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삼가장 재첩으로 길어올린 옛 기억

김훤주 2015. 6.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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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첩. 


70년대 중반 부산 서대신동 산동네 살 때, 잠을 깨우는 새벽 소리는 "재치꾹 사이소~~ 재치꾹 사이소, 재치꾹~"이었습니다. 


그 때 이미 경남에서 부산으로 편입돼 있었던, 하단에서 온 아지매들이었습니다. 

 

하단(下端)-그러니까 낙동강 가장 아래 끄트머리라는 뜻인데 바다의 짠물과 육지의 민물이 뒤섞이는 장소(기수역汽水域이라고들 합니다만.)였습니다. 


윗섶이 날리지 않도록 허리 위를 끈으로 동여맨 아지매들은, 양동이를 머리에 이었으면서도 산동네 그 가파른 골목길을 잘도 헤치고 다녔습니다. 


"재치꾹 사이소~~~" 소리에 선잠이 깬 우리는,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대문이라 하기에는 퍽이나 초라하지만, 그래도 달리 부를 이름은 없는 곰삭은 나무문을 삐걱 열고 나가 50원 어치 100원 어치를 양푼에 받아 와서는 형이랑 누나랑 식구들이 함께 아침밥을 말아먹곤 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알이 아주 실한 줄 알겠습니다.


그러다 제가 마산·창원에 와 있던 80년대 중후반에는, 재첩국이 가장 유명한 데가 부산 하단이 아닌 섬진강 일대 하동으로 이미 바뀌어 있었는데요. 


어떤 이는 하동 섬진강이 '예부터 줄곧' 가장 유명했었다고 기억하기도 합니다만, 실은 70년대 후반 낙동강 하구가 둑으로 막히면서 하단 일대 뻘들이 예전처럼은커녕 그보다 엄청나게 적게조차도 생명을 품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들어서 압니다. 


6월 17일 합천 삼가장에서 재첩을 샀습니다.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시장통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아직 덜 늙고 더 젊은 할매 난전으로 갔습니다.

 

이런 내륙 한복판 장터에 재첩이라니! -대부분은 재첩이 민물이 갱물과 만나는 하구 기수역에서만 나는 줄 알지만 실제는 민물서도 난다고 합니다. 


그날 점심으로 먹은 원조돼지국밥집 국밥(6000원)과 수육(5000원). 오른쪽 국물은 덤입니다.


재첩이 두 대야로 나뉘어 담겨 있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재첩 하동에서도 보기 어렵습니다. 큰 것은 500원짜리 돈짝 만하고요 작은 녀석도 대부분 그래도 100원짜리나 10원짜리 만은 합니다. 제가 멈춰 서서 스윽 눈길을 내리까니까 말을 걸어옵니다. 


"아재, 7000원에 가지 가이소~~" 

"한 대야에 7000원이지예?" 

"아이라, 두 개 7000원, 점섬 전에는 (한 대야에) 5000원썩 했는데~~~" 

"와 이래 쌉니꺼? (두 대야) 7000원이면 공짜다, 공짜." 

"와 아이라. 어지 이거 잡니라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돌 가리내니라 어깨는 둘러빠지는 줄 알았고. 

미나리는 안 사나? 2000원 하던 거 1000원에 가 가소." 

"와 이래 쌉니꺼? 정말 거저다, 거저." 

"시장시러바서, 집에 좀 일찍 갈라고~~~~" 


이렇게 해서 재첩 두 대야랑 미나리 두 단을 샀습니다. 

재첩국에는 정구지 또는 미나리를 잘게 썰어서 적당히 넣어야 씹는 맛도 있고 냄새도 좋습니다. 

미나리 볏짚으로 묶은 자태가 정겹습니다.


값을 따지면 9000원이지만 1만원짜리 드리고는 거스름돈은 주지 말라 했습니다.

할매가 '고맙다'고 했으나 정말 고마운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집에 가져와 이틀 동안 뻘물이 땟국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쉬엄쉬엄 문질렀습니다. 

대충 헤아려도 쉰 차례는 더 물을 갈아가며 치댄 것 같습니다. 그제야 씻은 물이 좀 맑아졌습니다. 


옛날 서대신동 산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누비던 하단 아지매들, 전날 저녁 때까지는 아마 물에 들어가 재첩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 먹고 나서는 잡은 재첩을 이렇게 치대고 문지르고 했겠지요. 


제가 했던 쉬엄쉬엄 쉰 차례와 아지매들 했었을 일삼아 쉰 차례를 두고 어느 쪽이 더 힘들겠느냐 물으면 어리석다 소리를 듣겠지요. 


그이들 귀찮음과 성가심과 고달픔과 힘듦은 아마도 어쩌다 한 번씩 허리 펼 때 뼈저리게 느껴오는 끊어질 듯한 아픔으로 나타나곤 했겠지요.



말갛게 끓여진 재첩국을 봅니다. 미나리 썰어서 동동 띄운 재첩국을 봅니다. 처음 해 보는 겨를에 물을 지나치게 부은 탓으로 조금은 싱거운 김훤주표 재첩국을 맛봅니다.

 

그러면서 그 맛에 어리어 옛날과 오늘날 기억을 이렇게 떠올려 봅니다.


어떤 때는 옛 기억이 새 기억을 끌어오고 또 어떤 때는 새 기억이 옛 기억을 밀어가면서 때로는 말려오고 때로는 펼쳐지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삶인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봤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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