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만에 경남 진해 성흥사(聖興寺)에 들렀습니다. 진해 성흥사는 이른 봄에 가면 벚꽃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한창 피어나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대장동 골짜기와 마을숲이 또 아주 좋습니다.
성흥사는, 창원 동읍에 있는 우곡사(牛谷寺)와 마찬가지로 신라 말기 무염(無染)이라는 스님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둘 다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는 데에 창건 동기가 있다고 합니다.
짐작건대, 이렇습니다. 성흥사나 우곡사는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백성들 피난처 구실을 했을 것입니다. 또 무기나 군량미를 쌓아두는 병참기지 노릇도 했겠지요. 옛날에는 상비군(常備軍)이 보잘것없었을 테니 피난 온 백성들이 곧바로 군사 노릇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백성들에게는 성흥사와 우곡사는 거기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존재였고 거기 스님들 또한 백성들 믿음과 사랑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본 성흥사는 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것, '스님 전용 주차장' 탓입니다. 제가 견문이 넓지 못하기 때문인지, 성흥사 아닌 다른 절간에서는 이런 황당한 꼴을 본 적이 없지 싶습니다. 스님 전용 주차장이 왜 필요한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입니다. 보시를 하더라도 머묾이 없이 하라, 입니다. 베풀더라도 베푼다는 생각없이(그러니까 나중에 무슨 보상을 받으리라는 욕심 없이) 베풀어라, 입니다. <금강경>에서 석가보니 부처님은 이래야 복덕을 누릴 수 있다 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돼야 합니다. 끝없이 낮춰야 됩니다.
신라 시대 어떤 비구니가 춥고 배고파 혼인 따위는 꿈도 못 꾸는 남정네들을 어여삐 여겨 아무 생각 없이 자기를 던져 남정들과 1000번 잠자리를 했더니 저도 몰래 부처가 돼 버렸더라 하는 얘기에도 이런 무주상보시가 흐릅니다. 전설 속 비구니가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겼다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스스로를 낮추고 또 낮춰서 없는 무엇이 돼 버릴수록 좋은 존재가 바로 스님이고 또 그렇게 되려고(스스로 부처가 되고 해탈을 하려고) 나선 이들이 바로 스님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들이 이런 식으로 절간에 드나드는 장삼이사 처사·보살들과 구분을 짓고 특권화하는 분별심을 내었습니다.
절간 속의 비(非)절간, 스님 속의 비스님, 불교 속의 비불교를 이번에 성흥사에서 봤습니다. 이렇게 자기네들을 일반 사람과 구분짓지 않고, 절간을 찾아오는 대중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더 내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스님이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래도 자연은 아름다워서, 성흥사 단풍은 스님 전용 주차장과는 아무 아랑곳없이 보기 좋았습니다. 느낌조차 고즈넉해서 꽤 그럴 듯했습니다.
목련. 배롱나무의 벌거벗음이 돋보입니다.
김훤주
|
'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문·방송이 '강(强)추위'를 만들었다 (6) | 2009.12.22 |
---|---|
저 추운 겨울 나무에 어린, 화사한 봄날 (6) | 2009.12.20 |
단풍은 풍요 아닌 가난의 산물이라는 (6) | 2009.12.06 |
전기톱에 잘린 연리목 그루터기를 보고 (4) | 2009.12.01 |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 안은 저 지붕 (8) | 2009.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