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민감한 이야기이긴 하다. 최근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가 제주4.3 관련 세미나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 4.3만이 오롯이 독립되어 홀로코스트의 유일무이성에 필적한다고 생각한다면, 죽음 간의 위계를 만들어 다른 죽음을 경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말이 좀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다. 쉽게 말하자면 올해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역설적이게도 '4.3만 내세워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부연했다. "여순 사건과 예비검속 사건, 형무소 재소자 사건, 보도연맹 사건, 부역혐의자 사건, 군경토벌 관련 사건, 미군 사건, 적대세력 관련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모든 보복성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들을 모두 연결해 하나의 제노사이드로 인식해야, 대량 폭력 발생 및 확산이 전국적인 절멸과 삶의 사회적 파괴로 귀결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제주4.3의 진정한 전국화가 가능하려면
사실 완곡히 표현하긴 했지만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왜냐면 위에 언급한 수많은 학살사건들 중 제주4.3처럼 개별 특별법이 제정돼 국가 차원의 추념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여순 사건의 경우,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의 반란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민간인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4.3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전혀 별개로 취급되고 있다.
이들 민간인학살 사건을 모두 묶어 함께 가야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국가폭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나서 마침내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 제정을 실현한 사회단체가 줄곧 '통합 특별법'을 주장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강 교수 말대로 '죽음 간의 위계'는 없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유태인과 슬라브인, 집시, 장애인, 정치범, 그리고 학살 장소나 시기에 따른 위계나 서열이 없듯이 한국에서 벌어진 대량학살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한때 '양민학살'이라는 단어가 흔히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착한 백성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다 보니 각 지역과 사건별로 서로 '누가 더 억울하냐' '우리가 진짜 양민'이라는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자 '양민이 아니라면 마구 죽여도 되느냐'는 반문이 나왔다. 그 후 정당한 재판과 절차에 의하지 않은 모든 학살은 '민간인학살'로 통일됐다.
따라서 민간인학살은 제주가 다르지 않고 여순이 다르지 않고 산청·함양·거창이 다르지 않고, 문경과 함평, 고양과 대전이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보도연맹이 다르지 않고 재소자가 다르지 않고 부역혐의자 또한 다르지 않다.
이것이 국회에 계류 중인 '진실화해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할 이유다. 또한 최근 개봉한 영화 <해원>을 우리가 꼭 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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