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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182

불국사·감은사에만 있고 다른 절엔 없는 것

달그리메님이 1월 8일 블로그에 '특목고처럼 불국사는 특수목적 절이었다'를 올리셨습니다. 여기서 달그리메님은 불국사와 지금은 폐사지가 된 감은사를 두고 '특수목적' 절간이라고 규정하십니다. 해당 글 : http://blog.daum.net/090418nana/178 저 또한 이런 규정에 적극 공감합니다. 저도 달그리메님이랑 많은 부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글 내용에다 하나만 좀 덧붙이고 싶어서 이렇게 한 줄 적어봅니다. 달그리메님께서는 불국사를 일러 '특목사'라 보는 까닭을 전각과 거기 모신 부처에게서 주로 찾으셨습니다. 제가 소견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아주 탁견(卓見)입니다. 서민풍이 아닌, 아주 고급스런 전각과 부처님만 골라 모셨거든요. 불국사에서 석가·다보 두 탑을 ..

나도 이제 책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9년 11월 17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전유성이 좋아졌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10월 20일 KBS1 TV 아침마당 에서 엄용수가 선배인 전유성에 대해 하는 얘기를 듣고 서늘해졌던 느낌을 적었습지요. "아 그 선배는, 책도 많이 읽고 책 선물도 많이 해요. 언제나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지요. 후배들한테 '야, 이 책 좋더라.' 하면서 던져 주고 '야, 이 책 아주 재미있더라.' 하면서 건네준단 말이죠." "그런데 선배 집에 가면, 책이 하나도 없어요. 깨끗해요. 텅텅 비어 있어요. 왜냐고요? 책 보고 나서 집에 책꽂이에 꽂아두는 게 아니라 짚히는대로 후배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줘버리니까요." 그 때 저는,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전혀 우습지 않았다"고 하면서 "몸이 좀 서늘해졌고 ..

여성 시인의 연애는 무슨 색깔일까

사랑이 대세입니다. 아니 여태껏 사랑이 대세가 아닌 적은 없었으니까 그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요, 이제 사랑 표현조차도 공공연한 게 대세인 모양입니다. 시인은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그러나 저의 는 늘 봄입니다"라 적어 시집을 보냈습니다. 시인이 여성인 때문인 모양인데, 직설·직시보다는 은유·비유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에로틱'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김경의 두 번째 시집 의 표제작입니다. "나는 슬픈 꽃의 살갗을 가진 탕아 편식주의자인 사내의 불길한 애인 애초 그대와 내가 바닥 없는 미궁이었을 때 얼마나 많은 바다가 우리의 밤을 핥고 갔는가 내 몸 어디에 앉을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 미타산 저물 무렵처럼 나와 어떻게 이별할지 끙끙대는 어린 연애, 유리창처럼 닦아주고 싶은 저, 나이 어린 연애의..

신문·방송이 '강(强)추위'를 만들었다

지난 며칠 동안 '강추위'가 우리를 덮쳐 왔습니다. 저는 집안에서 주로 일하는 바람에 크게 추위를 타지 않아도 됐지만, 바깥에서 한데일을 많이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많이 추웠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 생각을 하면 이렇게 낱말을 갖고 이러니 저러니 떠들어대는 것이 미안하고 겸연쩍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여기 짚어 봐야 할 구석이 있기에 한 번 말머리를 이렇게 내어 봅니다. '강추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금은 두 가지가 나옵니다. 다음 국어사전입니다. "강추위1 [명사]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 "강추위2[强추위] [명사] 눈이 오고 매운 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말글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 다르게 인식하게 해 주는 변별력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것은 ..

저 추운 겨울 나무에 어린, 화사한 봄날

제주도 곶자왈 작은학교 아우름지기인 문용포가 쓴 책 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후배이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한 때 노동운동을 함께한 사람입니다. 그런 문용포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 짐승도 자기를 겁내거나 두려워해서 피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과 가까워져서 아이들 그리고 동네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용포가 아이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담은 책이 인데, 170쪽 제목이 '겨울 나무의 희망, 겨울눈'입니다. 겨울나무나 겨울숲을 쓸쓸 또는 스산으로 여기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더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는데, 나무들은 거꾸로 잎과 열매를 다 떼어낸 채 맨 몸으로 겨울나기를 하는 모습이 의연해 보이더구나. 그렇다고 나무들이 겨울에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

