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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951년 '의문의 학살' 베일 벗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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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전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벌어진 의문의 집단학살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

최소 500여 명의 민간인이 총살·암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지리산 외공리 학살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유해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지난 19일 오후 2시 산청군 시천면 덕산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올리는 제사)를 열고 본격 유해발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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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토제에 참석한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은 인사말에서 "유해는 땅 속에 묻혀 있는 진실"이라며 "60여년 전 어둡고 외진 지리산 골짜기까지 온 사람들은 누구이며, 왜 그들을 몰고 와서 집단학살했는지, 무엇이 두려워 은밀하게 죽였어야 했는지 등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근 산청군수도 인사말에서 "불행한 역사 속에서 집단학살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유해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굴작업은 경남대박물관 이상길 교수와 15명의 학생들이 담당한다. 이 교수팀은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와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을 했던 경험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할머니들의 바램은 '내 남편이 언제, 어떻게, 왜 죽어야 했는지'를 죽기전에 알고 싶은 것이다.

발굴팀은 외공리 외에도 시천면 원리 덕산중·고등학교 뒤편에 암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949년의 시천·삼장 학살사건 유해발굴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이상길 교수는 "우선 암매장 위치가 분명한 외공리부터 발굴작업을 시작한 후, 원리의 확실한 암매장터를 탐사해 나가는 작업을 병행할 것"이라며 "대략 발굴기간은 2개월 정도로 잡고 있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가 의문에 싸여 있는 외공리 사건의 경우, 이번 발굴에서 드러날 유품이나 탄피 등을 통해 희생자의 신원과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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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위원은 "학살 사실에 대한 가장 1차적이고 중요한 물증이 희생자의 유해"라면서 "이번 발굴작업이 희생자 중 어린아이나 여성들이 있는지 등 목격자의 증언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김 위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진실화해위 활동을 위축시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위원회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고 위원회를 통폐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진실을 규명해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도록 유족들이 힘을 보태 달라"고 당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김동춘 상임위원의 헌작. 많은 카메라가 집중됐다. /김주완

그는 이어 "새 정부 출범 이후 3명의 조사관이 충원되지 않고 있으며, 파견왔던 공무원들이 복귀한 자리도 후임인사를 하지않는 등 인력을 줄이고 있다"면서 "내년 예산 확보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을 국회 쯤 (정부의 의도대로) 과거사 관련 기구들이 통폐합되면 진실위원회 활동 자체가 상당히 위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김동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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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2008.07.20 23:06

    비밀댓글입니다

  • 장군 2008.07.21 10:36

    과거사라는것 자체가 그들에겐 밝히고 싶지않은부분들이지
    밝혀봐야 지들 정체만 들통나니 그렇게 목숨걸고 반대했던거아니거써?
    사실 울나라 보수란게
    과거 친일파의 대외용 가면일뿐
    그걸 숨기기 위해 엄청난짓들을 서슴없이 해왔고
    사회적으로도 반공을 효과적으로 이용해먹었지

    30대후반이상 전국민은 어려을적 반공및 충성교육으로 세뇌되었고
    커서도 거으 모든 남자들은 군대를가니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국민은
    반공사상에 투철할수밖에 없고 소위 보수에 공감대를 형성할수밖에 없지

    근데 현재까지도 특권층들(기득권층)이 말하는 좌파란세력이 널려있는거
    오히려 이게 사실을 웅변하는거 아니거써?

    사회생활을해나가며 배우는게 보수란 단어가
    지들이익을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쓰는 사회기득권층을 지칭한다는거

    그걸 뒤로 숨기고 전면엔 반공을 내세워 국민을 호도한다는거

    지금까지도 잘써먹고 있자나
    "빨갱이~'
    이한마디면 거으 모든사안에 대해 만사 "오케~~"거던

  • Favicon of http://blog.daum.net/flystone/5409077 뜬돌 2008.07.21 11:32

    내가 다녔던 덕산국민학교가 지금의 덕산중고등학교 자린데 그 때 원리 뒷산에 많은 사람이 학살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 원리 뒷산 구곡산 골짜기에는 61년도 덕산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무덤도 있는데...
    60년도 중반에 지리산 마지막 여자 빨치산 정순덕이 잡혔다는 소리도 들었지.
    그 때 진주 덕산에서 불러지던 한많은 노래가 있었다.
    그곳에 사시는 어른들은 다알것이다.
    읊겠소이다.

    비묻었다
    비묻었다
    진주 덕산 비묻었다
    저 비가 비가 아니라
    만인간의 눈물이다.

    어릴 때 동네 뒷동산에서 가죽군화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는데 육군 전사자 것인줄도 모르고
    끈받이 부분을 잘라 새총을 만들때 썼던게 생생하다.

    저 학교 옆에 퇴계 선생님과 쌍벽을 이루었던
    조선의 대유학자 南冥 曺植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덕천서원이 있다.
    그곳에 그 분의 사당이 있고 사당 앞에는 曺植 선생님이 심었음직한
    수 백년 된 은행나무 한그루 지금도 있다..
    그 앞으로는 덕천강이 흐르고 강 옆에 서원에 딸린 洗心停이 있는데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거기서 많이 놀았다. 그 강 따라 물레방아간이 여러군데가 있었는데
    70년대 전기가 들어오면서 모두 없어졌다. 그대로 두었다면 일등 관광상품이 될수 있을 텐데
    지금은 내 맘속에만 남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다음은 南冥선생의 詩

    두류산가(頭流山歌)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녜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에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메뇨, 나난 옌가 하노라.


    저런 아름다운 학문의 고향 덕산에서 전쟁으로 인해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무수한 사람이 죽었갔다는게
    너무 슬프다. 南冥선생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지금까지 방치한 우리 시대도 원망스럽다.

    어린 시절 실성한 아낙들이 이 동네 저동네를 돌아다니던 것도 더러 많이 봤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편과 자식을 저렇게 잃고 충격으로 그렇게 된게 아닌가 생각된다.
    좌우를 막론하고 슬픔을 당한 모든 분들께 명복을 빈다.

  • Favicon of http://www.cyworld.com/kangyd83 강영득 2008.07.21 13:22

    제 싸이월드에 퍼갈게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