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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국가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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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 현장

59년 만에 처음 열린 진주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원불교의 진혼의식인 천도독경이 막 끝난 직후였다.

사회자인 서봉석 전 산청군의원이 다음 순서를 안내하려는데, 갑자기 한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제단으로 올라갔다. 유족회 김태근 회장이 급히 달려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진주시장은 왜 와서 사과하지 않능기고! 경찰서장은 왜 안 와! 내 이런다꼬 잡아갈라면 잡아가라 이놈들아!"

할머니는 정말 잡혀갈 각오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무 죄없는 사람을 끌고가 산골짜기에서 무참히 죽여버린 나라에서, 진주시장과 경찰서장을 욕하면 당연히 잡아갈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제단에 차려진 음식에 대해서도 불만을 뱉어냈다.

"제물이 이게 뭐야! 그놈들 저거 하룻밤 술값도 안 되겠다. 저거 채려놓고…. 에라이 나쁜 놈들."

예정에 없던 한 유족이 지팡이를 짚고 제단에 오르자 김태근 회장이 급히 부축하고 있다.

할머니는 "내 이런다고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외쳤다.


유족들이 앉은 자리 여기저기서도 흐느낌이 계속됐다. 간난아이 때 아버지를 잃은 한 초로의 여인은 위령제 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로 있던 당시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 강병현(59) 씨도 본부석 천막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를 잃은 강병현 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1시 진주시 본성동 청소년수련관(옛 진주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합동위령제는 100여 개의 만장행렬에 이어 2시부터 전통 제례와 원불교와 불교의 종교 의례, 노래패 맥박의 추모가에 이어 추모식 순서로 이어졌다.

김태근 회장은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라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60년 가까이 말을 못하고 살아왔기…"라는 대목에서 울컥 목이 잠겨버렸다. 한참 숨을 고른 후에야 준비된 인사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유족회를 창립한 후 확인한 결과 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미군 폭격 등으로 진주에서만 약 3000여 명이 희생됐다"며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확인된 숫자는 일부에 불과하며 야직도 영면을 이루지 못한 채 구천을 방황하는 영령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김태근 회장이 인사말을 하려다 말고 목이 메인 채 숨을 고르고 있다.


김종현 전국유족회 상임대표도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부일 뿐이며,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이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면서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여전히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에 불편해하고 심지어 딴지를 걸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부터라도 미신청 유족을 위해 신청기간과 진실화해위원회 활동기간을 연장하고, 아직도 차가운 땅속에 누워있을 유해도 발굴하고, 추모공원 등 위령사업과 더불어 배상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족들이 백발이 무성한 노구를 이끌고서라도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위령제 도중 곳곳에서 유족들의 흐느낌과 오열이 터져나왔다.


김영만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는 추모식에 앞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 것을 거론하며 "60년 전 그토록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고도 사랑할 나라가 있느냐"며 "이렇게 착한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는데, 국가는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질타했다.

조국통일불교협회 경남대표 오길석 씨는 "이 지역에서 이런 행사가 있고, 예전에 그런 비극이 있었으며,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이 이 지역 주민임에도 그들의 손에 선출된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정영석 진주시장은 조화만 보낸 채 이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개탄했다.

김백용 진주시의회 의장은 "앞으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진상이 철저하게 밝혀져 용서와 화해 속에 과거의 허물을 딛고 미래를 향해 다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 밝은 내일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살 이후 59년만에 처음으로 열린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대표들이 절을 하고 있다.


정영석 진주시장은 총무국장을 대신 보내 추모사를 대독하게 했다. 정 시장은 추모사에서 "늦으나마 이번 합동위령제가 희생된 분들의 영원한 안식의 계기가 되고, 과거의 암울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희망의 미래를 열러가는 역사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박노정 시인의 '진실과 화해의 이름으로'와 전숙자 시인의 '충절의 땅 진주'라는 추모시 낭독이 있었으며, 한대수 민간인학살범국민위 위령사업특별위원장의 진혼굿과 함께 참석자 전원이 국화를 제단에 헌화하는 순서를 끝으로 위령제는 마무리됐다.

한대수씨가 진혼굿을 하고 있다.


위령제 내내 구름이 잔뜩 끼어 우중충하던 하늘에서는 그제서야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진주지역 유족과 전국 곳곳의 유족회 간부 등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조사관 등 4명이 참석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위령제에 이어 오는 27일 진주에서 유해발굴 개토제를 열고 경남대 이상길 교수팀과 함께 진주 명석면과 문산읍 등의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발굴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 유족이 헌화를 한 후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고 있다.


한편 진주지역에서는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최소 1200여 명의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진주지구 CIC(특무대)와 헌병대, 그리고 진주경찰서 경찰관들에 의해 집단살해되었으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 유족과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70명이다.

희생자들은 진주 명석면 우수리 갓골과 콩밭골, 관지리 화령골과 닭족골, 용산리 용산치,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마산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 등에서 집단 총살, 암매장됐다.

합동위령제에는 유족과 종교인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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