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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어떤 문화재가 서울로 수탈 반출됐나

경남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서울로 반출된 문화재나 유물은 어떤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체계적으로 모든 것을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살펴보니 이런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구석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경남 양산 2007년 유물 환수 추진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던 양산은 일본으로 끌려나간 신라 금동관 등 일본 도쿄박물관에 들어 있는 800여 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소유로 돼 있으면서 동아대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는 고분 출토 유물을 반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도 절간 유물들을 되찾고자 지난해 11월 유물반환추진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추진위가 되찾으려는 유물은 회암사 약사삼존도, 청동 발우, 지공화상 비편(碑片), 은제도금라마탑형 사리구,..

서울 수탈 문화재 반환 안 되는 까닭

1. 경남에 없는 경남 문화재 창원 봉림사터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비(보물 363호)와 산청 범학리 3층석탑(국보 105호)처럼, '경남 출신' 문화재들이 꽤 많이 서울 등지로 '반출'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등에 박힌 채 '반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은 한 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 경남의 경우 창원 다호리 고분군과 창녕 교동 고분군 ·함안 도항리 고분군 ·합천 반계제 가야고분 출토 유물이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3층석탑(국보 34호) 사리장엄구, 의령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등도 아직까지 '반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한편 반환운동의 경우 경남에서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약탈당한 진주 연지사 동종을 되찾자는 운동을 빼면 양산에서 유일하게 2007년 한 때 민간 차..

노무현의 마지막 강의, 어떤 말 남겼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대중과 함께 했던 마지막 강의는 언제, 어떤 내용이었을까? 노무현 공식홈페이지였던 '사람사는 세상'의 '봉하사진관'과 '봉하영상관'에는 2008년 12월 5일 방문객 인사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마지막 영상의 제목은 "따뜻해지면 인사 드리러 나오겠습니다"였다. 하지만 그날 대중과의 만남은 당분간 이별을 고하는 의식이었을뿐 그의 생각과 철학을 밝힌 강연은 아니었다. ◇"길게 보자. 포기하지 말자" =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한 것은 그보다 2개월쯤 앞선 10월 12일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을운동회' 격려사가 마지막 영상기록이다. 경남노사모가 주관했던 그날의 운동회는 노사모 외에도 시민광장, 국민의 힘, 라디오2..

강유원 박사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 민주주의는 노무현의 죽음에서부터 이제 막 시작됐다." 인문학자이자 서평가인 강유원 박사(철학)는 "대통령을 공개석상에서 씹어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준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강 박사는 지난 5일 마산YMCA 주부모임인 녹색구매실천단이 주최한 촛불대학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은 '대통령도 시민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준 것"이라면서 "민주주의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며, 노무현의 죽음으로써 이걸 알게 되고, 이걸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왕보다 훨씬 권력이 많고, 훨씬 더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로마 황제의 명칭이 프린캡스(princeps)였는데, 그건 '무지 센 놈' 이런 뜻이 아니라 '제1시민'이라는 뜻..

서울사람들은 왜 꼭 저런 말을 쓸까?

직업이 기자인데다 시사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전국에 아는 사람이 꽤 된다. 강의나 토론회, 또는 각종 회의를 통해 그런 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서울사람들만이 가진 독특한 말버릇을 알게 됐다. 서울사람이 마산에 와 있을 때 휴대전화를 받으면 한결같이 "나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거든"이라고 한다. 광주나 부산이나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여기 마산인데"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지방'에 '내려'와 있다고 한다. 반면 마산이나 광주·부산·대전사람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지역에서 전화를 받으면 "여기 서울인데" 또는 "여기 경북 문경이거든"이라고 정확히 지명을 댄다. 물론 '내려간다'는 말은 위도상의 개념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사람들이 김포나 고양, 파주, 의정부, 가..

뭔가 아쉬운 지역 촛불집회, 이유는?

지금 이런 글을 쓰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의식하고 눈치보면서 블로그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본대로, 느낀대로 씁니다. 10일 서울에서 6·10 범국민대회가 열린 비슷한 시간대에 전국의 각 시·군에서도 6월항쟁 계승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제가 사는 마산에서도 '6월항쟁 계승 민주주의 회복 마산시민 촛불문화제'가 '6월항쟁계승 마산시민촛불문화제 행사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습니다. 원래 공지된 집회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회사 일을 마치고 8시에 가까워서야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는 그야말로 철저히 고립된 지역입니다. 2차선 도로에, 아래로는 남성동파출소(지구대..

노무현 캐릭터 상품화,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주말(6일) 다시 찾아간 김해 봉하마을은 반쯤 관광지로 변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진입로 입구에는 꼬지와 단밤, 옥수수, 냉차 등을 파는 잡상인들도 생겼습니다. 곳곳에 경찰이 있지만 차량통제나 주차안내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승용차를 갖고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엄청난 골탕을 먹었습니다. 배치된 경찰은 마치 '니네들 고생 좀 해봐라'는 듯이 아무런 안내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김해시는 최소한 주말과 휴일만이라도 진영공설운동장~봉하마을 간 셔틀버스를 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엄청난 혼잡과 방문객의 고생을 덜 수 있습니다. 버스 두 대면 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하려는 얘기는 좀 다른 겁니다. 봉하마을 진입로가 시작하는 곳에는 먹을거리를 파는 잡상인 외에..

마지막 시국선언 후 강단 떠난 신경득 교수

"지식인은 시대의 목탁이 될 수밖에 없어" 정년퇴임을 앞둔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신경득(65) 교수의 고별강연이 5일 오후 4시에 열린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매번 학기말이나 학년말이 되면 퇴임하는 대학교수는 많지만 이처럼 '고별강연'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꼭 참석해 들어보고 싶었다. 신 교수의 졸업생 제자들은 8월말 그의 퇴임에 맞춰 기념문집 출간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 시간에 급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5일 오후 3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수사를 해온 경남지방경찰청이 최종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당일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CCTV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남도민일보 인터넷뉴스 편집을 맡고 있는 뉴미디어부는 바빠졌다. 같은 부서의 정성인..

행정기관, 봉하마을 혼란 왜 방치하나?

끝까지 쓴소리 좀 해야겠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김해시와 경남도청의 봉하마을 추모객에 대한 행정지원 말이다. 좋다. 물이나 빵은 기부행위가 될 수 있다니까 문제삼지 않겠다. 애초부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자기 지역의 관광지에 관광객이 몰린다 해도 해당 자치단체의 편의제공은 기본이다. 몰려든 관광객이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과 엉켜버린 자동차 때문에 몇 시간동안 길 위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면, 그 관광지를 운영하는 행정기관에 원성이 집중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해시가 행정지원을 꾸준히 해온 관광지였다. 김해시가 설치한 관광안내소도 있고, 거기엔 봉하마을뿐 아니라 김해지역의 주요 관광지 안내 팸플릿도..

부엉이바위 절벽에서 아찔한 상황 발생

어제(6일) 동생과 함께 연로하신 아버지(82)를 모시고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였습니다. 서거 후 전화를 드려 "마음이 안좋으시죠?"라고 여쭸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지…. 뭐"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한 번 모시고 가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제가 차가 없어 미루고 있던 중 마침 경기도에 있던 동생이 어제 차를 몰고 와 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오후 4시 55분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정말 아찔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흰 티셔츠와 회색 바지차림의 이 남자는 절벽 중턱에 한참동안 선 채로 나뭇가지를 잡은 채 아래를 내려보다가 5분쯤 후에야 왼쪽으로 살금살금 이동해 기슭으로 사라졌습니다. 산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던 추모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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