스님 전용 주차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태만에 경남 진해 성흥사(聖興寺)에 들렀습니다. 진해 성흥사는 이른 봄에 가면 벚꽃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한창 피어나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대장동 골짜기와 마을숲이 또 아주 좋습니다. 성흥사는, 창원 동읍에 있는 우곡사(牛谷寺)와 마찬가지로 신라 말기 무염(無染)이라는 스님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둘 다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는 데에 창건 동기가 있다고 합니다. 짐작건대, 이렇습니다. 성흥사나 우곡사는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백성들 피난처 구실을 했을 것입니다. 또 무기나 군량미를 쌓아두는 병참기지 노릇도 했겠지요. 옛날에는 상비군(常備軍)이 보잘것없었을 테니 피난 온 백성들이 곧바로 군사 노릇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백성들에게는 성흥사와 우곡사는 거기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존재였..

단풍은 풍요 아닌 가난의 산물이라는

창녕 관룡사 갔다가 돌아나오는 길에 계성 어느 마을 들머리에 있는 은행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아주 그럴듯해서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아주 풍성했습니다. 노란색은 병아리 같아서 아주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은행나무 아래 시멘트 바닥에 누웠습니다. 드러누운 채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데, 은행잎 노란 것들이 하늘하늘 조금씩조금씩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떤 시인은 은행잎 지는 모습을 보면 발바닥부터 따뜻해진다고 했는데, 저는 얼굴부터 달아올랐습니다. 누가 옆에 서서 저를 두고 놀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런 철없는 녀석, 아무리 은행잎이 예쁘기로서니, 저렇게 차가운 바닥에 누울 수 있나.'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바람에 내몰려 한 쪽 구석에 오글오글 모여 있는..

전기톱에 잘린 연리목 그루터기를 보고

하나가 된, 그러나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루터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니, 둘이군요. 연리목(連理木)이라 해도 되겠군요. 두 나이테를 들여다 보니, 둘 다가 아무래도 쉰 해는 지난 것 같아 저보다는 오래 살았지 싶습니다. 고개를 숙여서 잘린 단면을 살펴봤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많이는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 즈음에 성능 좋은 전기톱에 발목이 잘렸겠지요. 저것들, 살아서는 한 나무로 여겨졌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리 잘리고 보니 두 그루임이 드러났겠지요. 이것들 붙어 있었지만 그 붙어 있음 때문에 사랑도 했겠지만 끔찍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땅 밑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더니, 저것들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데라 그랬는지 아마 뿌리가 서로 징그럽도록 엉겨 붙어 있겠다는 짐작이 들었습..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 안은 저 지붕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이런 지붕을 봤습니다. 지붕은 자기에게 쏟아진 참나무 잎사귀들을 고스란히 받아 안고 있었습니다. 예뻤습니다. 사람 폴짝대는 눈으로만 보면, 저 움직이지 못하는 지붕이야 받아 안지 않으면 무슨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싶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생각머리를 돌려보면, 우리 인간이라 한들 저기 저 지붕이랑 무슨 큰 차이가 있으랴, 싶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 돌고 저리 돌며 갖은 수작을 부려본들, 겪을 일은 겪고야 마는 것이 사람살이더라 이런 말씀입지요. 그냥, 고스란히 자기 있는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주어지는 것들을 제대로 감당해 내는 태도가 아름다웠습니다. 저것이 언젠가는 자취도 없이 스러지겠지만, 거기 있는 동안만큼은 자기 자..

죽은 뿌리와 산 뿌리가 한데 얽힌 난초

1. 바뀌어진 난초 화분 둘 올 1월, 노조 지부장 노릇을 그만두고 문화체육부 데스크를 맡게 됐을 때 축하한다고 들어온 난초가 둘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왜 보냈는지는 그동안 까먹어 버렸습니다만. 자기 뜻하고는 상관이 없겠지만, 어쨌든 제게 맡겨진 생명이라 여기고 물 하나만큼은 한 주일에 두 차례씩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줬습니다. 말도 한 번씩 붙이면 좋다 그래서 설핏 지나가면서 '사랑해 친구들아' 한 마디씩 툭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들 무럭무럭 잘 자라고 꽃도 한 번 피우고 잎도 파릇파릇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지난 8월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난초에다 물을 주려고 변소에 갖다놓았는데, 저녁 무렵 가보니 감쪽같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침 갖다 놓을 때 다른 사람이 기르는 난초들도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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