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시대의 목탁이 될 수밖에 없어"

정년퇴임을 앞둔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신경득(65) 교수의 고별강연이 5일 오후 4시에 열린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매번 학기말이나 학년말이 되면 퇴임하는 대학교수는 많지만 이처럼 '고별강연'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꼭 참석해 들어보고 싶었다. 신 교수의 졸업생 제자들은 8월말 그의 퇴임에 맞춰 기념문집 출간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 시간에 급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5일 오후 3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수사를 해온 경남지방경찰청이 최종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당일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CCTV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남도민일보 인터넷뉴스 편집을 맡고 있는 뉴미디어부는 바빠졌다. 같은 부서의 정성인 차장도 출장 중이었다.

@경상대


어쩔 수 없이 고별강연을 듣지 못한 기자는 경상대 홍보실의 도움으로 강연 녹음파일과 사진, 강의원고 등을 전해받았다. 다음날인 6일이라도 신경득 교수를 만나려 했으나 이미 충북 청주의 집으로 떠난 뒤였다. 결국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지식인" = 신경득 교수가 '고별강연'을 하던 날 오전 11시 경상대 교수 66명의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다. 여기에 서명한 교수들의 명단에 신 교수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행정적인 퇴임일자는 8월 31일자이지만, 사실상 이 시국선언은 '교수 신경득'의 마지막 사회적 발언이 됐다. 그는 최근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모임'에도 들어있고, 지난해 촛불정국 때 '미국산 쇠고기협정 폐기 촉구 선언'을 한 지식인 1002명의 명단에도 들어 있었다.


5일 시국선언문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은 다름 아닌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보수 언론을 비롯해 현 집권세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으로 멸시하고 모멸감을 준 것도 그가 우리 사회의 비주류 출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며 현 정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신 교수가 이른바 '노빠'는 아니다. 특히 그는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가장 호되게 비판했던 지식인이었다. 당시 <경남도민일보>에 쓴 칼럼에서 그는 "파병안을 확정지은 노 대통령과 국회는 마땅히 국민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이행해야 한다"며 대통령 자제부터 파병의 선두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모택동이 중국 의용군을 한반도에 파병하면서 자신의 큰아들 모안녕도 함께 파병했고, 결국 미군의 폭격으로 전사한 사실을 들었다. 그는 또한 파병안에 찬성한 여야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층 관료, 검사와 경찰, 고위 간부층의 자제나 법원 고위층의 자제들도 파병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경상대

최근 '친정부 언론'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는 KBS에 대해서도 이미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이렇게 비판한 바 있다.


"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해바라기성 방송을 일삼고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였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김대중을 '불순분자 빨갱이'로 몰아세우다가 김대중이 막상 집권을 하자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5·18 이후 전두환이 신군부의 독재권력 창출을 위해 군복을 벗을 때에는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찬사를 바쳤던 KBS가 김영삼 정권아래서 전두환이 감옥에 갈 때에는 '군사정권의 폭압'이라고 짓밟은 바 있다. 또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학생들을 '극렬 난동분자'로 매도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운 바 있다."

이런 KBS를 바로잡기 위해 방송인에 대한 반민족·반민주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사장이건, 간부이건, 연출자이건, 해설자이건 나라와 겨레를 배신한 반민족·반민주 방송인은 사형·무기징역·재산몰수 등 엄단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벌백계로 청사를 밝히지 않으면 한국언론이 바로 설 수 없다."

@경상대


◇친일화가 비판했다 돌멩이 세례 받기도 = 이처럼 그는 '아니다' 싶은 일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해온 학자였다. 그러다보니 지난 93년에는 <충북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으로 자신이 사는 집에서 돌멩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친일 화가 운보 김기창'을 기리기 위한 '운보의 집' 건립이 추진 중이었다. 그는 당시 칼럼에서 "한봉수 의병대장과 손병희 어른이 탄생하신 충북의 성지에 친일파 환쟁이 하나가 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치가 떨리고 분하다"며 비분강개했다. 그러자 김기창을 추앙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집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었다. 또 한 번은 정보과 형사들이 집안에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40년 간 학자 생활을 해오면서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이르던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지만, 반대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으니 힘들었던 일이 오히려 행복한 일이지. 상아탑에서 순수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지식인이 시대정신을 저버리면 학문이 될 수가 없는 거라고 봐. 학문이라는 것도 시대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 지식인은 시대의 목탁이 될 수밖에 없어."

