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기자인데다 시사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전국에 아는 사람이 꽤 된다. 강의나 토론회, 또는 각종 회의를 통해 그런 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서울사람들만이 가진 독특한 말버릇을 알게 됐다.

서울사람이 마산에 와 있을 때 휴대전화를 받으면 한결같이 "나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거든"이라고 한다. 광주나 부산이나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여기 마산인데"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지방'에 '내려'와 있다고 한다.

반면 마산이나 광주·부산·대전사람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지역에서 전화를 받으면 "여기 서울인데" 또는 "여기 경북 문경이거든"이라고 정확히 지명을 댄다.

물론 '내려간다'는 말은 위도상의 개념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사람들이 김포나 고양, 파주, 의정부, 가평, 홍천, 춘천에 갈 때는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는지 궁금하다.


얼마전 서울 다녀오는 길에 KTX 객실에 비치된 월간잡지를 읽던 중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부모님 모시고 오빠네 가족, 동생네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벽초지문화수목원이 제격이다. 우선 경기도 파주에 있으니 이동시간이 짧아 부담이 없다. 혹 누가 급한 일이 생겨도 늦게라도 달려올 수 있지 않겠는가."

황당했다. 경기도 파주에 있으니 이동시간이 짧다고? 한국철도공사가 발행하는 < KTX매거진 >이라는 잡지는 원래 서울지역 독자만을 배포구역으로 하는 건가? 나는 마산에 산다. 그런데, 경기도 파주까지 이동시간이 짧아 늦게라도 달려올 수 있다니….

서울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5000만 중에 고작(?) 1000만이다. 경기도와 합쳐도 50%가 안된다. 물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것이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이 넘는 대한민국 사람은 '열외 인간'인가?

지역에는 '엽기사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다 'KTX매거진'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사례를 찾자면 끝이 없다.

요컨대 서울사람들 눈에는 마산이나 광주나 대전이나 모두 '지방'으로만 보인다는 것이고, 그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말글살이에서 그냥 무시해도 좋을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이건 진보나 보수나 하등 차이가 없다. 평등을 외치는 진보인사들도 정작 지역간 불평등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모두 낮춰보는 인식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념이 없다. 계급모순, 분단모순을 떠드는 사람은 있어도 지역모순을 거론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 중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 미디어오늘 >의 최훈길 기자는 '봉하마을엔 경향·한겨레만 있다'는 기사를 썼다. 그건 왜곡보도였다. < 경남도민일보 >와 < 부산일보 >, < 국제신문 > 등 지역일간지들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기사를 읽고 동료인 김훤주 기자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했더니, 김 기자가 < 미디어오늘 >에 항의성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최훈길 기자의 변명이 걸작이었단다. '(지역신문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 기사는 약간 수정됐다.) 그 얘길 듣고 서울기자의 눈에는 지역신문이 신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지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사람들의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엽기사건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요즘 '좌파정권 10년'이니 '꼴통'이니 하는 발언으로 서울언론의 눈길을 끌어보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참 애처롭게 보인다. 그런 엽기적인 발언 말고는 서울언론에 이름 석자 언급이라도 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고소영 정부'와 '강부자정권' '조중동의 여론독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정작 서울 이외 지역은 식민지로 취급한다. 황석영이 1989년 북한에 다녀와서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북한에만 사람이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지역에도 사람은 살고 있다.

※지난 9일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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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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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licktong.com 클릭통통 2009.06.11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는 부산에 있는 업체지만 전화오면 수도권에서 걸려오는 전화중
    그 업체가 어디있는거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산이라고 하면 그냥 끊는 경우도 많구요.
    예의상 몇가지 질문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결국은 가입을 안하고 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울이라고 하면 부산사투리인데라고 되물어보구요 서울온지 얼마 안되서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가입을 해주세요 ㅋ
    물론 일부지만 이런 경우 있을때마다 이해가 안됩니다.^^

  2. Favicon of http://blog.daum.net/gganatm 지지아나 2009.06.11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나 그런 투의 말을 가장 많이 접할수 있는 경우는 아무래도 명절입니다.
    그때는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은 "지방"이 아닌 "촌"의 개념입니다.

    서울에 온지 10년째임에도...그때는 (대구에 내려 갑니다.) 대구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음에도,
    촌에는 언제 내려갈 생각이냐고 묻습니다.
    그럴때마다 다시 한번 더 주지를 시키죠. 대구 광역시라고...

    그러면 일단 조금 누그러든 "고향"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대합니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시 "촌"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매년 징하게도 한결 같습니다.
    인간은 겉모습이 변해도 속내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마다 느끼게 되더군요.

  3. 하늘못 2009.06.11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러네요.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도 서울에서 살다보니 어느덧 서울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더군요. 님들의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언어로 차별하는 게 얼마나 심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좋은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

  4. Favicon of http://mahabanya.com mahabanya 2009.06.11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부터 상경이라는 말로 쓰지 않았나요? 서울로 올라간다. 그러니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내려간다는 표현을 쓰게 되는 거죠. 뭐 지금에 와서는 굳이 그렇게 올라간다 내려간다라고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9.06.11 1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열등감도 문젭니다. 식민지 백성이 지배국 백성에게 갖는 것과 비슷합니다. 주체의식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5. pinego 2009.06.11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지역사람들이 정작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한다는 점입니다.

    지역균형발전을 흔드는 그런 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지역의 발전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하고 지지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울러 지역 스스로도 목소리를 좀 냈으면 합니다.

    ps : 블로그 글들 너무 좋습니다. 인터넷 할 때마다
    꼭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릴께
    요 !!! ^^

  6. 찌니 2009.06.11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에서 산 지 20년 가까이된 '지방' 사람으로서 심하게 공감합니다.

