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민간인학살 114

"겨우 찾은 아버지 유골 모실 곳이 없네요"

진주유족회 강병현(59) 회장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학살당한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20일 마산유족회 창립대회 자리에서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유복자입니다. 세상에 나오니까,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정마다 다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만 없더라고요. 지난 60년간 공산당이 싫습니다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제 나이 60입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제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강 회장의 아버지처럼 1950년 7월 국군과 경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된 사람은 경남 진주에서만 1200여 명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올해 초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고, 당..

학살 암매장 유골, 발굴해도 갈 곳이 없다

진주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유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중·하순경 국민보도연맹원과 진주형무소 재소자 1200여 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 암매장된 지 59년만의 일이다. 김해 봉하마을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 49재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 10일이었다.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법륜골 감나무밭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남대박물관 발굴팀(책임연구원 이상길 교수)이 이날 오전 매장추정지를 약 10cm 정도 파들어가자 곧바로 앙상한 유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러난 3~4구의 유해 옆에서 M1 소총의 탄피도 발견됐다. ※관련 글 : 내가 학살현장 유골 사진촬영을 포기한 까닭 이곳은 현재의 토지소유주가 지난 80년대 초 감나무 과수원 용도로 땅을 ..

김주완 '기자정신(?)' 많이 죽었다

내가 학살현장 유골 사진촬영을 포기한 까닭 나는 매주 월요일자 신문의 17면(기획면) 한판을 채워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때그때의 이슈를 취재해 기획기사를 출고하거나 '김주완이 만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기사를 내고 있다. 지난 금요일(10일) 알고 지내는 '민간인학살 진주유족회'의 한 회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명석면 용산리에서 진행돼왔던 발굴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런데 문산읍 상문리에서 성공한 것이다. 그는 다음날인 11일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주 월요일자 기획을 그걸로 잡기로 했다. 다음날 마침 진주 가는 후배의 차를 얻어타고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법륜골에 도착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

민중의 한 서린 암반동굴 여수 마래터널

지난 3일 전남 여수에 강의를 다녀온 적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하룻밤을 선소(거북선을 제조했다는 곳) 앞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오문수 선생의 안내로 여수의 이곳저곳을 둘러봤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곳이 있어서 소개드릴까 합니다. 여수역에서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마래2터널입니다. 좁은 1차선 터널이어서 터널에 진입하기 전, 마주 나오는 차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합니다. 터널 입구가 그렇게 좁은데다 낡아 보여서 그저 좀 오래된 터널인가 보다 싶었는데, 들어가보니 그냥 보통 터널이 아니었습니다. 암벽이 울퉁불퉁 거친 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는 인공 동굴이었습니다. 폭이 좁아 차량 한 대밖에 주행할 수 없지만, 동굴 안 여섯 군데에 여유공간을 만들어 교행이 가능하도록 해두었습니다. ..

가본 곳 2009.07.11

62살이 되어서야 처음 불러보는 '아버지'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들에 의해 강제해산됐던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가 어제(20일) 48년만에 재창립대회를 열었다. 어제 창립대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노치수(62) 유족회장은 1950년 당시 우리 나이로 세살바기 아기였다. 그 때 아버지 노상도 씨를 잃고 평생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왔던 그는 62세 노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살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언젠가 꼭 쓰고 싶은 글이었는데, 이제야 썼으니 신문에 실을 수 있으면 싣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버려도 된다"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당연히 신문에 게재하고, 이 블로그에도 올려 많은 분들과 그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한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아버지! 아버지를 얼마나 불러 보고 ..

민간인학살 유족들의 뿌리깊은 피해의식

어제(20일) 오후 1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 창립대회가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있었다. 1961년 5·16쿠데타 정권에 의해 유족회 간부가 구속되고 강제해산되는 아픔을 겪은 후, 48년만에 재창립되는 행사였다. 창립 준비과정에 함께 했고, 어제 행사 사회를 내가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산의 학살사건을 처음으로 발굴해서 보도하고, 1960년 유족회 활동과 강제해산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정말 각별한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유족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버지가 학살된지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유족들의 '빨갱이 컴플렉스'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genocide)과 달리 한국에서의 민간인학살은 명백한 '정치적 학살(massacre..

48년만에 다시 창립되는 학살 유족회

제가 돕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주)'가 마침내 창립총회를 엽니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정권에 의해 강제해산된 지 48년 만에 다시 창립되는 것입니다. 저는 유족은 아니지만, 자문위원 자격으로 그동안 준비위원회를 도와 왔습니다. 그래서 오는 저는 지역언론과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그리고 몇몇 블로거 님들께 아래와 같은 보도자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드렸습니다.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로 2000여 명에 이르는 억울한 영혼과 유족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유족들은 현 이명박 정권 들어 후퇴하고 있는 진실규명 작업에 분노하면서도, 아직도 깊은 공포와 오랜 피해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많은 기자와 블록거 님들이 오셔서 이들의 슬픔과 한..

개념찬 87세 할머니 "X승만이 다 죽였어"

지난 10일 진주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진주시 명석면 사무소에서 열렸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경남대박물관(관장 이종흡)에 의뢰해 이상길 교수(고고학)팀이 발굴을 담당하게 됩니다. ※개토제(開土祭) : 땅을 파기 전에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묘자리를 파는 것을 천광(穿壙)이라고 하는데, 이때 일꾼들이 땅에 술을 뿌리며 토지신을 달래는 의례를 말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술, 과일, 어포, 식혜 등으로 제상을 차려 개토고사(開土告辭)를 읽는 것이 관례이다. [다음 문화원형백과] 이날 개토제에는 약 100여 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연세가 많아보이는 꼬부랑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지난 5월 15일 구 진주시청 앞 ..

해군 창설 주역 전호극 소령 학살당했다

1946년 해군 창설에 참여했고, 해군교육사령부의 전신인 해방병단과 해안경비대, 항해학교 등에서 교관과 소령으로 복무했던 한 군인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 때 함께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군인의 유족은 "아버지가 백범 김구 선생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이승만 정권이 누명을 씌워 구속시켰고, 그로부터 3개월 후 백범 선생이 암살당했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즉 이승만 정권이 사전에 백범과 가까운 군부 내 고급장교들을 제거한 다음, 암살을 실행했다는 주장이다. 유족 "백범 선생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 마산형무소에 복역 중이던 아버지 전호극(1913년생·해군 소령) 씨를 잃은 딸 전술손 씨는 "아버지가 1949년 2월 29일 진해의 관사에서 갑자기 끌려가 마산형무소..

"국가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진주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 현장 59년 만에 처음 열린 진주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원불교의 진혼의식인 천도독경이 막 끝난 직후였다. 사회자인 서봉석 전 산청군의원이 다음 순서를 안내하려는데, 갑자기 한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제단으로 올라갔다. 유족회 김태근 회장이 급히 달려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진주시장은 왜 와서 사과하지 않능기고! 경찰서장은 왜 안 와! 내 이런다꼬 잡아갈라면 잡아가라 이놈들아!" 할머니는 정말 잡혀갈 각오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무 죄없는 사람을 끌고가 산골짜기에서 무참히 죽여버린 나라에서, 진주시장과 경찰서장을 욕하면 당연히 잡아갈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제단에 차려진 음식에 대해서도 불만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