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강추위'가 우리를 덮쳐 왔습니다. 저는 집안에서 주로 일하는 바람에 크게 추위를 타지 않아도 됐지만, 바깥에서 한데일을 많이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많이 추웠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 생각을 하면 이렇게 낱말을 갖고 이러니 저러니 떠들어대는 것이 미안하고 겸연쩍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여기 짚어 봐야 할 구석이 있기에 한 번 말머리를 이렇게 내어 봅니다.
'강추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금은 두 가지가 나옵니다. 다음 국어사전입니다. "강추위1 [명사]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 "강추위2[强추위] [명사] 눈이 오고 매운 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말글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 다르게 인식하게 해 주는 변별력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것은 똑같이 '강추위'로 적어 놓고도 뜻은 같지 않고 아주 다르니까 말입니다.
강추위1이나 강추위2나 아주 매운(또는 심한) 추위임은 똑같지만,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느냐 여부에서는 완전히 서로 다른 상황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쓰는 사람이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출판사 개정판 서문.
정답은 옛날 사전에 들어 있습니다. 1994년 1월 나온 동아출판사 국어사전 개정판을 보면 '강추위1'만 있고 '강추위2'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바람기도 없이 몹시 매운 추위'라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강추위'에서 '강'은, 우리가 보통 '깡소주' '깡촌'이라 할 때 쓰는 '깡'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 '강-'을 찾으니 "(일부 명사 앞에 붙어) ①'억지의', '부자연스러운', '호된' 등의 뜻을 나타냄.(강추위·강주정·강다짐 따위.) ②'그것만으로 이루어진'의 뜻을 나타냄.(강보리밥·강조밥 따위.)"이라 나옵니다.
물론 다른 접두어 '강-(强)'도 있기는 합니다. "(일부 명사 앞에 붙어) '매우 센', '무리함을 무릅쓴' 등의 뜻을 나타냄.(강타자·강펀치·강행군 따위.)"이라는 설명을 단 채로요.
그러니까 국어사전을 바탕삼아 짐작을 해 본다면, 원래 '강추위'는 '그것만으로 이루어진'이라는 뜻이 담긴(그런 면에서 이 사전도 조금 잘못이 있습니다.) '강추위'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매우 센'이라는 '강(强)추위'가 더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이 '강추위'라 하면 '강(强)추위'로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쓰니까 사전도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습지요. 그래서, 여기에서 저는 매체의 힘을 봅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여기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곰곰 살펴 생각해 보면 거기에 신문·방송이 있는 것입니다. 신문 방송이 바람이 불거나 눈이 내리거나 관계없이 매운 추위를 두고 그냥 '강(强)추위'라고만 이르고 또 쓰다보니, 이른바 언중(言衆)도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신문·방송이 끼이지 않아도 '강추위1'에 더해 '강추위2'가 붙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신문·방송이 애초부터 '강추위'를 '눈이나 바람이 없는 매운 추위'를 이르도록 신경써서 말글을 부렸으면 상황이 지금 같지는 않겠지요.
만약에 그랬다면 지금처럼 같은 '강추위'라는 낱말 하나가 바람·눈이 있는 상황과 바람·눈이 없는 상황을 동시에 이르는 이런 혼란스런 사태만큼은 비껴나 있지 않았을까, 여겨보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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