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간인학살 유족들의 뿌리깊은 피해의식

기록하는 사람 2009. 6. 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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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일) 오후 1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 창립대회가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있었다. 1961년 5·16쿠데타 정권에 의해 유족회 간부가 구속되고 강제해산되는 아픔을 겪은 후, 48년만에 재창립되는 행사였다.

창립 준비과정에 함께 했고, 어제 행사 사회를 내가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산의 학살사건을 처음으로 발굴해서 보도하고, 1960년 유족회 활동과 강제해산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정말 각별한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유족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버지가 학살된지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유족들의 '빨갱이 컴플렉스'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genocide)과 달리 한국에서의 민간인학살은 명백한 '정치적 학살(massacre)'이다.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잠재적인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학살은 1980년 전두환 일당이 정권 장악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광주학살(massacre in Gwangju)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그런 정치적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현 정권과의 긴장관계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유족들은 60년의 세월동안 자신은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과잉 반공의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심리적 '가역반응'을 보여왔다.


어제 유족회 창립대회에서도 그런 모습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일부 내빈의 축사 내용에 대해 참석한 유족 중 한 분이 "정치적인 발언은 안된다"며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심지어 어떤 분은 '창립선언문' 중 현 정부를 비판하는 대목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났다.


한 유족이 '정치적인 발언'이라고 한 축사는 아마도 김영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의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만 공동대표는 "마산은 1960년 전국에서 최초로 유족회가 생긴 곳이지만, 박정희 쿠데타 정권에 의해 강제해산된 후 다시 창립되는 과정은 전국 어느 곳보다 늦었다"면서 "이것은 1961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 마산이 급격하게 보수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 이명박 정권은 '과거'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과거가 정리되지 않는 바람에 똑 같은 죽음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면서 현 정부 들어 발생한 용산참사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민간인학살의 사례로 들었다.

축사를 하고 있는 김영만 범국민위 공동대표.


창립선언문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부분은 아마도 아래 대목인 듯 하다. 이 창립선언문은 내가 작성해 준비위원장에게 보여드린 후, 자료집에 실었던 글이다. 유족들의 정서를 고려해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그런 뒷말이 나오고 말았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위축시키는가 하면 내년에는 진실규명 자체를 중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인권이 상실되고 민주주의가 말살되었던 과거로 회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유족의 반감 표출은 총회 마무리 즈음 기타토의 시간에 나왔다. 교사 출신의 80세라는 한 유족은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유족회는 순수한 자리여야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장이 되어선 안됩니다. 일부 외부인사들이 그런 정치적인 발언을 마구 할 수 있도록 해선 안됩니다. 앞으로 이런 모임에서는 우리 순수한 유족회 사업, 혹은 돌아가신 영령에 대한 위로, 명복을 비는 것 이런 방향으로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는 정치적인 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분의 지적에 앞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축사에서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유복자입니다. 세상에 나오니까,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정마다 다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만 없더라고요. 지난 60년간 공산당이 싫습니다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제 나이 60입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제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창립선언문의 현 정부 비판 부분에 대한 우려는 뒤풀이 자리에서 나왔다. 이처럼 민간인학살 유족회에는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유족회 활동이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료삼아 창립선언문 전문과 창립대회 자료집을 파일로 첨부해둔다.


창립선언문

오늘 우리는 실로 반세기만에 이 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1960년 6월 12일 노현섭 어른과 김용국 어른 등이 앞장서 마산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유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산유족회가 결성된 지 꼭 49년 하고도 8일만이며, 1961년 5월 16일 정치군인 박정희 등의 군사쿠데타로 강제해산된 일도 48년이 되었습니다.

49년 전 노현섭 회장의 일기장은 그날의 모습을 "장내는 울음바다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울음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당시의 사진은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숙부들이 소복을 한 채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분들 중 대부분은 한(恨)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국민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로부터 두 번씩이나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이었고, 두 번째는 5·16쿠데타 세력에 의한 유족회 강제해산과 간부들의 구속, 그리고 무덤에 대한 부관참시였습니다.

이제 남은 우리의 사명은 더욱 분명합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아무런 저항수단도 갖지 않은 비무장 민간인을 합법적인 재판도 없이 무자비하게 수장 또는 총살하는 방식으로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거나 암매장한 사실은 어떠한 말이나 논리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반인권, 반인륜적인 국가범죄입니다.

이러한 민간인학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묻어둔 채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고, 법치를 외치는 것은 모두 말짱 헛말이며 위선에 불과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없이는 일제와 나치의 제국주의 전쟁이나 인권말살을 비난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위축시키는가 하면 내년에는 진실규명 자체를 중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인권이 상실되고 민주주의가 말살되었던 과거로 회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산지구 민간인학살 유족들은 과거 독재정권에 의해 두 번이나 죽임을 당한 원통한 역사를 낱낱이 밝혀내 아직도 바닷속, 땅속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원혼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48년 전 쿠데타정권의 탄압이 다시 벌어진다 해도 이제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런 결의를 위해 우리는 다시 여기에 모였습니다. 다시 마산유족회 창립을 선언합니다.

2009년 6월 20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

우리 말고는 아무도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한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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