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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마산 역사탐방

두산중토요동구밖교실 3~4월 역사탐방마산 의림사~창동·오동동 역사유적 3월 24일 첫 번째 역사탐방 날은 봄기운이 가득했다. 창원행복한·팔용·꽃때말·느티나무·어울림 지역아동센터가 함께했다. 역사탐방은 올해로 5년째다. 그런데 이번처럼 많이 참여한 것은 처음이지 싶다. 반가움도 잠시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이 어린 친구들과 무슨 역사탐방을 …"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결과는 정반대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먼저 아이들 수준을 가늠하여 어떻게 진행할지 정해야 한다.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으면 잔소리는 되도록 삼간다. 굵직한 이야기만 던져주고 재미있게 놀자고 한다. 탐방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반응을 살폈다. 뜻밖에 호응이 돌아왔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친..

초·중교 도입된 소프트웨어코딩교육 참관기

4차산업혁명은 이제 낯설지 않은 일상 용어가 되었다. 철도·증기기관의 발명에 따른 1차산업혁명,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2차산업혁명, 컴퓨터·인터넷의 발달에 기반한 3차산업혁명에 이어진다. 4차산업혁명은 생활과 산업의 모든 분야·영역에 정보통신기술이 융합하는 것이다. 스위치나 리모컨을 조작하는 대신 말소리를 내어 텔레비전이나 전등을 켜고 끄는 것이 이제는 신기하지 않다. 말소리에 반응하는 정보통신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교과서도 책이라는 형태를 벗어나게 생겼다. 컴퓨터 게임처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면 내용도 지금보다 풍부해질 수 있다. 지금은 말과 글로 소통하지만 이게 많은 부분 정보통신 프로그램으로 대체될 날도 멀지 않았다. 1980~90년대만 해도 그럴 조건이 안 되었다..

내가 두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두 번째 이유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은 멋진 드라마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감격했다. 60년 넘는 세월을 전쟁 위기와 긴장 속에 살아온 백성이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해외동포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지내는 재일동포 2세 한 분은 평소에도 남북 간, 북미 간 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늘 말했다. 남북과 미북의 극단적 대결과 그에 따른 북한 핵개발이 재일동포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얘기해 주곤 했다. 모국의 분단과 대결은 그 자체로 일본 사람들이 재일동포를 얕잡아보는 차별의 원인이었다. 분단을 메우고 대결을 허무는 남북정상회담에 재일동포들이 얼마나 감격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한 친구도 남북정상회담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고려인들까지 관심 깊게 지켜보게..

민간인학살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몇 가지

좀 민감한 이야기이긴 하다. 최근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가 제주4.3 관련 세미나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 4.3만이 오롯이 독립되어 홀로코스트의 유일무이성에 필적한다고 생각한다면, 죽음 간의 위계를 만들어 다른 죽음을 경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말이 좀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다. 쉽게 말하자면 올해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역설적이게도 '4.3만 내세워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부연했다. "여순 사건과 예비검속 사건, 형무소 재소자 사건, 보도연맹 사건, 부역혐의자 사건, 군경토벌 관련 사건, 미군 사건, 적대세력 관련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모든 보복성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들을 모두 연결해 하나의 제노사이드로 ..

풍운아 황운하 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풍운아 황운하 마지막 화. 백한번째 프로포즈 1983년 경찰대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황운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입실 시각은 오후 6시. 친구들과 헤어진 황운하는 6시가 약간 지나 학교에 도착했다. 황운하를 부른 지도관은 흡연과 음주 여부도 확인했다. 황운하는 모두 인정했다. 오히려 당황한 지도관이 되물었다. “왜 이렇게 다 인정하느냐?”“거짓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술·담배를 하다 적발된 경찰대 학생에게는 퇴교조치가 내려졌다. 황운하는 그를 아낀 한 교수 덕에 구..

왜성 재발견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산지니, 2016)은 한겨레 기자인 신동명, 최상원, 김영동 세 기자가 지면에 연재한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도 부산과 경남 일대에 산재한 왜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치욕스런 역사의 상징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왜성에 대한 그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책을 통해 주장한다. 치욕의 상징물이 아니라 "16세기 말 우리 조상이 절체절명의 국난을 마침내 극복하고 얻은 전리품으로 왜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군이 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성을 쌓은 배경을 지적한다. "성에 의지해 조명연합군의 공격에 최대한 버티다가 여의치 않으면 바닷길을 통해 일본으로 안전하게 철수"하기 위해 왜성을 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부지방엔 없다. 서해, 동해안에도 없다. 어쨌든 ..

경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노치수 경남유족회장으로부터 경남지역의 민간인학살이 알려지게 된 계기와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된 과정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18년 4월 30일 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리는 경남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추모제 행사에 배포할 책자에 실어 유족들에게도 그 과정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마침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한 번쯤 기록으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김주완의 개인적인 기억과 확인된 기록으로 재구성한다. 1999년 5월 6000여 시민주주의 힘으로 경남도민일보가 창간되었다. 1990년부터 기자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나는 정말 이런 신문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자본과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취재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는 신문. 모든 기자에게 꿈같은 일 아닌가. 우리보다 10년 먼저 창간했던 ..

