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무거웠던 혜영씨의 삶 "청춘의 무게가 이쯤은 되어야지"

이 글은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 그래서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리다 허망하게 숨져야 했던 한 여성의 짧은 삶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다.


혜영씨는 여고 3학년이던 1996년 아버지를 잃었다. 수험생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그녀가 회사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회를 경험해본 뒤 대학에 진학하였다는 것은 약간의 독특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을 잃는다는 것은 정신적 지주를 상실케 함은 물론 상처와 어려움을 가족에게 남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정신적으로도 꽤 성숙해 있었기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일을 하리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을 잃은 충격은 컸다. 아버지가 남겨준 것이라곤 18평 시영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어머니가 간간이 식당에 허드렛일을 나갔지만 신경통으로 일을 오래 할 수 없었고, 고등학생인 남동생은 너무 어렸다.

그녀는 대학 등록금조차 내주지 못한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 역시 "우리 팔자가 이러니 우짜겠노"하며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대학 캠퍼스 대신 공장으로 = 결국 대학 대신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한 전자제품 생산공장에 들어갔다. 그 때부터 혜영씨는 스무 살 가장이 됐다. 잔업에다 특근·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남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댔다. 그렇게 4년이 지나갔다.

새천년을 몇 개월 앞둔 어느날, 혜영씨는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 오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공장장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네요.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대학에 진학하는 걸 허락해달라고…. 그런데 그 공장장이 '우리 회사는 대학 나온 인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필요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라는 겁니다. 그 때문에 공장을 그만뒀어요."

그 후 어느날 아침 어머니가 눈을 떴는데, 딸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날이 수능 시험일이었던 겁니다. 학비를 어떻게 할 지 걱정했는데, 4년 내내 특대장학금을 받았어요. 은행에 등록금을 내러 가서 학생회비 8000원 만 내면 은행 직원들이 다들 부러워했죠."

실제 혜영씨의 전 학년 성적표는 딱 한 과목 B플러스를 받은 걸 빼고는 올A였다. 평점은 4.362.

혜영씨의 성적증명서.

◇힘들었지만 신났던 대학 시절 = 하지만 장학금을 받아도 가장의 역할은 벗어날 순 없었다.

백화점 판매사원에서부터 화장품회사의 사장실 비서, 대기업의 문서번역 및 통역, 호프집이나 레스토랑 서빙에 이르기까지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남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에 지원해 직업군인이 됐다.

"제가 군 생활하던 시절, 새벽 두 시나 세 시쯤 되어서 오면 그 때까지 누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봤어요. 낮에는 학교수업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그렇게 공부를 했죠."

이렇게 힘들었던 대학시절이었지만, 혜영씨에게는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자기소개서에서 그녀는 '하늘을 날던 대학시절'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렇게 썼다.

"영어영문학부의 학생이 되어서 자유로운 학문의 분위기에 젖어 공부를 하는 짜릿함을 맛보았습니다. 캠퍼스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키츠의 시를 읽었고, 세익스피어의 희극 <한 여름 밤의 꿈>에서 퀸스역을 멋지게 해내었습니다. (…) 저의 무거운 책가방에 오히려 속상해하는 동기들에게 '청춘의 무게가 이쯤은 되어야지!'라고 말하면서 웃어주었습니다. (…)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느냐는 말을 모든 사람들에게서 들을 정도로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가는 아르바이트도 대충 하지 않았다. 혜영씨를 고용했던 호프집 주인은 "워낙 애살있게 일을 하는 바람에 손님들이 혜영이를 사장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선 혜영씨가 판매한 핸드백의 매출이 급증하기도 했다고 한다.

