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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182

돌사자 조형물에 생식기가 없는 까닭

스물둘인가 스물하나인가, 그야말로 20대 빛나던 청춘 시절 80년대에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뭐랄까, 생명력은 불온하니까 그런 따위는 지워버리는 문명의 비정함과 도시의 불모(不毛)함 이런 따위를 얘기하려 했던 작품입니다. 60년대 돌아간 시인 김수영이 말했듯이, "모든 문화와 생명은 불온합니다." '먹물' 튀기며 얘기하자면, "모든 문화와 생명은 모든 기성(旣成)에 대해 전복적(顚覆的)입니다." 도시는 주류가 지배하게 마련이고 도시에게 생명과 문화는 이빨을 뽑아 버려야 하는 대상입니다. 생명(체)을 장식(물)으로 만들어버리고 생명력의 상징은 보기 거북하니까 없애버립니다. 돌사자에 성기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든 주체는 라이온스클럽입니다. 그렇지 않은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토호이거나 토..

호박이 별(★)꼴…그 맛도 별맛일까?

봉암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아래 바닷가 텃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텃밭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꽃밭에 조금 자리를 내어 상추도 심고 들깨도 심고 해 놓은 그런 데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호박이, 호박이 걸쳐놓은 줄기가 눈길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별나다.' 싶었습니다. 진짜 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호박이 저절로 줄기를 저렇게 하지는 않았을 텝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저리 만들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누구일까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심심해서' '장난삼아' '재미있자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호박 구덩이를 파고 똥물을 붓고 심은 호박씨에서 싹이 돋아나 줄기가 뻗으니까 그것을 다섯으로 갈래 지어 퍼져나가게 했습니다. 자기가 해 놓고 때로는 흐뭇하게 바라볼 표정을 생각하니 ..

이명박 대통령은 절대 읽지 않을 책

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절대로 이런 책은 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 몸이 이토록 정밀하고 잘 짜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차마 아까워서라도 그리는 못할 텐데 싶은 것입니다. 철거민 용산 참사나 화물 노동자 박종태 음독 자살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서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을 그토록 하찮게 여기지는 않겠다 여겨진다는 말씀입니다. 은 이른바 '계통 해부학'을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소화기 계통', '호흡기 계통', '심장혈관 계통' 하는 식으로 공통된 역할을 하는 기관끼리 모아 놓는 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관 사이 관계는 잘 설명이 될지 몰라도 개개의 모양이나 쓰임새는 소홀히 다루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대신 '국소 해부학'을 따랐답니다. '팔과 손', '다리와 발', '머리..

화가 이재이가 쓸쓸해보이는 까닭

'백조는 왜 목욕탕에서 헤엄치는가'. 2009년 5월호에 실린 성우제의 글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성우제는 기자를 지냈던 사람입니다. 이 글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의 첫 편이랍니다. KAFA의 11회 수상자인 이재이(Rhee Jaye)가 대상입니다. '목욕탕 실험'을 통해 '인식의 전복'을 행하고 있답니다. KAFA는, Korea Arts Foundation of America Award라 소개돼 있습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한국인 미술 애호가들이 1989년 결성한 단체입니다. 성우제가 쓴 이 글을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소감을 한 마디 덧붙입니다. 좋다 나쁘다 이런 이야기보다는, 저는 그냥 제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미리 일러두지만, 저는 미술이나 비디오..

스페인 내전, 어떤 진실들이 희생됐을까?

1. 대부분 역사는 이긴 사람의 기록입니다. 이기고 지고로 하는 구분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그러니 특정 개인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지요. 전쟁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긴 사람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대체로 이긴 편에 서서 그 기쁨과 즐거움을 대신 누립니다. 패배한 이들을 빼면, 대부분은 누구도 진 편을 들어 슬픔과 아픔을 가누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이긴 이들이 어떻게 왜 이겼을지만 살피고 배울 뿐, 깨진 사람들이 왜 졌으며 깨진 사람들이 다음에 이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따지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페인 내전'은 역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패배한 쪽 관점에서 살펴보고 기록한 것이라고 ..

