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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촛불 탄압' 원흉들을 기억해둬야 할 이유

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주체의 관점이 진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에는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한홍구는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개입하기"를 기본 취지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감은 죄다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을 동떨어진 개별 사건이 아니게 만듭니다. 역사 맥락 속에 어떤 특정 사건을 자리잡게 만들어 준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게도 해 준답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한홍구는 이런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문이 왜 없어졌을까요? 경찰이 개과천선하고 인권의식이 높아져서 그랬나요?" 그러고 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왜 문제냐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 시기에는 특히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부자들이었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 중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많았답니다. 인문학자이자 서평가인 강유원 박사(철학)는 영화 을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상대마을, 중대마을, 하대마을이 있는데, 상대나 중대는 부자동네여서 일제 때 좌익들이 많아 해방사상을 많이 갖고 들어왔으나, 상대와 중대에 품팔아먹고 살던 하대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못사는데도 불구하고 수구우익이 되었다는 겁니다. 강유원 박사는 이에 대해 "(진정한) 앎이라는 것은 세상을 어떻게 달리 보게 만들고, 거기서 출발해서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까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배움이란 그저 돈이 ..

조선 양반계급 사회로 되돌아간 대한민국

인문학자이자 서평가인 강유원 박사(철학)는 우리나라가 다시 조선시대 양반계급사회로 되돌아가버렸다고 개탄합니다. 이미 우리사회는 돈 있는 자가 많이 배우게 되고, 많이 배운 자가 돈 있게 되고 권세를 누리는 연쇄고리가 확립됐다는 거죠. 조선시대의 경우 과거제도를 통해서 관료를 많들고, 이 관료에게 녹봉이라고 해서 땅을 주고 행세할 수 있도록 했는데, 과거시험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은 지방의 지주층, 양반층이었다는 거죠. 주경야독이란 말은 조선시대에도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이후 너도 나도 돈을 주고 성을 사서 양반계급이 늘어나면서 신분제가 해체되긴 했지만,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들어와서 다시 돈 많은 사람들이 학벌과 권세를 세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로스쿨 등록금이 1억 원인 세상에서 더 이상 ..

옛날 선비들은 어떤 아내를 바랐을까

남명학 연구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가 있습니다. 2009년 봄호를 보면 78쪽에 ‘조선 선비가 바라는 아내의 상’이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남자인 저조차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유한준이라는 선비가 쓴, ‘아내의 방에 붙인 글(孺人室記)’입니다. 유한준(1732~1811)은 조선 후기 이름난 문인인데, 여기 이 글은 1760년 스물아홉 때 적어 벽에 붙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낮에는 음식을 준비하여 한준을 먹이고 밤에는 길쌈을 하여 한준에게 의복을 입힌다. 한준은 음식과 의복이면 그뿐이니, 그밖에 다른 것이 있고 없다 하여 근심하는 일은 알지 못한다. 그 남편으로 하여금 먹고 입는 일로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으니, 이는 부인의 뛰어난 행실이다. 에서 말하지 않았소? 부부가 화목하..

'엄마 이데올로기'는 엄마만 짓누를까

특정 문학 단체나 특정 문인을 욕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엄마 이데올로기’, 우리 엄마한테도 강하게 작용하는 ‘엄마 이데올로기’를 한 번 확인해 보려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끌어와 쓰는 문학 작품들도, 무슨 비판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일절 없습니다. 사실은 너나없이 우리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경남의 한 문학단체가 ‘시와 어머니’를 주제로 시화전을 열었습니다. 여기 출품된 시편을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 작품들을 읽으면서 공감이 됐다면, 어느 누구도 ‘엄마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어머님들은 왜 살코기는 자식들 먹이고 뼈다귀와 머리만 잡수셨을까? 당신은 먹고 싶어..

