지한 범인을 제압하고 피해자를 구조 후송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하 생략)


경찰 주장은 이렇다. 상황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고 조폭이 집결하자 경고 방송을 보냈다. 형사 5명이 칼부림을 한 가해자를 제압했고 집결한 조폭과 대치했다. 칼에 찔린 피해자를 후송하고 사건 현장을 채증했다. 그런데 SBS가 형사를 조폭으로 잘못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경찰청 감찰팀이 반박했다. 경찰이 아무리 활약했다 해도 초동 대응 실패를 덮을 수 없다고 했다. 2011년 10월 21일 현장 상황은 어땠을까.


인천 폭력조직인 크라운파 조직원 부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빈소가 인천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이어 빈소에 인천 조직폭력배들이 문상을 오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신간석파 K씨와 크라운파 L씨가 만났다. L씨가 K씨를 향해 빈정거린 게 발단이었다. 각자 자기 조직원을 소집하면서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졌다.



10시 18분 1차 112신고가 접수됐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례식장 엘리베이터 앞에 몰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천남동경찰서 강력반과 상황실이 동시에 신고를 접수했다. 조폭은 지구대 파출소 경찰은 겁을 내지 않는다. 조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경찰은 강력계 조폭 담당 형사다. 하지만, 최초 신고 당시 강력팀 형사는 출동하지 않았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쪽은 구월지구대 순찰차였다. 순찰차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그냥 사태를 지켜보기로 한다.


10시 51분 조폭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싸운다는 2·3차 신고가 들어온다. 순찰차가 추가로 도착했다. 지구대 순찰팀장은 조폭끼리 싸움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말 것을 지시한다. 현장에서 순찰차 두 대가 철수한다.


11시 18분 조폭들이 싸우니 빨리 와 달라는 4차 신고가 접수된다. 11시 45분에 출동한 인천남동경찰서 형사 5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100여 명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K씨가 L씨를 흉기로 찔렀고 형사들이 K씨를 제압했다.


조현오는 사건 현장에 형사 5명만 있었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집단폭력 대처 매뉴얼에는 사건 발생 즉시 관할 서장에게 보고해 초기에 경찰을 집중 투입하여 전원 검거하도록 돼 있다. 출동 인원만으로 제압하기 어렵다면 상황실에 기동타격대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관할 경찰서 인력으로 진압이 어렵다면 지방청에 요청할 수도 있다. 지방청은 폭력계와 광역수사대를 운영한다. 폭력계는 폭력조직을 수사·관리하며, 광역수사대는 경찰서 2개 이상이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고자 만든 것이다. 조현오는 활용 가능한 경찰력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 채 공권력이 무력한 모습을 보인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대대적인 감찰이 진행됐다. 감찰 결과 강력3팀장은 형사과장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팀장이 과장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면 맡은 임무는 다한 것이다. 강력3팀장에 대한 징계는 일단 거두게 된다.


조현오는 폭력조직과 전쟁을 선포한다. 조폭에게 인권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고 조폭이 폭력을 행사하면 총기라도 과감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10월 30일 자 ‘조현오 경찰청장의 처신 경박하고 무책임했다’는 사설을 통해 조현오가 ‘조폭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1990년대 형사과장 시절부터 총기 사용 발언을 했다.


조현오는 1990년 부산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부산은 해운대와 항만이 있다. 항만은 마약이 들어오는 통로이며 마약과 조폭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여름 치안 로드맵 중심에는 해운대가 있다. 돈과 사람이 몰리는 곳에도 조폭은 있다. 부산 최대 폭력조직은 ‘칠성파’였다. 조현오가 형사과장이던 때도 ‘조직 폭력과 전쟁’은 한참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형사들 사이에는 총을 던져서 범인을 검거한다는 한탄이 떠돌았다. 검거 과정에서 총을 쏘면 손해배상과 감찰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 칠성파 두목 이강한을 비롯해 간부급 조폭이 구속된다. 그렇다고 조직이 와해된 것은 아니었다. 이강한은 1999년에 출소한다. 그 사이 신흥 조직인 ‘신20세기파’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칠성파와 영역 다툼이 본격화됐다. 유흥업소 등을 놓고 벌인 주도권 다툼은 1992년 7월 칠성파 조직원이 20세기파 간부를 살해하면서 불거졌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가 소재로 삼은 사건이다.


2006년 1월 신20세기파가 보복에 나섰다. 부산 내 반 칠성파 세력을 규합해 60여 명이 흉기를 들고 칠성파가 모인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난입했다. 이 사건 이후 2년이 흐른 2008년 조현오가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온다. 조현오는 경찰에게 조폭 검거 과정에서 위협을 느끼면 과감하게 쏘라고 지시한다. 일선 경찰에게는 놀라운 발언이었다.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누가 책임지겠다고 하나요? 주변에 다 책임 안 지려는 사람들뿐인데….”


당시 이강한이 부산에 있는 한 호텔 사우나에서 목격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조현오는 부산지역 사우나에 조폭 출입을 금지했다. 전신 문신은 일반 시민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어서 경범죄 처벌 사유가 됐다. 형사들은 목욕탕에서 나오는 조폭에게 5만 원 과태료 스티커를 건네며 사우나에 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사우나에 조폭을 출입금지 하는 조치는 이전 부산 청장들도 했던 단속 방법이었다. 하지만, 조현오는 두 가지 면에서 달랐다. 총기 사용과 더불어 조직 자금줄을 추적해 차단한 것이다. 조폭은 오락실 수익금 상납금을 바탕으로 조직을 관리했다. 다른 자금 확보 방법으로는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 고희연, 생일잔치 등을 활용했다.



잔치는 보통 호텔에서 열렸고 조폭은 관할 구역 영업소 사장에게 초대장을 돌렸다. 형사들은 하객을 대상으로 참석 경위와 강압 여부를 조사했다. 조현오는 조폭 행사는 경찰이 확실하게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호텔에서 행사를 하더라도 민간인처럼 조용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건장한 남자가 깍두기 머리에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90도 각도로 절하는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조현오는 조폭들이 위력을 과시하면 공권력을 발휘했다.


행사에는 부산지방청 광역수사대, 강력수사계, 폭력수사계, 기동대, 관할 경찰서 강력팀 형사 등을 배치했다. 조현오는 조폭을 상대하면서 일선 경찰서, 지방경찰청 단위로 분산된 형사 인력으로 효율적인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경찰 조직 내 최강 부대인 경찰 특공대를 호텔 행사장에 투입했다. 경찰특공대는 일선 경찰관들이 버거워하는 일들, 가령 조폭이 집단으로 흉기를 휴대해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지방청장 허가를 받아 출동한다. 조현오 지시를 받고 출동한 특공대원은 어떤 일을 했을까.


경찰특공대는 조폭이 타고 온 차를 검문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 칼이나 야구방망이 같은 흉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경찰직무집행법에 따르면 도검류는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된 도검류에는 레이저로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조현오는 다른 청장에게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언행이 있었다. 한 참여정부 인사는 경찰청장 시절 조현오 언행을 언급하며 ‘또라이’라고 비난했다. 2011년 1월 불거진 ‘함바 비리’ 사건에서 조현오가 취했던 방법도 이전 경찰청장들과는 전혀 달랐다.


(다음14화-근본적 사고)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이 연재를 계속 보고싶다면 아래 '밀어주기'로 서형 작가에게 취재비를 보태주세요. 100원, 500원, 1000원, 3000원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