조선 시대 연인과 병사들 모습은 어땠을까?

무엇이 사람의 한살이를 가장 크게 규정할까요? 정답은 아마 여러 가지이겠지만, ‘사랑’이나 ‘전쟁’ 정도라면 반드시 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사랑도 모르고서는 인생을 말하지 말라, 이런 정도가 되겠지요. 그러면 전쟁은? 이렇게 생각하시나요? 아니잖아, 특정 세대가 어쩌다 겪는 유별난 일일 뿐이잖아? 그럴까요? 남자라면 빠짐없이 군대를 가야 하는 대한민국 현실은? 이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는 또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역사와 현실이라는 양면을 모두 보더라도 언제나 세상은 “‘전쟁 중’이거나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의 지속’”인 셈입니다. 조선 시대 인간들의 전쟁과 사랑을 무(武)와 문(文)을 통해 들여다보는 책 두 권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와 입니다. 는 이순신이라든..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10원 짜리 동전 '처량해'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두어 달 전부터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동전이 놓여 있더군요. 10원 짜리 동전 두 개입니다. 우리 아파트 통로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창틀에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어, 누가 두고 간 모양이네.” 이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지요. 저도, 제 사는 일에 바빠서 말씀이지요. 게다가 그 동전들은 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동전은 보름 전에도 그대로 있었고 열흘 전에도 그대로 있었고 사흘 전에도 그대로 있었고 하루 전에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잘라 말하자면, 이 동전들은 돈 취급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3층이 제가 사는 집이기에, 아침 출근길에 내려가면서 멀리서부터 가까이까지 ..

책 소개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다른 이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떤 결핍에 공감하면 한 번씩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다른 누군가는 갖고 있지만 제게는 없는 상황도 아니고, 다른 누구는 없는데 제게는 있는 그런 상황도 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가지지 않았고, 마찬가지 제게도 없는 그런 상태가 맞겠지요. 그래야 둘 사이에 ‘결핍’이 공동으로 있고 그래야 그에 대한 ‘공감’을 이룰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니까요. 물론 결핍은, 물질일 때도 있고 마음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결핍의 공감이 며칠 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3월 28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1면 ‘책은 희망이다’에 나온 책 소개였습니다. 제목은 ‘학부생 답안지까지 챙기시던 선생님’입니다. 글쓴이는 사적으로 제 후배이기도 합니다만. 나는 학생운동을 한답시고 수업을 빼먹고 전공에는 ..

마흔 일곱 나이에 ‘아버님’이라니!

나이가 쉰도 안 돼서 ‘아버님’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보고 하는 말인지 짐작도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를 이르는 줄 알고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나 하면 어울릴 법한 그런 호칭을 제가 들은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낮에 왼쪽 허벅다리와 엉덩이가 엄청나게 아파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가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한테서 들었습니다. 물론 아가씨는 스물 두엇 정도로 아주 젊어서, 얼굴에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아 앳된 티가 확 났습니다만. 엉덩이와 허벅다리와 이마와 손가락에 침을 맞고 한 30분 남짓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커튼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의사께서 침을 뽑으셨습니다. 바지를 추스르고 조금 있으니 앞에 말씀드린 그 아가씨가 곧바로 다가와 “아버님, 이리로 오세요.” 그랬습니..

비실비실 소나무에 솔방울 많은 까닭은

아침 일찍 산에 갔습니다. 날씨가 흐렸습니다. 이른 시간대다 보니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산길은 호젓하기만 했습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꼬이는 산길을 따라 걷다가 등성이를 하나 넘으니 내리막길이 나왔습니다. 이제야 고개 들고 나무들을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가다 보니 군데군데 솔방울 잔뜩 달고 있는 소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웅장하지 못하고 이파리가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아픈 모양입니다. 옛날 같으면 ‘뭐 저렇게 비실거리면서도 열매는 참 많이 매달고 있네, 이상도 하지. 나무한테도 무슨 욕심이 있나?’ 이랬겠습니다만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2002년과 2003년 우리 ‘경남도민일보’에 ‘최송현의 숲과 나무’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부산대학교와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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