양성평등 교육하는 학교, 교훈은 구닥다리

창원 한 여학교에서 보낸 양성평등 교육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입니다. 얼핏 훑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내용이 아주 그럴 듯합니다.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강요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올바른 성 역할 확립’이라는 목적도 좋습니다. “양성평등 교육은 학교 현장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함께 실천돼야 할 중요한 교육 내용”이라는 취지는 아름답기조차 합니다. “특정한 성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정관념, 차별적 태도를 가지지 않고 생물학적 차이를 사회문화적 차이로 직결시키지 않으며 남녀 모두에게 잠재돼 있는 특성을 충분히 발휘해 자신의 자유 의지로 삶을 계획하고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교육”이라는 정의(定義)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가정통신문은 이어서 어떤 것이 양성평등을 가로막는 생각들인지 보기를 들..

정부 3만4천 일자리 창출, 내막 알고보니…

2월 25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자치단체와 지방공기업 일자리 창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지자체 일자리 나누기 바이러스 확산 중”이라고 제목이 달렸고 모두 3만4000개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했습니다. 추진 배경으로는 1월 15일 제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금을 안정시켜 실질 고용을 늘리는 잡 셰어링(job sharing)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한 사실과, 21일 민생안정 차관회의에서 “잡 셰어링 촉진 방안을 논의한 것”을 꼽았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 만에 3만4000개 일자리를 창출한 셈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100명짜리 중소기업 340개를 만든 셈이니까 말입니다. 행정안전부는 그러면서 ‘수범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추진 사례 발굴·확산 △우수 사례..

이러다 김연아'표' 속옷까지 나오겠다

16일,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15일 오후 있었던 일이랍니다. ‘뉴시스’에서는 제목을 “김연아 음반시장도 ‘접수’”라고 뽑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겠는데요, 저는 김연아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19·고려대)가 파이브 플래티넘 디스크상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자신의 경기 배경음악 등을 담은 앨범 ‘페어리 온 더 아이스’를 3개월 만에 5만장 이상 팔아치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앨범을 내놓은 유니버설뮤직 코리아는 16일 “유니버설뮤직 코리아의 양범준 대표이사가 시상했다. 플래티넘 디스크 다섯 장이 담긴 액자를 비롯해 유니버설뮤직 새 앨범 등도 선물했다. 김연아가 배경 음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앞으로 2년간 유니버설뮤직..

저소득층이 부자정당 후보를 찍는 이유

지난 8일 인문학자이자 서평가인 강유원 박사(철학)가 마산에 왔을 때 새롭게 알게 된 개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LIV : Low information Voter'이라는 개념이었는데요. 우리말로 옮기자면 '정보수준이 낮은 유권자'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참 무식합니다. 조지 레이코프를 인용해 프레임이 어떠니, 인지언어학이 어쩌니 하는 글을 쓰면서도 이런 영어단어가 있는 줄을 몰랐으니 말입니다. (관련 글 : 진보는 어떻게 자기 발등을 찍는가, 진보주의자가 읽어야 할 두권의 책) 어쨌든 그날 강유원 박사가 이 개념을 들어 '저소득층이 오히려 1% 부자 정당의 부자 후보를 찍은 이유'를 설명해주셨는데, 참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좋은 정보는 공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날 강유원 박사가 이야..

역사적 진실규명에도 마감시간이 있나

심리학 용어 중에 '의도적 망각'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아픈 기억'을 일부러 잊어버리려는 인간의 본능을 뜻한다. 내가 만난 그런 사람들 중에는 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나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이 많았다. 1997년에 만났던 '훈' 할머니도 그랬다. 열 여섯 나이에 왜놈 군대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는 온갖 치욕과 고통 끝에 해방을 맞았으나 귀국하지 못하고 캄보디아 원주민들 사이에 숨어 연명해왔다. 해방 52년만에 한국인 사업가를 만났으나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만 기억할뿐 한국말은 물론 아버지·어머니와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97년 여름 할머니의 혈육찾기 취재에 나선 기자들은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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