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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경남과 부산의 걸을만한 장소 서른다섯 곳

고성 시인 동길산 산문집 “들길은 불뚝성질의 길이긴 해도 무른 길이다. 푹신한 길이다. 대들어 저항하는 길이 아니라 배꼽 잡게 웃기면서 저항하는 길이다. 멱살 잡고 저항하는 길이 아니라 맞다 맞다 동조하면서 저항하는 길이다.”(14쪽, ‘합천 밤마리 들길’) “오솔길은 오솔길을 둘러싼 숲은 까탈스럽지 않다. 따지지 않는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자기를 자기 방식으로 내보이는 대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래도 받아들이고 저래도 받아들인다.”(92쪽, ‘해운대 청사포 오솔길’)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길이 누구에게는 의미가 심장한 길이고 나는 휑하니 지나가는 길을 누구는 눈물 글썽이며 간다. 길은 어느 길이든 다감하고 어느 길이든 누군가에게는 외가로 가는 길이다.”(121쪽, ‘최계락 외..

브루스 커밍스, 이명박 정부를 조롱하다

근현대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한국 전문가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1934년생) 석좌교수가 이명박 정권에 대해 한마디 했네요. 오늘 배달돼온 2009년 봄호에서 커밍스 교수는 백낙청 편집인과 대화를 통해 이명박 정권의 교과서 개정 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튜브에서 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로 넣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 백낙청 편집인은 이렇게 맞장구를 칩니다. "진정한 실용주의자는 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에 넣으려고 하지 않지요." 이 정권의 대북강경노선에 대해서도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조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통령이 어떤 종류의 조언을 받고 있는지가 때때로 궁금해지는데, 왜냐하면 그는 부시가 강경노선에서 선회하여 북한과의 관계를 재개하는 바로 그 시점에 강경노선을 취했기 ..

억지 경기 뛰게 하고 강제 전학시키는 학교

며칠 전, 제가 일하는 경남도민일보에 ‘인권’이라는 잡지가 배달돼 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모양입니다. 2009년 1·2월호입니다. 호기심이 일어서 뒤적거려 봤습니다. 가운데 즈음에서 “축구시합 졌다고 전학 가야 합니까?”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습니다. 읽어봤더니, 강원도 한 고교에서 억지로 선수단을 꾸려 축구 경기를 하게 하고 나흘 뒤에는 축구부를 해체한다며 전학을 강요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만, 뭐 어찌 보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요즘 학교가 어디 학교라야 말이지요. 평균 점수 떨어진다고 운동선수는 시험도 못 치게 하는 세상이니까요. 행여나 싶어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뒤졌습니다. 지난해 12월 22일 낸 “부..

지역성 공공성 고려 없는 이명박 언론정책

뉴스를 보니 국회에서 또 미디어 법안 전쟁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한나라당은 조만간 미디어 관련 법안을 다시 국회에서 처리하겠다 합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내일 소속 국회의원 비상 대기에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물론, 제가 소속된 언론노조는 다시 파업에 들어갈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썼던 이 글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생각도 듭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경남지회 기관지 창간호에 싣겠다는 원고 청탁이 들어온 시점입니다. 이달 초 "시간도 오래 지났고 상황도 바뀌었으니 좀 빼면 어떻겠느냐?"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겉으로만 바뀌었고 알맹이는 그대로 아니냐? 미디어 관련 법안 개정/제정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대로 가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

삼국지보다는 리얼한 적벽대전 2

1.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빨랐습니다. 원본으로 삼은 삼국지연의를 보면 적벽대전을 두고 갖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여기서는 거의 다 생략했습니다. 허무맹랑은 줄이고 리얼리티와 긴장감은 살렸습니다. 삼국지연의에는 방통이 조조 배를 묶어 두려고 연환계를 쓰는 장면도 나오고, 주유가 제갈량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하는 상황도 나옵니다. 영화에 나온 장간도 두 번이나 주유에게 속으며 제갈량이 마지막에 동남풍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주유가 위나라 수군 장수 채모와 장윤을 처치하는 것과, 제갈량이 조조 군사를 속여 화살을 쏘게끔 해서 화살을 장만하는 장면만 살립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것들이 제각각 떨어져 놉니다만,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