그는 요즘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데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겠어. 다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 자기 외에 다른 걸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 강의시간마다 누누이 그래선 안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때 뿐이야. 자본주의의 물신풍조에 침몰한 것인지, 인터넷의 영향으로 개인 쪽방에만 파묻혀 살다 보니 자폐아가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그는 마지막 고별강연의 모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화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문학을 꽃피운 그리스는 지중해의 중심국가로 성장하여 헬레니즘문화를 이룩하였다. 정부를 수립하던 어려운 시기에 백범 김구는 문화대국을 주창한바 있다."

신경득 교수 @이우기

하지만 최근들어 오히려 대학이 아닌 바깥에서 '인문학 강좌 붐'이 일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실 인문학이라는 게 근원적인 학문, 그러니까 철학이나 국문학이나 역사 같은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요즘은 인문학도 돈되는 장사쯤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같은 것도 그래. 나라에서 기초를 마련하는데 지원해주면 그런 건 자연스럽게 될텐데, 돈이 된다니까 무더기로 쏱아붓다가 그렇게 된 거 아냐?"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뭐냐고 물어봤다.

"아마 지금 대통령은 오히려 국민을 원망하고 있을 것 같아.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대통령이 민중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아. 못사는 사람, 집 잃은 사람, 이런 서민들의 한맺힌 소리를 들어줘야 하는데, 그걸 외면하고 못들은 체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청년 때부터 미뤄놨던 소설 쓰겠다" = 신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썼던 <한국전후소설연구>를 시작으로 <한민족문학사상론>,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등 수많은 연구서를 남겼고, 퇴임 직전까지 지난 4년간 혼신의 힘을 바쳐 연구한 <서사문학연구>가 800쪽 분량으로 곧 일지사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그는 <소백산맥 아래서>와 <낮은 데를 채우고야 흐르는 물은> 등 시집과 수필집 <누야 별이 변해서 눈이 되는기가?>도 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소설가 출신이다. 1971년 단편소설 '풍속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던 것이다.

퇴임 후 무슨 일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야 미뤄놨던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원래 내가 청년시절 작가로 출발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해볼 생각이야. 지금은 청년작가가 아니라 노인작가가 됐지만, 그동안 기획해놨던 것도 있고…."

그는 작고한 청주의 정진동 목사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3권 짜리 장편소설과 한국전쟁 초기 서울서부터 진주·마산까지 민간인학살의 과정을 다룬 소설도 계획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광개토대왕에 대한 대하소설도 예정하고 있단다.

퇴임하고 고향에 가니 각종 단체에서 함께 하자는 요구도 있지만, 지난 25년을 진주에서 살아오면서 정작 청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고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미 '노인작가'가 됐을지는 모르지만, 청년의 혈기와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노인의 경륜과 지혜가 배여있는 대작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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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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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ㅇㅇ 2009.06.08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진짜;;; 구구절절 옳은 말씀뿐인거같은;;;;;

  3. 맨그놈이그놈 2009.06.08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위,농성,점거,데모,파업....맨 그놈이 그놈이군

    • 맨그놈이 그놈 2009.06.09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뭔 말만 하면 시위니 뭐니 빨간색으로 덧칠...그알밥이그알밥이야..ㅉㅉ

  4. Favicon of http://bloglish.tistory.com INNYS 2009.06.08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분 한분,,자신의 소신을 밝혀주시고...이들의 육성이 모여.... 그들의 고막을 파열할 만큼의 함성이 되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합니다.

  5. 우리집강쥐바기 2009.06.09 0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한 스승이고 사회의 어른이네요.

  6. 존경 2009.06.09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가 들면 김동길교수처럼 변하기 쉬운데 이렇게 그 반대로 끝까지 지식인으로서의 정확한 판단력을 지키고 계시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김동길교수가 싸구려 짝퉁이라면 신경득교수님은 진짜 명품 교수님이십니다.

    • 천하돌쇠 2009.06.09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얘야 김동길교수는 이미 유신때 교도소갔다 오셨다.

      이아저씨는 그정도는 아닌것 같은데... 굳이 비교하자

      면 김대중과 동급이랄까...

