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 안은 저 지붕

김훤주 2009. 12. 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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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이런 지붕을 봤습니다. 지붕은 자기에게 쏟아진 참나무 잎사귀들을 고스란히 받아 안고 있었습니다. 예뻤습니다.

사람 폴짝대는 눈으로만 보면, 저 움직이지 못하는 지붕이야 받아 안지 않으면 무슨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싶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생각머리를 돌려보면, 우리 인간이라 한들 저기 저 지붕이랑 무슨 큰 차이가 있으랴, 싶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 돌고 저리 돌며 갖은 수작을 부려본들, 겪을 일은 겪고야 마는 것이 사람살이더라 이런 말씀입지요.


그냥, 고스란히 자기 있는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주어지는 것들을 제대로 감당해 내는 태도가 아름다웠습니다.

저것이 언젠가는 자취도 없이 스러지겠지만, 거기 있는 동안만큼은 자기 자리를 버티는 태도라 여겨져 무척 씩씩했습니다.

아름답고 씩씩한 지붕을 물끄러미 내려다봤습니다. 저것이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려올 때에야 제 눈길을 거두어 줬습니다.

어쩌면 지키지 못할 약속일 수도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한 번 중얼거려 봤습니다.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으리라. 닥치는 모든 것을, 반기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으리라. 두려워하지도 않고 만만하게 여기지도 않으리라.'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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