인민군 고위간부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이야기

기억은 잊히지만 기록은 역사가 됩니다 정찬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선의용군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북한의 엘리트였던 그는 6.25 전쟁 발발 직후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허가이의 부름을 받고 당 고위직인 영남지방 교육위원 임명장과 김일성 수상의 신임장을 전달받습니다. 그가 받은 임무는 "인민군대를 지휘해 경상남북도의 교육체계를 사회주의식으로 바꿔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양을 출발, 서울을 거쳐 진주를 향해 남하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온갖 참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이 전쟁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인민군 대열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전투,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고립된 인민군 패잔병들의 비참한 도피생활, 어쩔 수 없었던 지리산 빨치산 합류, 이후 토벌군에 ..

풍운아 황운하 제6화. 검찰의 끊임없는 수사방해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 #윤우진사건 #조희팔사건 “공 씨 단독범행이며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2010년 12월 9일 황운하는 디도스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당한 발표와 달리 여론은 축소수사로 받아들였다. 정권 입맛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디도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자 검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디도스 사건을 수사한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잘못된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경찰 조직 내에서도 후폭풍이 불었다. 황운하가 경찰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문책해야 한..

풍운아 황운하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 2010년 2월 10일, 112신고가 들어왔다. 불법 오락 신고자를 오락실 사장이 찾아내 폭행한 보복범죄 사건이었다. 오락실 사장이 신고자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오락실 사장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관이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컸다. 서울청장 조현오는 황운하에게 유착 경찰관 색출을 지시했다. 오락실 사장은 이미 휴대전화도 지니지 않은 채 잠적했다. 잠적한 용의자를 휴대전화 추적이 아닌 방법으로 하루 이틀 내에 찾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용의자를 붙잡..

2000년대 초반에 들은 촌지 이야기

올해 3월 기역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촌지를 밝히는 기자 이야기다. 한 번 적어보겠다. 2000년대 초반에 들은 얘기들이니 적어도 15년은 넘었다. 첫 번째 이야기히읗 기자한테서 들었다. 어느 기관이든 출입하는 기자들은 기자단을 구성하고 대표격으로 간사도 한 명 뽑는다. 따뜻한 봄날 기자단 간사한테 지역에 있는 한 공공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 한 번 같이 먹자는 얘기였다. 기자들 10명 안팎이 함께 밥을 먹었다. 그 기관에서는 대표와 국장급 간부 둘, 홍보 담당 하나 모두 넷이 나왔다. 이런 자리에 드는 돈은 당연히 해당 기관이 내었다. 그렇게 점심에다 술까지 한 잔 걸치고 돌아왔다. 다들 기분이 좋았다. 간사 한 명만 빼고 나머지 기자..

3.15마산의거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인가?

지난 1962년 건립된 마산시 합포구 신포동 3·15회관(지금은 철거되고 없음)의 전면에는 모두 12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기둥이 하필 12개인 것은 1860년 3·15마산의거 당시 경찰이 쏜 총탄에 학살된 12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12열사가 아니라 사실은 14열사 이들 12열사는 김영호(당시 19세·마산공고)·김효덕(19·직공)·김용실(18·마산고)·김영준(20·무직)·전의규(18·무직)·김삼웅(19·무직)·김영길(17·직공)·오성원(20·구두닦이)·김주열(17·마산상고)·강융기(19·마산공고)·김평도(38·점원)·김종술(16·마산동중) 등을 가리킨다. 이들 중 김영길 열사는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떠오른 날 밤 경찰과 대치하던..

풍운아 황운하 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 허준영과 조현오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제4화. 외시 출신 경찰청장 2003년, 황운하는 서랍을 정리하다가 누렇게 된 대학노트를 발견했다. 20년 전 경찰대 재학시절 사용했던 노트에는 경찰관으로서 목표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 경찰수사권 독립, 경찰기구 독립이다.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전제로 여긴다. 황운하는 1984년, 4학년이 됐을 무렵 경찰 조직이 떠안은 숙제 해결을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로 삼겠다고 생각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벌어지고,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1988년 1월 ..

천리포수목원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다

비 오는 봄날 천리포수목원을 다녀왔다. 날씨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붐비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통 없지는 않았다. 날씨가 맑은 봄날 주말이면 아마 미어터지지 않을까 짐작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다 좋았다. 나무나 풀이 잘 어울려 있었다. 나무나 풀 이름은 잘 모르지만 스윽 둘러보는데 어색하거나 지나치거나 모자란다는 느낌을 주는 데는 눈에 띄지 않다. 조화롭지 못한 구석이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마 꽃이 피지 않았어도 멋질 것 같았다. 실제로 바위를 주제로 삼고 있는 한 영역은 꽃과는 전혀 무관했지만 아주 멋졌다. 바닥을 기는 나무들과 이끼 등으로 구성했는데 거기 생물과 무생물의 어우러짐과 그 특징들의 드러남이 색다르고 신선했다. 찾는 사람들에게 숙박용으로..