  7. 강새봄 2009.06.09 0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인연이 깊으신 분이군요 신경득 교수님은 다니신 경상대는 제 고향이고 교수님의 고향이신 청주는 제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곳이고 ㅋㅋ

    교수님의 말씀 잘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8. 교수님 2009.06.09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상대 학생인데 어제 아침에 고별강연한다 듣긴했지만 이공계학생이라 가진 않았는데 후회가되군요...

  9. 우수수 2009.06.09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말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영웅이 되는 건 아니죠.
    각기 생각하는 바가 있겠으나 민주의 양심이라고 하는자들 결국은 국민을 쪽박차게 하여 길거리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요?
    결국 큰 빠을 나누어야 많이 돌아 갑니다.
    빵도 만들기 전에 밀가루를 땅에 엎질러 버리는 게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10. 독수리바위 2009.06.09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사이 시국이 어때서...대모안하는 시국이 비민주적 시국인감...
    깽판 못치도록 하는 공권력이 개판 공권력인가..
    검찰 소환한번에 부엉이 바위....그라면 맹빡이는 BBK사건으로
    수차례/글고 특검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억울해 그렇게치면
    맹빡이는 벌써....
    교수란 인간 쓰레기들 지식은 좀 있을련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행구지와 언행들은 거의 쓰레기급에 속하제..

    • 시민 2009.06.09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늙으면 죽어야제...
      시간이 흐른다는게 당신들한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이가 들면 들수록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이런 개똥같은 시국과 유치한 정권은 너같은 한심한 목숨 때문이리라.

    • veGA 2009.06.09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사람들을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원글님같은 분을 봤을 때가 그렇습니다.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은 국가권력과 시민의 권리가 상호 충돌하면서 점차 시민의 권리가 확대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글을 보면 시민의 권리보다는 국가권력이 더 강해야 하고 더 커서 시민을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은 국가권력에 복종하고 국가권력은 시민에게 찍소리도 못하게 하는 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사고방식은 한국인들이 아직 전근대적 관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시민의 권리의식 역시 아직 깨어있지 못한 왕권국가시대에 빠져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입니다.

      한국인들은 참 오묘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 국민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 물론 이 글을 쓴 사람이 비밀경찰, 권력에 충성하는 조직원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 CiBa 2009.06.09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의와 명예를 중히 여기는 이들에겐 거짓으로 덧칠한 모욕이 견딜 수 없는 법.
      그러나 배 부르고 쳘면피한 종자들에게야 그깟 쪽팔림일 뿐, 어찌 가진 것을 버리고 "감히" 자신을 던질 용기가 있겠는가? 비겁하고 영악한 처세로 한 평생을 달디 달게만 살면 복된 인생이라고 노래하겠지.
      또한 그런 종자들 밑에서 마름질로 어깨에 힘주는 인종들이야 구제불능의 종내기들일 것이로고.

  11. Favicon of http://ins84.tistory.com In's 2009.06.09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문학과는 아니었지만 같은 학과군이었던 과에 있어서 신경득샘의 수업을 여러번 들었었죠. 시력이 안좋으셔서 길을 걸으실때도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죠. 과거 6.25 전후 양민학살로 가족을 잃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민학살에 대한 연구도 하셨던 걸로...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12. 봄나무 2009.06.09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화가 비판했다 돌멩이 세례 받기도 = 이처럼 그는 '아니다' 싶은 일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해온 학자였다. 그러다보니 지난 93년에는 <충북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으로 자신이 사는 집에서 돌멩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친일 화가 운보 김기창'을 기리기 위한 '운보의 집' 건립이 추진 중이었다. 그는 당시 칼럼에서 "한봉수 의병대장과 손병희 어른이 탄생하신 충북의 성지에 친일파 환쟁이 하나가 기념관을 세운다고 한다. 치가 떨리고 분하다"며 비분강개했다. 그러자 김기창을 추앙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그의 집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었다. 또 한 번은 정보과 형사들이 집안에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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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목에 대하여, 당시 공교롭게도 제가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신교수의 반대편에서 기사를 썼으니까요.