잔소리 제대로 하자는 별난 책

보통 책들은 ‘잔소리’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제대로 잔소리를 하라고 합니다. 잔소리를 잘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잔소리를 자녀 교육에 필요한 수단으로 긍정하는 셈이지요. 제목도 입니다요. 과연 잔소리가 무엇일까요? 사전에서는 ‘쓸데없이 늘어놓는 자질구레한 말’ 또는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는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듣기 싫다거나 쓸데없다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게다가, 꾸짖음이나 참견은 교육의 구성 요소이기도 합니다. 잔소리는 이렇습니다. 부모나 선생은 날마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에게는 가장 싫은(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것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꾸짖기나 참견하기를 좀 잘해..

술자리 안주감 넘치는 '부동산 계급사회'

아래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이사인 이장규 님이 써서 에 기고한 글이다. 그가 최근에 읽은 책 중 독자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블로그 개설, 운영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은 블로그가 없는 관계로 여기에 실어 알라딘에 링크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되길 바라는 이장규 님의 뜻이기도 하다. (김주완 주) 우리나라 부동산 100대 부자는 누구일까? 한국의 현실을 분석한 사회과학 책, 그것도 각종 통계숫자로 가득한 책이라면 극소수 관심있는 사람들만 보는 딱딱한 책으로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숫자로 가득찬 사회과학 책임에도 '부동산계급사회'는 매우 재미있다. 학술적인 주제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문제인 부동산 폭등 및 이와 관련된 사회..

‘워낭소리’에 들어 있는 여성 차별

그저께 아들이랑 딸이랑 함께 ‘워낭 소리’를 봤습니다. 보고 나서 저는 아이들한테 싫은 소리를 좀 들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여태까지는 아버지가 가자 해서 가 본 영화가 대체로 좋았는데) 아빠한테 신뢰가 무너졌어요.”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재미있게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보는 내내 불편했고, 고3 졸업한 아들과 중3 올라가는 딸은 이런 게 무슨 영화야,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보고 난 제 소감은 이렇습니다. “‘워낭소리’는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군.” 1. 40대와 50대의 고향 떠난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① 고향을 떠난 40대와 50대(어쩌면 30대 후반-그러니까 74년생까지도)의 대책 없는 향수를 겨냥한 영화다.(농담삼아 말하자면, 딱 이명박 수준이다...

졸업식 노래의 국가주의와 연고주의

1. 며칠 전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예식장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들어오고 나서 신부가 들어왔습니다. 신랑이 먼저 들어와 있다가 신부를 맞이합니다. 친정아버지에게서 신부를 건네받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만, 까먹고 있다가 문득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여자에게 주어지는(또는 주어졌던) 삼종지도(三從之道) 말입니다. 삼종지도는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입니다. 어려서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남편이 죽고 나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도리이지요. 결혼식에서, 신부가, 친정아버지의 손에서 신랑의 손으로 넘겨지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삼종지도를 떠올리고 여자의 피동적인 처지를 한탄하곤 했습니다. 그래 이런 틀을 깨뜨..

일제 침략은 나쁘고 베트남 침공은 좋은가

2006년 5월 ‘재일 조선인’ 서경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사회학부 김재현 교수 소개로 만나 인터뷰 기사를 썼었지요.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눴는데 만나서 뿌듯하다는 느낌과 함께,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꾸물꾸물 기어 올라왔습니다. 거북했습지요. 그리고, 그 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이는 대한민국 지식 풍토에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개념을 들여놓은 여럿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명입니다. 디아스포라. 모르시는가요? 우리말로 옮기면요 ‘난민’쯤이 되겠습니다. 대문자 디아스포라는 ‘유대 난민’이라는 좁은 뜻이지만 소문자로 시작하면서 ‘난민 일반’으로 뜻이 넓어졌다 합니다. ‘뿌리 뽑힌 이’지요. 그러므로 재일 조선인 서경식도 난민이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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