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우리가 사람 이야기에 주목하는 까닭 얼마 전 경남도민일보 남석형 기자가 '낙동강 어민의 삶'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3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되었는데요. 낙동강 어민 김무생(69) 씨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이야기 기사'였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던 1977년 결혼과 함께 시작한 낙동강 어민의 40년 삶을 통해 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담담히 풀어쓴 이야기였습니다.저는 '녹조로 뒤덮인 낙동강', '수질 오염 심각' 등의 이른바 스트레이트 기사보다는 이 기사가 훨씬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정부 관계자나 어용학자들이 터무니없는 말로 어민들을 속이고 회유해놓고선 나중에 '나 몰라라' 하는 대목에선 분노가 치솟기도 했습니다.그렇습니다. 저는 무생물이 아니라 생물, 구체적인 사람을 주어로 하여 쓰는 기사가 신문지.. 더보기 진주 김장하 선생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계속 추가될 예정입니다. 김장하 선생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이나 추억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댓글로 올려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이인안 어릴 때 저희 동네에서 한약방을 했어요 당시 사천군 용현면 선진리 흔히들 '석거리'라고 불렀던 곳. 언제부터 거기서 한약방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진주로 한약방을 옮긴건 제가 초등 4~5학년? 암튼 어릴 때부터 워낙 훌륭한 분이라는 얘길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어 우리는 거의 세뇌수준^^김장하 선생님이 장학사업을 하기 전이니 그 전 한약방을 운영하면서부터 그 인품과 실력이 모든 분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넓은 마당이 있던 석거리 남성당 한약방은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마당이 넓고(물론 초등학생의 눈높이) 항상 먹을 것이 많아 틈만 나면 친구들과 그 집에서 .. 더보기 초선 국회의원 김두관에게 지금 필요한 것 재작년쯤이었을 게다. 진주에서 몇 번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는 한 정치인을 만났다. 대뜸 그가 내게 물었다. “김두관 (전) 도지사가 김 국장 말을 가장 잘 듣는다고 하던데, 왜 중도사퇴하고 나갈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느냐?” 순간 당황스러웠다. 김 전 지사와 동향이고, 내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오래된 사이긴 하다. 하지만 평소 정치적 진로나 거취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는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인으로, 내가 기자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당연히 ‘불가원 불가근( 不可遠 不可近)’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니 도지사직 중도사퇴 때도 전혀 의논한 적 없다. 그래서 잠시 멈칫한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기자입니다. 기자가 정치인에게 글로 말하지 않고, 입으로 조언이나 .. 더보기 아주 신사적인 찜질방 도둑님 보시길... 모처럼 오랜 지인들을 만나러 세종시에 왔다. 우리 일행은 모두 6명. 다들 저녁은 먹고 만난 터라 간단히 맥주를 한 잔 하고, 세종시에서 나름 시설이 좋다는 찜질방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담소를 나눈 후, 시간을 보니 이미 밤 열두 시.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자려다 보니 내 손목에 탈의실 옷장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분실한 건가?' 생각해보니 탈의실에서 찜질복을 입고 열쇠를 거기 꽂아 둔 채 온 것 같았다. 탈의실로 갔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혹시 그 사이에 누군가 이걸 보고 내 지갑이나 가방을 훔쳐 갔다면 어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옷장을 열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지갑이 반쯤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꺼내서 점검한 결과 역시 도둑이 손을 댄 건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더보기 서세원 아버지는 서세원을 이렇게 키웠다 기록은 무서운 것이다. 방송인 서정희와 32년 결혼생활 중 가정폭력을 일삼아온 것으로 알려진 개그맨 서세원의 기록이다. 그가 직접 쓴 아버지에 대한 글인데, 1999년 뿌리깊은나무에서 출간한 라는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에서 서세원은 아버지가 늘 "사내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겨"라고 말씀했다며 자신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기록에 의하면 서세원은 성장기에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서세원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날아가는 새를 잡고 싶다고 하니까 총포상에 데리고 가서 공기총을 사주었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순종적이었고, 생전 말대꾸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심지어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 더보기 김용택 선생의 별명이 '흰머리 소년'인 까닭 김용택 선생의 별명은 ‘흰머리 소년’이다. 머리카락이 일찍 세기도 했지만, 때 묻지 않은 소년의 감성을 나이 들어서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힌 별명이다. 워낙 오래되어 남들은 이미 포기했거나 당연시해버린 관행도 흰머리 소년에겐 여전히 그냥 놔둘 수 없는 문제다. 그럴 땐 ‘누가 흰머리 소년 아니랄까봐’ 하는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0년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에 발령받았는데, 학생과 교사의 급식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같은 급식비를 내면서도 학생이 먹는 반찬은 서너 가지인데, 교사는 예닐곱 가지나 되었다. 게다가 식당에 칸막이를 치고 따로 먹고 있었다. 동료 교사에게 물어보니 ‘처음부터 그랬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단다. 흰머리 소년.. 더보기 대출해주고 못 받아도 된다는 은행 지점장 박종권. 한국나이로 올해 64세라고 하니 1952년생 용띠일 것이다. 근 10년 전 54세에 기업은행 마산지점장 자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나왔다. 그 후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운동을 열심히 해왔고, 얼마 전까지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경남블로그공동체(경남블공)가 초청해 '은퇴 후 재미있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6월 25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다. 1시간정도 강당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통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간담회를 계속했다. 박종권 씨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는 아주 솔직하고 소탈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은행 지점장으로서 대출에 대한 그의 소신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사업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 더보기 녹색평론에 실린 채현국 선생 책 두 권 《녹색평론》 5-6월호에 《풍운아 채현국》과 《쓴맛이 사는 맛》에 대한 서평이 실렸습니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님이 쓰셨네요. 서평은 "우리사회에 어른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꼰대'와 '꽃대'로 어른을 나눕니다. "소위 꼰대문화의 본질은 개인의 진실을 강변하고 강요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런 견고한 마음의 습관에서 후속 세대와의 대화와 소통이 과연 가능할까." 그러면서 "채현국 선생의 삶과 철학이야말로 '꽃대'라는 말에 값하는 우리시대의 어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풍운아 채현국》과 《쓴맛이 사는 맛》에서 선생의 파격적이고 감동적인 생생한 육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파격이란 격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궤도를 이탈한다..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