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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69

송미영 이야기(4)이모의 폭력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명백한 아동폭력이며 학대였다. 미영 씨가 초등학교 1~2학년 때였으니 벌써 30년이 넘은 이야기다. '앵벌이'로 전국을 떠돌던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미영 씨 남매를 돌보던 이모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막내 애영 씨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미영 씨와 두 남동생은 이모와 함께 마산 내서읍 중리의 경노당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었다. 아홉 살밖에 안 된 미영이가 경노당 청소와 빨래를 도맡은 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이모에게 매질을 당했다. "경노당에 창문이 많았어요. 그 많은 창문을 다 걸어잠그게 했어요. 그리고 나서 동생 둘을 밖에 내보낸 후, 빨래나 청소를 깨끗이 하지 않았다며 허리띠를 손에 감고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때렸어요. 동생들은 문밖에서 '우리 누야 살리주이소'라며 ..

송미영 이야기(3)팔도 없고 눈도 없이 살아남는 법

미영 씨가 혹독한 시집살이와 노동으로 거의 탈진할 때쯤이었다. 불쑥 친정 아버지가 구미의 시댁까지 찾아왔다. 어젯밤 꿈에 딸이 나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딸의 앙상한 모습을 확인한 아버지는 사돈 양반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딸 가진 죄인이 딸 데리러 왔습니다." 그 길로 딸의 등을 떠밀어 마산으로 데려오고 말았다. 애초 자신의 아버지를 모시는데 부정적이었던 남편 도연 씨도 곧 뒤따라왔다. 아버지 송병수(65) 씨는 5살 때, 아니 정확하게는 만 4세 때 폭발물 사고로 양 손목과 두 눈을 잃은 중증 장애인이다. 송병수 씨를 만나러 가는 동안 뭔가 음울하고 어두운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는 호탕하고 밝았다.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게다..

송미영 이야기(2)떠돌이 막노동꾼을 내 남자로 선택하다

미영 씨의 남편 김도연(43) 씨는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한 조선업체의 하청업체, 거기서도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돈내기(도급제)'로 일한다. 그래도 나름 '기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조선업계의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영 씨의 피같은 돈 5000만 원을 떼먹고 달아난 사기꾼 덕분(?)이었다. "내가 용접을 해봤잖아요. 용접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더라고요. 대신 설계도면을 보는 게 진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미영 씨가 남편을 기술자로 키워야 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쯤 사기꾼이 접근해왔다. 조선기술을 배우면 남편을 호주의 조선소에 취직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그 때 남편 도연 씨는 남의 식당에서 음식 배달을 하고 있었다. 사기꾼은 도연 씨를 진해의 조선 협력업체에..

송미영 이야기(1)의리 때문에 포기한 정규직의 꿈

이 글은 지난 5월부터 6월 13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경남도민일보에 '작지만 강한 여자 송미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이다.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되는 동안 과분한 관심과 격려, 그리고 질정을 받았다. 블로그 독자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이곳을 통해 연재한다. 송미영(42) 씨. 1969년생 닭띠. 키 155cm에 48kg의 가녀린 체구이지만, 그녀의 말과 표정, 눈빛에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봐버린 사람만의 내공과 포스가 느껴졌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가 '까르르' 소녀처럼 웃을 때에도 그 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을 고통스러운 자신의 과거마저 그녀에겐 아름다운 추억이 된 듯했다. 지금 그녀는 창원시 성산구 내동에서 '호호국수'라는 19평의 식당을 소유하고 있..

스물 여섯 혜영씨, 뒷이야기와 자료

나도 이렇게 큰 반응이 있을 줄 몰랐다. 스물 여섯 혜영씨 이야기 말이다.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해버리기엔 그녀의 짧은 삶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름대로 내러티브 방식으로 써보기로 했다. ※이전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하) ※이전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중) ※이전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상) ※관련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의 짦은 삶, 긴 죽음 결과는 놀라웠다. 4건의 글에 대한 조회수는 80만 회까지 올라갔다. 170여 개의 댓글 중에는 혜영씨와 동창이었던 분이 올린 글도 있었고, 후배도 있었다. 또 비슷한 처지에서 결국 패소했거나 지금도 소송 중인 분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도 놀랐다. 중학교 동창이라는 분은 "내가 기억하는 혜영이는 활발하고 적극..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하)

이 글은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 그래서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리다 허망하게 숨져야 했던 한 여성의 짧은 삶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도 혜영씨와 이별하려 한다. ◇요절 시인 키츠를 좋아했던 그녀 = 여고 졸업과 함께 아버지를 잃고 이미 합격한 대학 진학마저 포기했던 혜영씨. 그 후 4년은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여성노동자로, 다시 4년은 아르바이트 비정규 노동자 겸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대학생이었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을 부양하는 가장까지, 1인 3역을 마다하지 않았던 혜영씨의 짧은 삶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좋아했던 영국의 요절 시인 키츠(1795~1821)와 닮아 있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도 그랬고, 아버..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중)

짧지만 무거웠던 혜영씨의 삶 "청춘의 무게가 이쯤은 되어야지" 이 글은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 그래서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리다 허망하게 숨져야 했던 한 여성의 짧은 삶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다. 혜영씨는 여고 3학년이던 1996년 아버지를 잃었다. 수험생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그녀가 회사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회를 경험해본 뒤 대학에 진학하였다는 것은 약간의 독특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을 잃는다는 것은 정신적 지주를 상실케 함은 물론 상처와 어려움을 가족에게 남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정신적으로도 꽤 성숙해 있었기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일을 하리라 결심하게 되었습..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상)

이 글은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 그래서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리다 허망하게 숨져야 했던 한 여성의 짧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하혜영. 사고 당시 스물 여섯 살. 그녀는 지난 2004년 10월 30일 새벽 0시 8분, 자신이 몰던 비스토 승용차가 창원시 천선동 대우주유소 앞 인도의 전신주를 들이받은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이 사고의 업무 관련성을 가리는 데 4년의 긴 세월을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를 매일 밤늦게까지 부려먹었던 회사는 부도로 사라져 버렸고, 이미 신경통으로 노동력을 잃은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후두암이라는 새로운 병을 얻었다. 정신적·물질적 지주와 같았던 누나를 잃은 남동생은 방황 끝에 몸담고 ..

스물 여섯 혜영씨의 짧은 삶, 긴 죽음

[단독]심야 퇴근길 사고, 혜영씨 '업무상 재해' 인정 직장인이 자가용 승용차로 출퇴근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산재보험에 의한 유족 보상과 장의비를 받을 수 있을까? 이 경우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일반 직장인은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산재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게 지금까지의 판례였다. 즉, 공무원이 아닌 일반 직장인은 회사에서 제공한 통근버스 사고만 인정되고, 자가용이나 대중교통 사고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밤늦은 퇴근길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에 의해 유족 보상 및 장의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예외적인 판결이 나왔다. 최근 부산고법 제2행정부는 26세의 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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