    서울에만 모든 것이 집중된 구조가 사람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그럴수록 말을 통해서라도 의식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건 오히려 말이 더 부추기는 형국이네요.


    항상 세심하게 주변을 보시는 눈에 감탄합니다.

  7.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펨께 2009.06.11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일들이 가끔 일어나는것 같더군요.
    제가 살고있는 네델란드에도 수도권과 지방차이가 많아서
    지방인들의 분노를 일어킬때가 더러있지요.
    글 잘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9.06.11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덜란드도 그렇군요. 그래도 우리나라만큼 모든 게 서울중심이진 않겠죠?

    • 글쎄요 2009.06.14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도 네덜란드에 10년 정도 거주하고 있지만 그런 차이는 못느끼는데요.

    •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펨께 2009.06.14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우선 도로사정만 보아도 고속도로 개발에도
      홀란드위주이고 남쪽지방 고속도로는 근 30년을
      기다리다 이제 하나 생긴것이며 중요한 회사의
      본사는 전부 북쪽 홀란드에 집중해있어 이곳
      부모들이 때로는 농담도 하지요. 똑똑한 아이들은
      전부 북쪽으로 간다고..ㅎㅎ
      북쪽 홀란드사람들도 사투리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은 남쪽지방 사람들의 사투리를 항상
      비웃기도 하는 그런일도 일어나고 있지요.
      즐거운 일요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8. Favicon of http://kbh12992930@hanmail.net 수도권에 2009.06.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도권에 살아도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약간의 하대 하는 듯 ,그리고 뭘 잘못하거나 서툴때 그런말쓰는 자들이 있습니다."지방 스럽다." 난 이말을 도매시장에서 들었는데 사투리를 쓰고있는 상인이 그렇게 얘기 해서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그게 사는 지역의 우월이 자아도취 까지 되나 보죠?그리고 항상 좋은글 올려줘 고맙

  9. Favicon of http://kbh12992930@hanmail.net 수도권에 2009.06.11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잘보고 있습니다.경남의 각종 사건과 특히 옛날의 각종 사건과 양민 학살건등은 많은 감동을 주었고 명확히 파헤쳐서 역사의 교훈으로 나겨 줘야 할거라 생각합니다.분발 하시고 열심히 읽어 드리는 것이 보답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읽겠습니다.

  10. 캔디 2009.06.11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지방하고는 좀 다른 내용이지만 바닷가출신에 대한 편견도 있지요. 많이 지난 얘기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친정이 대구인 친구가 있었는데 아들의 유치원선생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친정어머니께 중매를 부탁드렸지요. 그 어머니 말씀.'마산아가씨는 갯가(바닷가)출신이라서 안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제 속이(저도 바닷가 출신이거든요). 알고 봤더니 그 어머니 친정이 제주도이더라구요. 해마다 방학이면 온 식구들이 제주도에서 휴가를.....

  11. 2009.06.11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Favicon of http://ddoza.tistory.com 또자쿨쿨 2009.06.12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명을 대거나... 지방에 가 라는 표현을 혼용했던 것 같습니다.
    알지모르는 사이에 타지방에 계신분들이 들었다면 불쾌하셨을 것 같네요.
    반성해봅니다~

  13. y... 2009.06.13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춘천이 고향인 회사 동기가
    "집에 내려간다"고 말했을 때

    "위치상 위쪽(또는 오른쪽?)에 있는데 왜 올라간다고 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ㅋ

    서울이 아닌 곳에 대해서는 어쩐지
    습관적으로 '내려간다'는 관념을 적용하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14. Favicon of http://rudol.net 루돌 2009.06.15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무심코 시골간다...같은 표현을 쓰면,
    옆에서 "시골 아니고 지방이거든?!!" 이라고 발끈하는 거 자주 보긴 했는데,
    지방이라고 해도 안되는거군요... 반성해야겠어요.

    근데, 사실 평소엔, 저희끼리 강북과 강남으로 열등감과 우월감을 느끼곤 해서,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렇게 시골이나 지방같은 단어로 통영해 버리는 것 같네요.

    반성하고 갑니다.

  15. Favicon of http://yoosungae.tistory.com jdreamer 2009.06.15 0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가끔 느꼈었어요. 고향이 경기도 포천, 그러니까 서울 윗쪽에 있는 동네인데 학교가 서울에 있다보니.. 주말에 집에 오면 '나 집에 잠깐 내려왔어'라고 하곤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지요. ㅋㅋ

    그런면에서 볼때, 두 기자님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블로그가 대안이 될수 있는것도 맞구요. 이 글 적다보니 아주 예~전에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라는 글을 읽고 즐겨찾기 해뒀던 것이 기억나, 다시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오래된 기사긴 하지만 미국의 지역언론 사례가 나와있어 도움이 될까해서요. 링크 걸어둡니다. :)

    http://www.mizy.net/mboard.asp?exec=view&strBoardID=inter_Experiences&intPage=21&intCategory=0&strSearchCategory=|s_name|s_subject|&strSearchWord=&intSeq=30229

  16. tjgus 2009.06.15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역에서 살면서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 혹은 '서울 매체들의 말버릇'에 당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참 많이 공감이 되네요. 하지만 제가 사는 지역언론매체에서조차도 '서울적 시각'의 말버릇을 쓰는 경우가 많아 당혹스러울때가 많더군요. ; 두분처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널리널리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7. ㄴㅇㄹㄴㅇ 2013.01.24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적엔 몰랐는데 나이들고 서울에도 왕래하고 인터넷도 하다보니

    인구 380만명인 부산이나 250만명인 대구 조차도 아무런 위화감없이 시골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나라 국민한테 그런말을 듣는다는게 외국에서 한국에도 콜라있냐? 한국에도 과자가 있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다 더 충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