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현대사 진실규명 힘빼기 나선 정부

기록하는 사람 2008. 7.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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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와 민간인학살

김동춘. 그는 사회학자다. 그는 현재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국가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차관급 상임위원이기도 하다.

나는 2000년 봄에 그를 처음 만났다. 전라도 구례인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 자리였다. 학자도 아닌 내가 거기에 참석했던 것은 심포지엄 중 '민간인학살'에 대한 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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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산청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동춘 상임위원.


아마도 그게 반 세기 동안 묻혀 있던 민간인학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제각기 고군분투하던 전국 각지의 활동가와 기자, 학자들이 처음으로 함께했던 자리였던듯 하다.

그동안 각 지역에서 고립분산된 상태로 제기돼온 학살문제를 어떻게 전국화할 것이냐는 논의가 있었고, 전국조직 결성에 대한 제안도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항상 그러하듯, 과연 누가 '총대'를 맬 것이냐가 문제였다.

결국 떠밀리듯 김동춘 교수가 총대를 매는 꼴이 됐고, 그는 이후 결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라는 단체의 사무처장을 맡았다. 월급은 커녕 변변한 활동비도 없는 단체에서 자비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무료강연과 조직사업을 한 결과 유족들과 연구자, 기자, 법률가, 국회의원, 예술가, 시민운동가들을 진상규명운동에 끌어들였다.

이들 각 전문가 그룹과 유족들은 머리를 맞대고 '통합특별법안'을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학살유형에 따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유족들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사실 내가 그였더라면 열 번도 더 자리를 내팽개치고 떠나버렸을 정도로 갈등과 반목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2005년 마침내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통합특별법)은 아마도 김동춘 교수의 이런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법이 제정된 후에도 문제였다. 국가기구 안에 들어가 '총대'를 맬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법 제정 과정에서 핵심조항들이 대거 개악되는 바람에 '누더기 법'이라고까지 불렸을 정도로 한계가 명백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55년 만에 어렵게 만든 진실규명 기회를 포기하거나 보이콧할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시 학문에 몰두하겠다는 그를 떠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족과 사회단체는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시원찮다고 비난했고, 우익단체와 보수정당은 국가의 정체성을 흔든다고 압박했다. 진실화해위는 양쪽으로부터 샌드위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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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할머니들의 바람은 '내 남편이 언제, 어떻게, 왜 죽어야 했는지'를 알고 싶은 것뿐이다.


그래도 그는 적은 인력과 제도적 한계 속에서 조사팀을 꾸려 묵묵히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을 해왔다. 전국의 유해매장 추정지를 찾아내고, 피해자 전수조사를 했으며, 작년부터 유해발굴작업을 개시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이르러 김동춘 위원의 임기도 끝났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진실화해위도 이름 뿐인 기구로 전락하게 될 게 뻔했다. 그동안 해왔던 그의 노력으로 보아 이쯤에서 그냥 훌훌 털고 떠나도 욕먹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 때도 사람들은 "당신이 아니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해온 게 모두 물거품이 된다"며 떠밀었다. 더 힘든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또 눌러 앉았다.

기구 통폐합, 인력 감축 의도는?

예상했던대로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과거사 관련 기구를 모두 통폐합하겠다는 선전포고가 나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모든 국가기구와 정부투자기관, 공기업의 임원진에 대한 노골적인 사퇴압력이 가해졌다. 일부는 연명을 위해 새 정부에 노골적인 아부와 추파를 보내기도 했고, 일부는 버티다가 사표를 내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안병욱 위원장은 6.25남침피해유족회라는 단체로부터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민간인학살 가해자의 이름을 밝힌 게 명예훼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동춘 위원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은 뭘까. 적당히 새정부에 찍히거나 밉보이지 않게끔 일의 강도를 낮춰 압력을 피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우직한 정면돌파를 택한 것 같다.

그는 지난 19일 경남 산청에서 열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올리는 제사) 인사말에서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위원회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고 위원회를 통폐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진실을 규명해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도록 유족들이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진상규명 발목잡기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유족들과 함께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그에게 동영상카메라를 들이대며 물었다.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진실규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느냐고.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3명의 조사관이 충원되지 않고 있으며, 파견왔던 공무원들이 복귀한 자리도 후임인사를 하지않는 방식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 내년 예산 확보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을 국회 쯤 (정부의 의도대로) 과거사 관련 기구들이 통폐합되면 진실위원회 활동 자체가 상당히 위축될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 미운털이 박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역시 김동춘다운 방식이다.

새 정부의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모든 국가기구와 정부투자기관, 공기업의 임원들이 김동춘 위원 같았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치졸하게 예산이나 인력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지, 어떤 졸렬한 사퇴압력을 가하고 있는지, 조직내부 사람들을 어떻게 이간질시키며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뜻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자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안병욱 위원장과 김동춘 위원, KBS 정연주 사장, 한국언론재단 박래부 이사장과 정운현 이사, 신문유통원 강기석 원장, 이런 모든 분들이 함께 드림팀을 만들어 국민을 심판으로 삼고 이명박 정부와 정면으로 한 판 붙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차피 쫓겨나가는 것 말고 더 잃을 게 있는가.

*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 기고했던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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