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봤습니다. 고3 아들이랑 중2 딸이랑 함께 7월 12일 봤습니다.(투병 중인 아내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 만약 지금 우리가 사는 창원을 떠나면 식구가 함께 영화 보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일부러 시간을 내었습니다.
영화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보고나서 우리끼리 얘기도 참 재미있게 나눴습니다. 세 해 전 ‘말아톤’을 함께 봤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내랑 함께 아들이랑 딸이랑 함께 봤는데, 그리고 재미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 때는 ‘말아톤’을 두고 얘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롯데시네마가 있는 창원 롯데백화점에서 용호동 집까지 걸어왔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들 울적해져 버리는 바람에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습니다.
장비가 너무 전형적이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인물이 너무 전형적이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어디가 그랬어? 나는 별로 모르겠던데.”
“장비요. 제갈량이 주유랑 유비 진영에 왔을 때 장비가 쓴 글을 주유가 빼 들었어요. 그러니까 장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잖아요? 모두 놀라고 귀를 막았어요.”
무식하고 시끄러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렇구나. 그리고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본다면 관우도 마찬가지 같은데.” “왜요?”
“관우가 처음에 위나라 군사를 공격하잖아, 사로잡힐 뻔했다 조조가 봐 주는 바람에 돌아와. 그 때 관우 손에는 땅에 떨어져 짓밟히던 유비 군대 깃발이 있었어. 그러니까 우리 머리 속에 그려져 있는 ‘충의의 화신 관우’를 그대로 따른 셈이지.”
주유는 제 자리를 찾았다
가운데가 주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삼국지 속 주유는 속이 좁은 것처럼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을 거야. 아마 영화처럼 진심으로 제갈량과 마음이 맞았고, 그래서 소설과는 달리 유비 일당을 잡아먹지 못해 호시탐탐 거리지도 않았을 것 같아.”
“주유가 제갈량이 지켜보는 옆에서 팔괘진을 펼치다가 전투 현장으로 뛰어들어간 장면도 멋졌어요.” “그런데, 사령관이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야?” 제가 시비를 걸었더니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그래도, 실감 나잖아요? 패기도 있고요.”
그러고는 곧바로 덧붙였습니다. “자기가 맞은 화살을 뽑아서는 자기한테 화살을 쏜 사람이 말 타고 달려올 때 몸을 날려 뒷덜미에 꽂는 장면도 아주 좋았고요.” 아마 모든 것을 다 예측하는 듯한 제갈량의 차분함보다 주유의 역동이 좋은 모양입니다.
“내 생각도 그래. 처음 등장인물을 보여줄 때 주유가 가장 먼저 나오고 다음에 제갈량, 다음에 손권, 다음에 조자룡, 다음에 감녕 식인 것도 산뜻했어.” 아들도 웃으며 “맞아요, 유비 관우 장비는 소설과 달리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어요.” 말했습니다.
감녕 나오는 대목에서 울었다
“아빠 또 있어요, 감녕요. 인물도 아주 재미있는데 그려지기도 아주 잘 그려졌어요. 진짜 그랬을 것 같아요.” 주유 밑에서 군사들 훈련을 시켰는데, 제가 보기에도 감녕은 해적 출신답게 마치 조교처럼 굴면서 사실감을 더해줬습니다.
얘기에 맞추느라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아들이 난데없이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조금은 뜻밖인지라 빤히 쳐다봤더니 이래 말했습니다. “처음에 유비를 따라서 백성들이 피란 가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났어요.”
‘그러면 눈물 흘린 데가 또 있다는 말이네’ 생각하는데, “감녕 군사가 백성의 물소를 훔쳐간 장면도 그랬어요.” 했습니다. “왜?” 물었더니 “모르겠어요, 그냥요.” 답이 돌아왔습니다. 늙은 백성이 손자와 함께 찾아와 주유한테 어제 물소를 잃어버렸다고 하는 대목입니다.