가본 곳 2018.04.07

문재인 대통령 제주 4.3추념사 전문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 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

기자들이 아무렇게나 익명 보도를 남발하는 이유

“고용노동부 양산지청은 지난 17일 작업자가 사망한 사고가 난 양산 ㄱ산업에 대해 안전진단 명령과 함께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창원시 신촌동 한 스테인리스 강판업체에서 … 몸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ㄱ(26·진주시 도동천로) 씨가 압사했다.” 위에 인용한 글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전하는 기사 중 일부다. 사고가 발생한 회사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다. 왜 회사 이름을 밝히지 못했을까. 사실관계 확인이 미흡해서? 그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걸 수 있어서? 아니면 로비를 받아서? 셋 다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그냥 관성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익명의 문제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양산에 공교롭게 ㄱ자로 시작하는 업체가 있다고 치자. 그 회사에서 발생한 사고는 아니지만 그렇게 오인될 수 있다. 두..

풍운아 황운하 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

풍운아 황운하 연재 순서제1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제2화. 내 자존심이 어때서제3화. 서부지검 이상 없다제4화. 외시출신 경찰청장제5화. 북창동의 언터처블제6화. 오늘 참 멋진 날이야제7화. 백한 번째 프로포즈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 김대중은 프랑스 대혁명처럼 구체제에 대한 모순을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제 모순 타파 가운데 하나가 경찰 수사권 독립이었다. 1999년 경찰청장 김광식은 수사권 독립 소신을 피력했다. 당시 성동경찰서 형사과장인 황운하는 오랫동안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형사 검찰 파견이었다. 정작 형사과 인력은 부족한데 경찰은 검찰 일을 거들었다. 검찰 파견 직원 관련 규정을 따르지 않는 편법 파견이었다. 파견 경찰을 철..

순천 아랫장 61호 가게의 찔룩게

전라남도 순천 아랫장 61호 가게는 음식이 특별하다. 겉보기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서 먹어보아야 알 수 있다. 올해 1월 21일 여기 들른 적이 있다. 찔룩게와 머리전이랑 오뎅을 시켰다. 찔룩게 튀김은 기대한 대로 따뜻하고 고소하며 부드러웠다. 씹을 때는 당연히 껍데기가 부서졌지만 적당히 가루가 된 때문인지 입 안에서 거북하지 않았다. 찔룩게는 순천 특산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아니라고. 다른 데서도 흔한데 여기서 찔록게라 할 뿐이라 한다. 이런 맛이 같은 순천 아랫장이라도 다른 가게에서는 나지 않는다. 순천 아랫장 찔룩게가 별미라는 얘기는 5~6년 전에 들었다. 실제로 먹어본 것은 2015년인가였다. 그런데 별로였다. 순천 출신 후배한테 얘기했더니 아무 데나 들어가서 그렇다 했다. 그러면..

맛집 기행 2018.03.31

삼랑창 뒤편 후포산의 사라진 의충사

조선 시대 조세 창고가 경남에는 셋이었다. 창원 마산창, 진주(지금은 사천) 가산창, 그리고 밀양 삼랑창이었다. 마산창과 가산창은 1760년 생겼고 삼랑창은 1765년 생겼다. 마산창은 임금이 있는 서울에서 볼 때 왼쪽에 있어서 좌(조)창이 되었고 가산창은 우(조)창이 되었다. 삼랑창은 후(조)창이라 했는데 앞쪽 바닷가에 있지 않고 뒤쪽 육지 한가운데 있어서 그랬다. 지금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일대다. 밀양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어귀다. 밀양강 물결(浪)과 낙동강 물결과 부산에서 밀고 드는 바다 물결 이래서 삼(三)랑이 된다고 한다. 조세 창고가 있었으니 지키는 시설도 당연히 있었겠다. 뒷산 후포산에 산성이 있었다. 후포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비석들이 줄줄이 서 있다. 옛적 삼랑창이 있던 시절 고을 ..

가본 곳 2018.03.29

가을에 맞추어 쓴 산청 여행기

예전에 산청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러다보니 실제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는 훨씬 더 멀고 아득했다. 하지만 이제 산청은 진주에서 보자면 마실을 가도 좋을 만큼 이웃 동네가 되었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길이 된 것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양면적이다. 길이 멀어 불편했지만 그만큼 누릴 게 많았던 데에 비긴다면 지금의 길은 편리하지만 밋밋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그조차 넉넉한 마음으로 품을 수 있기에 떠남은 언제나 좋다. 성철스님 겁외사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IC를 빠져나오면 멀지 않은 곳에 겁외사가 있다. 겁외사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멋있거나 경치가 아름답거나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겁외사는 볼거리가 많거나 아름답거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절이다. 그럼에도 사람..

가본 곳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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