혜영씨가 남긴 자기소개서에는 이런 마음가짐이 잘 나타나 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최소한 그 회사 직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억지로 일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광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저 자신이 활기에 넘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혜영씨를 잃고 후두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는 4년 전 혜영씨가 받은 졸업우수상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마침내 들어간 회사에서 커피 심부름만 = 이런 대학시절을 거쳐 2004년 2월 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생 대표로 총장상도 받았다. 그러나 우수생에게도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그해 4월 창원의 한 중견제조업체에 취업했으나 비정규 계약직이었다. 혜영씨의 일은 커피를 나르거나 사무보조가 고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마침 창원의 유통회사 파비뉴21이 개점을 준비 중이었고, 홍보와 기획 파트에 지원했다. 기획 파트가 아닌 총무직으로 채용됐으나 정규직이라는데 신이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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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 뒷이야기와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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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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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민호영 2008.11.18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계신 하늘 나라에는
    모순과 차별과 가난이 없기를 빌어 봅니다.ㅠㅠ

    다시 한 번 김주완 기자님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낍니다.

  3. 투루판의 우물 2008.11.18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너무 허망하네요...
    사회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4. hokusai 2008.11.18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저토록 유능하고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이였는데 왜 우리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일까요?

    정말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5. 임황태 2008.11.18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움을 금할길이 없네요.

  6. 최철기 2008.11.19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그리워 할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7. 현희 2008.11.19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이 아름다운 분이셨네요.
    저를 돌아보게됩니다.

  8. 김 도현 2008.11.19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소서

  9. 현석 2008.11.19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인생을 보고 있자니.. 제가 너무 부끄러워지는군요..
    하늘 나라에서 편하게 쉬세요 ^^

  10. su4user 2008.11.19 0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IT업체에서 3년차로 근무하는 30세 남자 입니다.
    IT업체의 특성상 철야나 특근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저희 회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월요일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서 일이 끝난 시간은 다음날 오전 6시. 그러나 회사는 출근을 종용합니다.
    충혈된 눈으로 5일간 밤새며 보낸 일주일. 그리고 금요일 새벽 3시가 되서 퇴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 3년이 지났네요..

    물론 저보다 못한 환경에 있으신 분들이 들으실 때는 배부른 소리겠지만..
    가끔 새벽 운전길에 정신이 2~3초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상황을 겪으면.. 이보다 더한 상황은 없지 싶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하시는 팀장님.. 오전 6시30분에 집을 나서 밤10시 이전에 퇴근해본적이 10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인 팀장님.. 우스갯소리로 아이 자는 뒷통수만 기억한다는 팀장님..
    내겐 당신이 너무나 존경스럽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밉고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지금 당신이 감수해야할 고통은.. 어쩌면 혹시나 당신이 어찌되었을때, 당신 가족들이 겪어야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동기부여로 가득차 위험을 무릎쓰고 세상을 헤쳐나갈때, 많은 직원 가족들도 당신과 같은 위험을 함께 지고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합니다..