주유와 감녕은 물소 훔친 범인을 찾습니다. 군사들은 자수하라고 외칩니다. 이런 가운데, 물소를 훔쳤으니 아랫도리에 진흙이 묻어 있으리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군사 두 명 얼굴이 화면에 비칩니다. 감녕 군사들입니다.
백성 물건에 손댄 죄로 목숨이 날아가게 된 순간에, 주유는 증거를 인멸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흙탕물이 고여 있는 언덕 너머까지 해당 군사들이 속해 있는 대열더러 뛰어갔다 오라는 것입니다. 곧바로 군대는 일체감을 확인하고 물소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엉뚱하게도, 무슨 복권위원회 광고였습니다. 가난 때문에 식구들이 찢어졌고 어머니 아버지는 돈 벌려고 일하는 중에도 아이들이 눈에 밟혀 가슴아파합니다. 그러고는 이들을 하나 되게 하는 역할을 무슨 복권위원회가 한다는 얘기가 덧붙습니다.)
팔괘진과 조자룡도 좋았다
아들은 팔괘진을 펼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삼국지에 안 나오잖아?” 했더니, 아들은 “아니에요.” 했습니다. “적벽대전 부분에서는 안 나오지만 삼국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진법이 팔괘진이에요.”
저도 팔괘진을 처음 봤습니다. 무슨 진법보다는 관우 장비 같은 영웅호걸이 상대 장수를 ‘버히고’ 하는 장면이 머리에 익숙해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팔괘진을 통해 조조군을 무찌르는 화면들이 아주 사실적이어서 저와 아이들은 그 실상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조자룡도 우리 입방아를 거쳐 갔습니다. 저는 “조자룡이 좀 처지게 그려진 것 같더라.” 했습니다. 아들은 “왜요? 좋던데요? 생기기도 잘 생긴 것 같던데요.” 했습니다. 저는 아들 말이 맞기에 제대로 대꾸를 못 했습니다. 충성스럽고 성실한 이미지가 ‘딱’이었습니다.
조조는 이상하게 그려졌고
조조도 우리는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물었더니 아들이 “좀 이상한 사람으로 그려놓은 것 같아요.” 했습니다. 멍청하고 엉뚱한 사람으로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주유 아내인) 소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여러 장면에서 그렸는데 실은 아니잖아요?”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맞장구를 쳤습니다. 덧붙인 말입니다. “하지만 유비와 손권을 얕본 것은 앞뒤가 맞을 것 같은데, 앞서 원술인가 하고 벌인 관도대전에서 이겼잖아. 당시로서는 관도대전이 중원의 패자(覇者)를 결정하는 싸움이었거든?”
“예, 알아요. 그리고 원술이 아니고 원소요.” “그렇구나, 어쨌든, 전체 중국을 대부분 틀어쥔 조조가 보기에 유비는 이 빠진 호랑이고 주유나 제갈량이나 손권은 나이 스물 또는 서른 이쪽저쪽밖에 안 되는 애송이였으니 그리 여길만도 하지 않겠냐?”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딸은 별로 얘기에 끼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기에, 아직 ‘해석(=설명)’보다는 ‘이해’에 좀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나이인가 봅니다. ‘제갈량이 멋졌고, 쌍꺼풀이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손권 여동생 캐릭터가 좋았다
손권의 여동생
만약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그대로, 주유와 손권이 유비를 묶어두기 위해 벌이는 정략혼인의 희생양으로 그렸다면, 아무리 담대하고 당당하고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그냥 수동적 존재에 머물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쉬운 장면은 주유와 제갈량이 주유 아내 소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기를 함께 다루는 대목입니다.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다음에 만약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수가 생긴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식구 셋은 (당연하게도) 조조가 참패하는 적벽대전까지 나오리라 생각하고 영화 보러 갔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딸은 주유가 모형 배들을 불 지르면서 영화가 끝났을 때 조금은 황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팔괘진 전투 장면을 볼 때, 저렇게 세밀하게 묘사를 하면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니까 이번 한 편으로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짐작을 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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