    저는 당시 신경득 교수가 원로 화가 한 사람을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북대신문>에 써올린 기사가 문제가 되어, 미술계에 제2차 친일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운보 김기창이 친일을 했다는 증거로 제출된 근거가 빈약했습니다. 반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99인>인가 하는 책자에 실린 삽화 몇 점이 증거물로 제시되었습니다. 일제시대 <매일신보>에 실린 신문 삽화였습니다.

    <친일파99인>에 실린 운보의 삽화에는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제목은 <매일신보> 또는 운보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친일파99인>의 운보 관련 글을 쓴 필자가 자기 마음대로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 필자가 붙였다는 사실은, 제가 필자에게 질문을 해보아서 처음으로 밝혀졌습니다.
    필자는 또 '~한 듯하다'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습니다. '짐작'으로 누구를 친일파로 규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전두환씨의 인물 삽화 한 장을 두고 '구국의 결단'이라는 제목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필자 마음대로 붙인 다음 "000은 1980년 당시 군부독재 찬양자였던 듯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친일 미술을 비판하려고 취재에 나섰다가, 친일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와같은 근거없는 비분강개를 보고, 정반대되는 기사를 썼습니다.

    취재를 하고 보니 운보의 친일 행적 근거가 별로 없었습니다. 게다가 삽화의 제목을 자기 입맛에 맞게 붙이는 것처럼 친일파로 규정하는 데 적잖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제목을 임의로 붙였다는 것도 밝히지 않은 채 자기 마음대로 써버렸으니, 남들은 그대로 믿어버리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노릇입니다.

    이당이나 청전 등 그림의 내용만 보아도 친일이 분명한 유명 화가들이 많았으나,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운보는 생존해 있는 대가여서 일종의 '표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웅진에서 나온 책자에 <금채봉납도>라는 도판이 실렸는데, '운보 김기창 작'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친일 화가=운보'라는 등식이 만들어낸 해프닝이었지요. <금채봉납도>는 이당 김은호가 그린 친일 그림의 대표작입니다.

    운보의 집은, 운보 김기창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작품을 스스로 기증해 만들고자 한 미술관이었습니다. 운보가 살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지요. 운보와 부인인 우향 박래현 화백, 북한에서 공훈 예술가로 활동했던 동생 김기만의 그림을 자기 집에 모아서 미술관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공개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그를 '기리려고' 한 것과는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파리의 피카소미술관, 니스의 샤갈미술관처럼 충북 청원에 '운보미술관'을 건립하려 했고, 그 이름이 '운보의 집'이었습니다. 진짜 집이었으니까요.

    신경득 교수는, 당시 "치가 떨리고 분하다"고 했으나, 정보를 하나 하나 따져보았더라면 치가 떨리거나 분할 일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교수께 전화를 드렸더니 <친일파99인>을 보았다고 하시더군요. 그 이후에도 운보가 친일을 했다는 물증이 나온 바 없습니다.

    신교수의 집은 돌맹이를 맞았으나, 당시 운보의 집에서는 뒷마당에서 키우던 사슴의 목이 잘렸습니다. 또한 운보 김기창이라는 큰 화가는 죽어서도 '친일파'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김주완 기자 같은 베테랑도 '친일 화가 김기창'이라고 주저없이 쓸 만큼 그는 대표적인 친일 화가로 낙인찍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친일을 하여 친일파가 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잘못된 정보와 해석에 의해 친일파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빨갱이'보다 더 치명적인 낙인이 바로 '친일파'입니다. 친일을 했든 안했든, 한번 찍히면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신교수의 '친일파 환쟁이 하나가'라는 표현이, 한국 미술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겼는지 모릅니다. 운보는 '친일파 환쟁이 하나'로 취급될 인물이 아닙니다. 20세기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과거 '병신' 취급을 받으면서도 청각장애를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표본이자 한국 장애우들의 희망봉입니다. "나는 친일한 적 없다. 당시 신문세서 삽화를 달라고 해서, 당대의 풍경을 그려 보냈을 뿐이다"라는 운보의 말은 왜 들어주지도 않는지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때 치열한 논쟁을 거쳐, 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줄 알았는데 16년이 지난 지금도, 저런 표현이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니 참 안타깝습니다. 뚜렷한 물증도 없이 피카소 같은 한국 화가를 '일개 친일파 환쟁이'로 전락시킨다면, 결국 우리 모두의 큰 손해입니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대쪽같은 지식인으로서 존경 받으실 테지만, 전공이 아닌 미술 분야의 친일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접근하고 발언하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고 자기가 가진 모든 작품을 기증하겠다(미술관으로 등록하고 그곳에 작품을 기증하면 더이상 개인 재산이 아닙니다)는 운보는 엄청난 상처를 입었고, 저 또한 호되게 당했답니다. ^^ 인쇄물에 거명되면서 거의 린치에 가까운 비난을 들었으니까.