  11. 아만 2008.11.19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전 회사에서 지방간, 간경화까지 심하게 갈뻔했고 심한 수전증, 이상할 정도의 비만, 탈모
    온갖 잔병을 겪었죠. -.-; 그나마 남자라서 견뎠지...지금은 그만두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 더럽지요. 아마 회사 사장이라는 놈들은 직원들 월급 많이 주면 딴 생각한다고 월급 안올려줄거고 저렇게 죽거나 다치거나 해도..자기 잘못이라며 프로가 자기 관리도 못하냐며 뭐라 할께 뻔합니다. 제가 회사 다닐 때 정미라는 애가 있었는데 아파서 회사에 못나왔는데..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걔가 체력이 안좋다고..그래서 직장생활 하겠냐고 모두 쑥덕거리더군요...
    진짜 ... 영화에서 말마따마...사람은 되지 못할 망정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어느세 뒤돌아 보면 우리 모두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2. 한밤의우수 2008.11.19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다보니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습니다.
    저 또한 은행에 근무하다 수많은 야근을 격었으며 출근하는 자가용에서 조금 긴 신호대에 차가 멈추면
    그냥 졸아 버리던 시간이 기억납니다. 2004년 10월 아름다웠던 청춘이 사고를 당하던 해 6월에 저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지금은 식당체인점과 일반식당의 개업/폐업 전문으로 부산에서 사업하고 있답니다.많은 지인들이 남들은 못들어가 안달인 회사를 왜 너는 나왔냐고...
    몇년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대답합니다.
    " 첫번째 이유는 내 자신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나약했고,
    두번째는 商高를 졸업하고 들어가 15년 넘게 젊음을 바쳐 일하였건만
    나는 성취감을 가질수 없었다. 혜영씨 만큼 역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일만큼은 회사내에서 늘 우수사원으로 칭찬을 받았었다.
    처음 입사한 은행이 수많은 정치권의 입김과 동료들의 안이한 근무로 서서히 무너지더
    니 결국 지금의 후발은행에 인수 당했고 새로운 은행에서 근무하는 환경은 실로
    양자로 남의 집에 들어온 분위기라 할까...
    서울의 세 손가락 내에 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서는 능력과 기량을 제대로 펼치기
    에는 한계를 느끼곤 했다. 이른바 세상의 학연 이라는 것이었다. 일단 그 대열에 속하
    면 그들은 철저히 단결한다. 자신의 영역을 뺏기지 않으려고...
    나는 학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살아온 지난날에 내 어릴적
    학창시절 추억의 시간과 그 시간을 같이 살았던 친구들...
    지금도 그들과 교류하며 늘 내 삶의 동행이 되고 있지요.
    이러한 학연이 삶의 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

    지금 새벽에 일어나 오늘 일과 스케줄 관리하다 뉴스를 검색하다 혜영씨 소식을 접하고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은듯 합니다.
    지금도 예전처럼 열심히 사업하고 정직하게 고객을 대하니 어느정도 성과도 올리고
    일의 성취감도 느끼며 열심히 청춘을 알참으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서는 평온함이 혜영씨에게 늘 곁에 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혜영씨는 경남대를 거쳐 마산/창원 일대에 거주하셨는데 몇일전 사업차 경남대앞 신마산에 다녀온 기억도 새삼 나고 내 인근에서의 일같아 더더욱 마음이 쓰라립니다.

  13. 라나코 2008.11.19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이 말이 참 공감이 가네요.

    정말 인생 열심히 살기 싫다 휴 허망한 삶인거 같아
    특히 사랑하는 가족 중에 한 분을 잃는다는 것,,,
    정말 너무도 힘들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몹쓸 경험인 것 같아

    특히 아빠를 잃는다는 건 위에 말씀대로 정신적인 지주를 잃는 것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된다는 거 너무도 공감하고
    조심스럽게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14. 화이팅 혜영씨 2008.11.19 0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그곳에선 좋은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부디 좋은 분 만나서 행복하게 사시고 또 꿈도 꾸시고
    이제는 남겨진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되는일만 기도해 주세요..

    꼭 좋은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15. 나쁜별이 2008.11.19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는 동안 행복했던 일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가슴아픈이야기인듯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6. 창원시민 2008.11.19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하신 혜영씨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즐거운 생활만 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나이가 어리지만 중소기업.. 사회생활 뼈져리게 느끼고 있네요

    더군다나 창원분이셔서 유독 눈길이 갑니다..

    혜영씨 사연으로 정말 많은걸 느낍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7. 푸른옷소매 2008.11.19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열정이 너무 맘 아프네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18. 선우도우 2008.11.1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 선우도우 2008.11.1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 선우도우 2008.11.1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1. 장영철 2009.03.23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착같이 쌓아놓은 내공은 어찌하고 그 먼길을 가셨는지...가슴시린 현실.너무나 쉽게 접해지는 모순들.이제 짐을 다 부려 놓으시고 영면 하시길.힘들어도 당신을 그렇게 의지하고 사랑하던 남겨진 혈육들은 또 힘을 내야 합니다.언제쯤 부당한 지금이 아닌예측가능 하고 건강한 상식이 소통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