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죽은 뿌리와 산 뿌리가 한데 얽힌 난초

김훤주 2009. 11. 3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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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뀌어진 난초 화분 둘

올 1월, 노조 지부장 노릇을 그만두고 문화체육부 데스크를 맡게 됐을 때 축하한다고 들어온 난초가 둘 있었습니다. 어
느 분이 왜 보냈는지는 그동안 까먹어 버렸습니다만.

자기 뜻하고는 상관이 없겠지만, 어쨌든 제게 맡겨진 생명이라 여기고 물 하나만큼은 한 주일에 두 차례씩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줬습니다. 말도 한 번씩 붙이면 좋다 그래서 설핏 지나가면서 '사랑해 친구들아' 한 마디씩 툭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들 무럭무럭 잘 자라고 꽃도 한 번 피우고 잎도 파릇파릇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지난 8월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난초에다 물을 주려고 변소에 갖다놓았는데, 저녁 무렵 가보니 감쪽같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침 갖다 놓을 때 다른 사람이 기르는 난초들도 몇몇 있었는데 아마 바꿔치기가 된 모양입니다.

다시 찾으려 했는데, 대신 남겨진 난초를 보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들이 씩씩하면 원래것들을 찾겠는데, 별로 씩씩하지도 싱싱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이 난초들의 주인이 자기 기르던 난초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좀 싱싱한 녀석들로 골라간 모양입니다. 원래 제게 있던 난초들이 그래도 좀 싱싱했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좀 시들시들하고 일부는 말라 비틀어져 있는 새 친구들을 제 책상 옆으로 데려왔습니다. 전에 난초들에게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물도 주고 한 번씩 말도 걸어 줬습니다.

2. 죽은 뿌리를 뽑아내지 못한 까닭

이렇게 한지 이제 석 달 조금 넘었나 봅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거의 다 지나고 보니, 검은 갈색으로 말라 죽어 있는 부분은 떼어내 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겨울을 나려면, 누구든지 최대한 부피를 줄여야 하지 않습니까.

전체 절반 정도가 죽어 있는 난초의 밑둥 부분.


그래서 저는 화분을 단단히 잡고 검게 말라 죽은 부분을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뽑아내려고요. 그런데 이 녀석이 뽑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뿌리가 흙 아래에서 서로를 단단히 맞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녀석들 봐라. 자기 잘 되게 하려고 뽑는 건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이 서로 헤어질 때가 아직 안 된 것 아닌가 하는, 그러니까 아주 터무니없을 수 있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스로를 생각해도 상황이 우습게 풀려나갔습니다.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면 일부러라도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이러면서 잡은 손아귀에 힘이 더 들어갔을 텐데 그날은 어째 이상했습니다. 꼭 잡았던 손이 절로 스르르 풀려 버렸습니다.

그래 너희들, 이렇게 뿌리가 서로 섞이고 이파리도 서로 부비대면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온 나날이 그리 적지는 않겠지.

이승에서 화분에 담기는 불행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가지가 됐겠지…….

어쩌면 화분에 실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신세가 됐기에, 그래서 더욱 꼬옥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겠네…….

겉으로는 저렇게 죽은 듯 보일지라도, 행여 푸릇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았다가 뿌려지는 물방울에 감응해 싹이 틀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 화분들을 다시 통째로 들고 변소로 가서,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이 물을 뿌려줬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죽었고 살았고를 떠나, 뿌리를 저리도 휘감고 있는 난초들이 꿈을 꿉니다. 그 꿈대로라면, 제가 난초에게 이로우라고 하는 짓이 오히려 해치는 노릇이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습지요??? 제가 생각해도 무척 합리적이지 못했습니다. 하하. 덕분에 난초 화분은 지금도 절반은 죽은 채로 제 책상 옆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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