    '저 사람 친일파다"라고 비판하기는 참 쉽던데, "친일파라는 뚜렷한 물증 없다"고 말하기는 너무나 어렵더군요.

    지금 검색해보니 '운보의 집'은 1993년에 건립이 추진중이었던 게 아니라, 1981년에 이미 지어졌더군요. 아마 1993년 당시에는 운보 본인과 우향 박래현의 그림을 모두 기증하고 미술관 등록을 하려 했을 겁니다.

    신교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으로 지어져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 yamury 2009.06.09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읽었습니다. 운보의 아내는 박래현입니다.

    • veGA 2009.06.09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gilbut2.egloos.com/7639582

      위 url을 가시면 '적진육박'이라는 제목-혹시 이것도 후세에 누가 임의로 갖다붙인 제목일지요-의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전 참 놀라웠습니다. 병사의 눈이 정말 눈 앞에서 살아움직이듯 생생하게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하필 그 그림속 병사가 일본군일까란 생각에 껄끄럽단 생각도 들었죠.

      가수의 노래 하나로, '환쟁이'의 그림하나로, 그리고 어느 배우의 영화 한편으로 한 사람의 일생이 결정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였으니 이런 그림 하나로 조선젊은이들이 어떤 자극을 받았을지는 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식민지배총본산이었던 총독부도 바로 그 점을 노렸을거구요.

      그냥 살던 시기, 당대의 풍경이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운보 자신과 이런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리시는 '봄나무'님 모두 저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기사 일제시대가 없었으면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기도 힘들었을거고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나란데 머 이 정도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족 전부를 이끌고 지금 가치로 전 재산 600억원을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에 쏟아부은 이회영 선생같은 분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습니다.

      친일과 반민족의 역사가 단지 과거사만은 아니라는 증거를 '봄나무'님의 글을 통해 다시한번 발견합니다.

      재야사학자였던 임종국 선생은 '정신을 놓지 않으면 잃은 땅도 찾을 수 있지만 정신을 놓아버리면 제 땅도 잃는다'하셨습니다.

      다행히 저는 정신을 놓지 않았고 '봄나무'님을 통해 그런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서 그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9.06.09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발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에도 김기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봄나무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편찬위원회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복어사랑 2009.06.09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완전 반대 입장입니다.
      운보는 친일파가 맞습니다. 항상에 알려져 있는 부인이 일본인이라서, 증명할수도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 김기창이 친일이 아니라 주장합니다.
      또한 미술계쪽에서는 김기창 화백을 근대미술사에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그의 친일 행각을 은폐하려고 시도하지요.

      하지만 김기창 자신이 91년도에 한겨례와 인터뷰하면서 김기창 본인이 자신의 친일행각을 인정한 기사도 있고,

      화풍이 일본을 닮았을 뿐, 친일 세력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미술계와 달리 그의 작품이 친일파로 규정된 이유는 한국, 당시엔 조선학도병 모집에 관련된 포스터와 일왕을 위해 죽는 것을 미화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축 입영] 등 당시 자살특공대(카미카제를 극찬해 대한의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그림들 때문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제 잇속만 챙기기 위해 역사까지 날조하는 사람들이 많군요..

    • 봄나무 2009.06.09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yamuri님 고맙습니다. 바로 잡았습니다.

    • 봄나무 2009.06.09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VeGA님 답글 고맙습니다.

      일단 '적진육박'이라는 제목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운보가 붙였는가, 후대의 비판자가 붙였는가. 그림도 그림이지만 제목 또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림을 해석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사항입니다.

