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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동네 소식 86

내가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까닭

저희 부부에겐 아들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마산 중딩 태윤이의 놀이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김태윤입니다. 지난 4월 말 '독일교육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는 무터킨더 님의 태봉고 방문을 계기로 100인닷컴에 태봉고등학교를 소개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자유로운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때 아들녀석에게 이 학교를 소개했더니 부모와 헤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녀석 나름대로 학교 홈페이지에도 들어가보고 담임선생님과 상의도 해본 모양입니다. 한참 후에 다시 '태봉고에 가고싶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후 녀석의 고등학교 진학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로 가고 싶습니다..

김두관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 찾아가세요

지난 5~6일 경남도민일보와 100인닷컴이 주관한 블로거 팸투어에는 주관사와 참여 블로거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참석하여 블로거들과 단감따기 및 단감와인 제조 체험을 하고, 간담회를 한 후, 모닥불 정담까지 나눴습니다. 이 때 김두관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여기 올립니다. 이 사진들 속에 자기 얼굴이 있는 분 가운데 요청하시는 분은 메일로 원판 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주소는 비밀댓글로 남겨주십시오. ▶관련 글 ☞80년대 노래판 '니나노'가 부활했다(김주완)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안쓰러운 이유(김훤주) ☞우포늪의 진짜 명물, 춤추는 생태해설사(김주완) ☞못말리는 블로거들의 촬영본능을 찍다(김주완) ☞감미로운 마을에서 새벽안개를 걸었네(김훤주) 자! 지금부터 사진 나갑니다. 감미로..

오동동 아케이드에서 70년대의 흔적을 담다

1970년 마산 회원천을 복개해 그 위에 건축한 오동동 아케이드(자유시장)가 40년만에 헐린다는 이야기는 앞서 몇 차례 포스팅한 바 있다. ☞마지막 남은 70년대 술집촌을 찾아서 ☞2010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70년대 풍경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37년만에 사라지는 '오동동 아케이드'(이승환 기자) ☞정동재 마산자유시장번영회장이 전하는 40년사(이동욱 기자) 오동동 아케이드는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노동자들이 5만여 명에 이르자, 이들 소비층을 흡수하기 위해 만든, 당시로선 꽤 현대적인 시장이었고, 그 주변은 각종 술집으로 넘쳐났다. 40년이 지나 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간판에는 '새시장'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붙어 있다. 지난 6월 12일 철거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남겨두기 위해 ..

마지막 남은 70년대 술집촌을 찾아서

37년만에 헐리게 되는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앞서 소개한 바 있다. 1970년 마산 회원천을 복개해 그 위에 지은 복합 상가건물이 오동동 아케이드다. 1층이 시장이라면 2층은 오늘날의 오피스텔처럼 주로 사무실 용도로 분양됐다. 그 뒤에 한 동의 건물이 더 있는데, 2층은 아파트이고, 1층은 역시 점포들도 들어찼다. 오동동 아케이드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2010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70년대 풍경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37년만에 사라지는 '오동동 아케이드'(이승환 기자) ☞정동재 마산자유시장번영회장이 전하는 40년사(이동욱 기자) 오동동 아케이드의 좌우 골목길은 온통 술집이었다. 여인숙 같은 숙박업소도 많았다. 특히 위 사진 왼쪽 입구에 안경이야기 가게 길은 ..

