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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69

서세원 아버지는 서세원을 이렇게 키웠다

기록은 무서운 것이다. 방송인 서정희와 32년 결혼생활 중 가정폭력을 일삼아온 것으로 알려진 개그맨 서세원의 기록이다. 그가 직접 쓴 아버지에 대한 글인데, 1999년 뿌리깊은나무에서 출간한 라는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에서 서세원은 아버지가 늘 "사내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겨"라고 말씀했다며 자신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기록에 의하면 서세원은 성장기에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서세원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날아가는 새를 잡고 싶다고 하니까 총포상에 데리고 가서 공기총을 사주었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순종적이었고, 생전 말대꾸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심지어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

김용택 선생의 별명이 '흰머리 소년'인 까닭

김용택 선생의 별명은 ‘흰머리 소년’이다. 머리카락이 일찍 세기도 했지만, 때 묻지 않은 소년의 감성을 나이 들어서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힌 별명이다. 워낙 오래되어 남들은 이미 포기했거나 당연시해버린 관행도 흰머리 소년에겐 여전히 그냥 놔둘 수 없는 문제다. 그럴 땐 ‘누가 흰머리 소년 아니랄까봐’ 하는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0년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에 발령받았는데, 학생과 교사의 급식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같은 급식비를 내면서도 학생이 먹는 반찬은 서너 가지인데, 교사는 예닐곱 가지나 되었다. 게다가 식당에 칸막이를 치고 따로 먹고 있었다. 동료 교사에게 물어보니 ‘처음부터 그랬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단다. 흰머리 소년..

대출해주고 못 받아도 된다는 은행 지점장

박종권. 한국나이로 올해 64세라고 하니 1952년생 용띠일 것이다. 근 10년 전 54세에 기업은행 마산지점장 자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나왔다. 그 후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운동을 열심히 해왔고, 얼마 전까지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경남블로그공동체(경남블공)가 초청해 '은퇴 후 재미있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6월 25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다. 1시간정도 강당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통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간담회를 계속했다. 박종권 씨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는 아주 솔직하고 소탈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은행 지점장으로서 대출에 대한 그의 소신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사업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

녹색평론에 실린 채현국 선생 책 두 권

《녹색평론》 5-6월호에 《풍운아 채현국》과 《쓴맛이 사는 맛》에 대한 서평이 실렸습니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님이 쓰셨네요. 서평은 "우리사회에 어른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꼰대'와 '꽃대'로 어른을 나눕니다. "소위 꼰대문화의 본질은 개인의 진실을 강변하고 강요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런 견고한 마음의 습관에서 후속 세대와의 대화와 소통이 과연 가능할까." 그러면서 "채현국 선생의 삶과 철학이야말로 '꽃대'라는 말에 값하는 우리시대의 어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풍운아 채현국》과 《쓴맛이 사는 맛》에서 선생의 파격적이고 감동적인 생생한 육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파격이란 격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궤도를 이탈한다..

채현국 선생이 받은 김용근 민족교육상은?

채현국(81) 효암학원 이사장이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5월 16일 오전 11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관에서 시상식이 있었는데요. 저도 다녀왔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노무현 정부 인사보좌관-인사수석이었던 정찬용 씨가 이 상의 주체인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더군요. 정찬용 수석은 노무현 정부 첫 인사보좌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제가 담양군 자택에 찾아가 첫 인터뷰를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 후 정말 오랫만에 만나뵈었습니다. 한겨레 신문 부사장을 하셨던 언론인 임재경 선생도 여기서 다시 뵈었고요. 전교조 위원장을 하셨던 정해숙 선생,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용화 상임대표도 만났습니다. 또 5.18광주항쟁 당시 가두방송의 주인공 중 한 명..

5.18광주 가두방송 주인공 차명숙 만나봤더니

지난 5월 16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관에서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정찬용)가 주최한 '김용근 민족교육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채현국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이 수상자였는데요. 이 자리에서 유난히 밝고 활달해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았습니다. 시상식을 마무리할 때쯤 채현국 선생이 참석자들을 소개했는데요, 그때 이 아주머니가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때 시민들을 상대로 가두방송을 했던 여성들 중 한 명인 차명숙(1960년생)이란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명숙 씨는 항쟁 이후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른 후, 광주에선 살 수 없어 서울로 갔다가 카톨릭센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남편의 고향인 안동에서 홍어 전문식당 '행복한 집'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방동규 토크드라마 역사적 오류 바로잡습니다

지난 11일(월) KBS-TV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전설의 주먹'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 '조선 3대 구라'로 불리는 방동규(방배추) 선생을 방송했더군요. '[19회]전설의 방패주먹, 배추가 돌아왔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프로그램을 오늘에야 다시보기로 봤습니다.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해 실종된 형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가슴 아팠습니다. 또 익히 는 책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는 부분에서는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있더군요. 이 또한 기록이므로 이미 방송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바로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씁니다. 드라마에서 방동규 선생이 민주언론운동협의..

대학입시에 대한 박종훈 교육감의 소신

대학입시 제도 개선은 한국 교육계의 해묵은 논란거리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물론 대학입시 제도는 교육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 교육감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훈 교육감은 이에 대해 어떤 소신이나 해결방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이에 대해 박 교육감은 수학능력시험 자체를 없애버리고 내신성적 100%를 성적자료로 삼으면 된다고 말했다. 아래는 지난 4월 30일 경남블로그공동체와 박종훈 교육감 간담회에서 나온 일문일답이다. 박종훈 "수능을 아예 폐지하고 내신 100%로 하면 된다" -임종금 : 연합고사 폐지하면 사교육비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박종훈 :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좀 줄어들 거..

박종훈 교육감 "홍준표와 강공으로 맞서지 않겠다"

경남블로그공동체(경남블공)가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을 만났다. 지난 4월 30일이었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일반 언론에는 나오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번 무상급식 지원 중단 이슈가 정치적으로는 과연 박종훈 교육감에게 덕이 될까, 실이 될까를 놓고 가볍게 나눈 대화 내용이다. 정치적으로는 손해보는 것도 아니지만 -교육감 님이 보시기에 홍준표 지사가 왜 저러는 것 같습니까?"급식 지원 중단 선언 말씀이죠?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도 그 점에는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정치적으로 자기가 이슈를 주도함으로써 잊혀지지 않으려는, 그럼으로..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삶을 소개한 인쇄물 보셨나요?

엊그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모친상 조문을 갔다가 특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조문보'라는 것이었는데요. 고인 박봉순(1922~2015) 여사가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조문객들이 알 수 있도록 소개한 A4 한 장짜리 인쇄물이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장례문화는 '고인이 배제된' 행사로 전락해버린 측면이 많죠. 많은 조문객이 모이긴 하지만, 정작 돌아가신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오로지 남아 있는 상주와 관계에만 관심이 있죠. 그래서 이날 빈소에서 배포된 이 조문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A4를 두 번 접은 표지격 페이지에는 이렇게 고인의 영정이 있습니다. 펼치면 고인의 약전(略傳)이 이렇게 나옵니다. 어디에서 몇째 딸로 태어나 몇 살에 남편을 만나 몇남 몇녀를 두었고, 남편을 마흔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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