      둘째. 저도 veGA님과 똑같은 한국 사람입니다. 잊혀진, 아니 조국으로부터 버려진 우리 독립투사를 발굴하기 위해 한때 중국에 건너가 죽기살기로 조사해 기사화한 적도 있지요. 그러니 일단 저 개인에 대한 빈정거림은 거두도록 하시고... 또한 안중근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 칭하는 자들과 의견을 교환한 바도 없고, 제가 그 의견에 동조한 바도 없으니 그 또한 이 논의와 하등 관련 없는 것이고, 이런 말씀도 거두시고...

      전 재산 600억을 바친 이회영 선생 같은 분을 생각하면 저 또한 가슴이 먹먹하지요. 나아가 600억의 열배, 백배 이상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을 타국에서 바치고도 우리 역사에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한 젊은 투사들을, 전공자만큼은 많이 알고, 또한 그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한때 무진 노력했으니, 다른 오해일랑 모두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껄끄럽고', '경우를 종종 본다'는 것은 모두 가정에 불과합니다.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인 논거틀을 가지고 친일파로 규정한다면 친일파 단죄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이나 지금도 애를 쓰는 정운현 선생 같은 분들께 오히려 누가 되고 짐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운보 친일파 논쟁 당시, 그를 친일파로 규정했던 사람 가운데, 직접 운보와 만나 인터뷰라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죽어서 말을 들을 수 없다면 모를까, 당사자가 눈을 뜨고 뻔히 살아 있는데 아무리 변명이라 한들, 일단은 들어보고 판단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당대의 풍경'이라는 한 마디의 말로 책임을 면하려 했는지, 더 많은 말을 했는지, veGA님은 모르시지요? 그러니 한 마디로 책임을 면하려 한다고 속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의 감정적이고 비과학적인 논거가 횡행한다면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과연 몇이나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논의를 하고 싶다면, '저를 통해 정신을 놓지 않았다'는 등의 저 개인에 대한 빈정거림은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논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를 친일파라고 단순하게 규정하고 단죄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빨갱이로 몰아붙여 보도연맹 사건처럼 묻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당시에 살았던 유명인들을, 검찰이 노무현 잡듯 털면 뭐라도 하나 걸리지 않겠어요?

      그것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밀하게 따지고 또 따져서, 누구도 개찌 붙지 못할 결과물을 내놓아야 제대로 된 것이 아니겠어요?

    • veGA 2009.06.09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돌한 이야기가 되겠지만-그래도 끝으로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봄나무'님은 증거를 목격하고도 '내가 본 것은 증거가 아니다'란 생각에 빠져계십니다.

      그걸 먼저 깨닫지 못하신다면 이런 글은 백날 써봐야 별무소용일뿐이죠.

      저 그림, 시퍼런 살기마저 느껴지는 저 그림 속 병사, 1944년에 그려진 저 그림이 그저 '당대의 풍경'이라고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건지요? 그냥 그걸로 그 그림은 의미도 이유도 생각할 거 없이 그저 '당대의 풍경'인 것으로 '끝'인 건지요?

      님 말씀대로라면, 조/동이 학병을 권유하는 사설을 쓰고 동족에게 왜적을 대신해 목숨을 바치게 한 것도 그저 '당대의 사회상'이라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사설을 썼지만 그건 당대의 사회상일뿐이었다. 우리에게 무슨 책임이 있느냐. 우리한테 책임을 묻지 말라.. 이런 논리가 가납할 주장입니까.

      '봄나무'님 글을 읽고 그냥 넘길까 하다가 그냥 넘기기보다는 짧게 써야지 했는데 또 글이 길어지는군요.

      노래 하나, 그림 한점, 영화 한편이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게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하셨는데 노래로 그림으로 영화로 사람의 일생이 결정되는 게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우리 주변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조선총독부도 그런 걸 의도했던 것이고 말이죠.

      아무튼 무슨 이유에선지 '봄나무'님은 증거를 외면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죠.
      님 눈 앞에 있는 '증거', 그 '진실'을 피하지 마십시오.

      * 제 글이 격하게 느껴졌다면 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남긴 두 편의 글은 제 속에 있는 표현의 1/10도 표현하지 않은 것임 역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반민족, 배신 이런 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운보선생을.. 2009.06.09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르게, 있는그대로,표현해 주시오.

      운보는 비주류출신의 몇안되는 거장입니다.

      농아들의희망이요 붓놀림은신의경지라..