2010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70년대 풍경

앞서 37년만에 영원히 사라지는 '70·80년대 마산 청춘남녀들의 해방구' 오동동 아케이드를 소개한 바 있다. '청춘남녀의 해방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산 수출자유지역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37년만에 사라지는 '오동동 아케이드'(이승환 기자) ☞정동재 마산자유시장번영회장이 전하는 40년사(이동욱 기자) 그 글에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젠 영영 사라질 오동동 아케이드 풍경을 남겨 두겠다고 예고했다. 이 글과 사진은 그 두번째로 오동동 아케이드의 외관과 그 주변 풍경들이다. 1970년 회원천을 덮어 건축하기 시작했던 오동동 아케이드와 그 주변 술집들은 2010년인 지금도 70·80년대의 그 모습들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아케이드 안에..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는 70·80 청춘남녀 해방구 70·80년대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함섬의 노동자 수가 5만여 명에 달할 때, 이들의 소비문화를 흡수한 곳이 있었다. 바로 마산 오동동이었고, 그 중심에 오동동 아케이드(자유시장)가 있었다. 1967년 한일합섬이 마산에 둥지를 틀었고, 1970년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이 들어서자 갑자기 불어난 이곳 노동자들의 소비를 감당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1970년 회원천을 덮어 그 위에 세운 건물이 바로 오동동 아케이드다. 공식적인 시장이름은 마산자유시장이지만, 마산사람들은 모두들 오동동 아케이드라고 부른다. 당시만 해도 꽤 현대식 시장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기존의 재래시장과 구분하여 현대식 이름으로 느껴지는 아케이드로 불리웠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쨌..

내려다 본 불꽃놀이는 정말 볼품없었다

'밤하늘의 불꽃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그 불꽃이 찰라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어디서 봤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로 아련하게 기억된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마산 어시장 축제'라는 걸 했다. 축제 첫날 밤, 집에 있는데 '뻥~뻥~'하는 소리가 났다. 직감적으로 어시장 축제 불꽃놀이를 하는구나 생각하고, 카메라를 챙겨 뒷베란다로 갔다. 우리 집은 28층이라 꽤 높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던 밤하늘의 불꽃놀이와는 반대의 위치에서 불꽃을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내려다보는 불꽃놀이'였던 것이다. 올려다 보는 불꽃은 검은 밤하늘에 퍼지는 것이라 더 ..

주대환 "야 4당 통합후 민주당 흡수해야"

주대환. 마산 출신의 진보정치 사상가다. 나이는 56세.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거쳤지만, 지금은 소속된 정당이 없다. 지금 그의 공식 직함은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다. 원래 마산 출신인 그는 서울대를 다니다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한 후 1979년 마산에 와 있던 중 부마민주항쟁 때 구속당했다. 박정희 피살 후 1980년 잠시 대학에 복학하기도 했으나 전두환 일당의 등장으로 다시 제적당했다. 그 때부터 마산에서 라는 무크지 운동과 이념 학습모임을 하던 중 1986년엔 다시 서울로 훌쩍 떠났다. 그 때 서울 가서 그가 만든 게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었고, 1990년대 들어 한국사회주의노동당과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본격적인 진보정당운동을 벌였다. 그런 활동으로 1992년 또 감옥에..

아파트 관리소의 재치넘치는 경고문

얼마 전 조금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신 후 8남매나 되는 형제자매들이 모여 제사를 모실 공간이 너무 좁았기 때문입니다. 분양 아파트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입주를 하는 바람에 한동안 어수선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내버리는 폐기물이나 재활용품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곳곳에 써붙인 폐기물 불법 투기에 대한 경고문이었습니다. 그냥 드라이하고 밋밋한 경고문이 아니라, 관리소 직원의 재치와 창의력이 엿보였습니다. 몰래 폐기물을 버린 사람 입장에선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족했고, 그냥 구경하는 사람도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하는 '패러디 창작물'이었습니다. 위 사진에서처럼 아기의 보행기와 액자 등 폐기물을 이렇게 전시해놓..

이름 연호에 쑥스러워하는 김두관 후보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는 정치인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부끄러움도 많이 탄다. 예리하다거나 논리적이라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수더분하고 후덕한 이웃같은 인상이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지난 25일 경남 의령군 유세를 마치고 함안군으로 이동해 선거연락사무소에 들렀을 때였다. 미리 대기 중이던 연락사무소 관계자들이 그의 입장과 함께 "김 두 관"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리 후보의 기호 7번에 맞춰 '딱 일곱 번' 연호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를 미리 예상하지 못하고 들어온 김두관 후보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연호되자 아주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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