      미인도와 바보산수 청색시대는

      아시아를넘어 동양화를 세계에 접목한

      진정한 대가이지요.

      운보의진정한면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시오.

    • 봄나무 2009.06.09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veGA님

      글의 단호함에 비해, 조금 놀랄 정도의 인상비평을 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조선과 동아의 사설을 논한 바 없습니다. 또한, 학병에 나가라고 부추긴 글을 보고 '당대의 사회상'이라고 변명해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폴 엘리아르의 시집 표제작을 보고 대학의 과를 결정했던 사람입니다. 그 정도면 일생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작품 하나가 사람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압니다.

      문제는, 운보의 그림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개인은 찾아볼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그림이 당대에 얼마만큼 많은 영항을 끼쳤는가 하는 것을 정밀하게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당의 그림이나 동아/조선의 사설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친일 행위가 아니라면, 따져볼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따져봐야 할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운보는 이당이나 청전과는 달리 한국 현대 미술의 간판 스타였습니다. 문단의 미당과 같은 존재였지요.

      학자들답게, 따질 것은 다 따져보아서, 아무도 찍 소리 못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았더라면, 저부터 운보에게 돌을 던지겠습니다.

      제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어설프게 조사한 사실만을 가지고 친일파로 찍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아마추어 같은 어설픈 태도는 친일연구에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생존한 최고의 화가를 건드려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게 하려 한 게 아니냐는 혐의마저 갖게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veGA님 식으로 말해볼까요?
      veGA님은 '내가 본 것이 증거다'라는 생각에 빠져 계십니다.그게 어떻게, 왜 증거가 되는가가 설명되어야겠지요.
      섬뜩한 눈빛 번뜩이며 정글속을 기어가는 그림 그려서, 선전에서 입상했다고 친일파가 되는 건가요? 저 그림의 주인공이 월남전의 미군이었다면 친미파가 되는 건가요?
      제가 증거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제 눈에는 친일파로 규정할 명백한 증거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반민족주의자, 배신자들이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에는 저도 백번, 천번 동의합니다.

  13. 마제스타 2009.06.09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왕성한 활동 부탁드립니다. 강단을 떠나시더라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leosun 태양을 삼킨 사자 2009.06.09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것이 맞는거 같긴 한데..
    참.. ... 뭐라고 말하지도.. 말할수도 없네요..
    세상이.. 약간 틀어져버린 느낌..
    교수님 같은분들이 좀 더 현직에 계셨으면.. 한다는 것은 제 욕심밖에는 되지 않겠죠... ㅠㅠ

  15. 봄나무 2009.06.09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완 기자. 죄송합니다.

    스승님 떠나는 길에 덕담 한 마디 얹어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까탈스럽게 굴어서요.

    지금 글을 지우고자 해도 지울 수도 없네요. ㅠㅠ

    신경득 선생께도 죄송하군요.

    김기자와 신선생님께서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한 의견 제시쯤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6. 오호라 2009.06.09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런 분이 계셨군요. 소설이 기대됩니다. 왠지 조정래씨 같은 시대상 표현의 대가작품이 나올것같은 예감이....

  17. ㅠㅠㅠㅠ 2009.06.10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 옳은 말
    휴... 눈물 나네, 이런 분들을 비난하는 것들이 곧 몰려오겠지...

  18. 강용주 2009.06.10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신 선생님 이시군요
    이런 선생님께 가르침 받은 분은 참 복 받은 분 입니다
    그리고 김주완님,봄나무님
    모처럼 댓글토론에서 서로 의견 나누시는 모습 좋아 보입니다.

  19. 010104 2009.06.12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존경하는 신경득 교수님의 퇴임소식을 며칠이나 지난 늦은 밤에나 알게 되었네요. 교수님의 열정적인 수업, 즐거웠던 수업이 생각납니다. 모범생은 아니었던 제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던 수업.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깨치는 것이 많았는데 아쉽습니다. 오늘 밤엔 그 수업의 흔적이 있는 노트를 뒤적거려 봐야겠습니다.

  20. 저녁숲 2009.06.14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좋은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경상대 시국선언 교수 명단을 알 수 있을까요?

  21. Favicon of http://2007ab@hanmail.net 고혜령 2009.06.15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부의 달인 김동길교수와는 달리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분 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그리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