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경남에서 전두환은 과연 무엇일까?

김훤주 2013. 8. 25. 10:55
반응형

전두환이 추징금과 비자금 탓에 여러 사람들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저는 전두환에게 받을 빚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때문에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공공의 눈을 어찌 개인 문제로 어지럽힐 수 있겠습니까? 하하.

 

전두환이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전두환은 적어도 우리 경남 지역에서는 아직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과거입니다. 무엇을 청산해야 하는지,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 누가 앞장서 청산해야 하는지 따위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8월 12일 저녁, MBC경남 ‘라디오 광장’의 ‘세상읽기’에서 나눈 얘기들입니다. 끄트머리에서 “권율 장군에게 효수(梟首)당했다고 <선조실록>에 기록이 나오는 사람입니다”까지만 전파를 탔고 나머지는 시간이 모자라 말하지 못한 대목입니다.

 

저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전두환을 (전) 대통령이라 하지 않습니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아니라 반란 수괴로서 학살자이고 독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MBC경남 공식 호칭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어서, 거기 출연하는 저로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1. 전직 대통령이냐, 학살자 독재자냐

 

서수진 아나운서 : 안녕하세요? 오늘 얘깃거리로는 무엇을 준비했는지요?

 

김훤주 기자 : 오늘은 이른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 해 보면 좋겠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합천 출신으로 경남에서 배출된 첫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진 : 요즘 들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가 제기되면서 크게 쟁점이 되고 있기는 하지요.

 

주 : 지금 시점에서 전 전 대통령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합당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전직 대통령 전두환인지 아니면 독재자 학살자 전두환인지 말입니다.

 

진 : 전 전 대통령이 1980년 당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군대를 동원해 진압한 것은 사실로 인정되고 있지요. 아울러 1980년부터 1987년까지, 허수아비 정당인 민주정의당을 창당하고 그를 기반으로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자기한테 맞서는 사람을 탄압한 것도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주 : 법원 판결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1995년 12월 검찰에 구속기소된 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뇌물수수와 반란·내란 수괴 등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는 1997년 4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습니다. 추징금 2205억원과 함께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그해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협의를 거쳐 전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무기징역을 특별사면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추징금은 특별 사면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2. 추징금 낼 돈은 없어도 육사발전기금 낼 돈은 있다

 

진 : 당시 추징금은 어떻게 됐는지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금융 재산은 은행 통장에 들어 있는 29만원이 전부’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요.

 

합천 율곡면에 있는 전두환 태어난 집. 경남도민일보 사진.

주 : 29만원 발언은 200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나왔는데요, 그러면서 측근들과 자식들도 겨우 생활하는 정도라 추징금을 낸 돈은 없다고 했습니다. 애초 자진해서 낸 돈은 312억원이었습니다.

 

검찰을 통해 2000년 벤츠 승용차 9900만원과 용평 콘도회원권 1억1000만원이 강제집행되는 등 지난 16년 동안 모두 533억원이 추징됐습니다. 전체 추징금 2205억원의 25%를 밑도는 수준입니다.

 

진 : 그런데 지금 확인되기로는 장남과 처남을 비롯해 가족들이 겨우 생활하는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기업을 경영하는 등 잘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주 : 전 전 대통령의 2세와 3세가 관련 재판이 끝나고 1년 뒤인 1998년부터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를 두고 대부분 매체에서는 현금과 무기명채권 등으로 숨겨온 재산을 이 때부터 본격 이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장남과 차남을 비롯해 손자·손녀 등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스물여덟 건 가운데 스물두 건이 1998년 이후에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들 자녀와 손자·손녀 소유로 돼 있는 재산에 대해 검찰 본격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3.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한, 반란 수괴

 

29만원 전두환.

진 : 한동안 잠잠하던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린 때가 지난해였지요? 그해 6월 8일 아내, 손녀 등과 함께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 초청돼 육사 생도들의 퍼레이드를 참관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주 :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장세동 전 안기부장, 김진영 전 육참총장, 정호용 전 내무부 장관, 고명승 전 3군사령관 등 이른바 5공 핵심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는데요, 이와 더불어 전두환 노태우의 이름이 1000만 이상 5000만원 미만 발전기금을 출연한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더니 무슨 돈이 있어서 1000만원을 냈느냐는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추징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도 크게 일어났습니다.

 

진 : 전 전 대통령은 이렇게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면서도 측근들과 골프를 치러 다니는 등 마땅찮은 행보로 비판도 종종 받았습니다. 우리 경남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4.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으면 안 되는 전두환

 

주 : 경남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가장 가까운 날짜는 2011년 5월 20일부터 23일까지입니다. 거제와 고성을 찾았습니다. 측근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과 함께였습니다. 삼성조선과 대우조선 공장을 시찰하고 이틀 동안 두 차례 골프를 쳤으며 기념식수까지 했습니다. 자기 처지도 잊고 안하무인으로 굴었습니다.

 

자기한테 잘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 이희호님과 악수하는 전두환.

 

진 : 전 전 대통령이 97년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전 전 대통령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요?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요?

 

주 :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박정희 시절인 1969년 1월 22일 만들어졌는데요, 전직 대통령에게 현재 대통령 보수의 95%를 연금으로 주고, 기념사업을 지원하며, 경호와 교통·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혜택을 제공합니다.

 

그러다가 1995년 12월 29일 법률이 개정돼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경호·경비를 제외한 모든 예우를 박탈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5. 전두환 고향 합천에는 반란 수괴 공원이 있고

 

진 : 그런데도 우리 경남에서는 전 전 대통령 출신지여서 그런지 전 전 대통령 또는 그 조상을 기리는 일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주 : 전 전 대통령은 2006년에는 5·18 민주화운동 탄압 관련으로 받은 훈장 등에 대해 서훈 취소 결정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데도 생가라든지, 그 호를 딴 일해 공원이라든지 하는 하는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진 : 모두 전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합천과 관련되는 것들입니다.

 

주 : 전두환 생가는 본인이 대통령으로 있던 1983년 복원됐습니다. 당시 경남도가 6100만원을 들여 마련했습니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했다는데, 지금은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어 거의 방치 수준이라고 합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시설 유지 관리비로 2억3000만원 가량 들었고 앞으로도 해마다 1700만원이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일해공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일해공원'에서 '일해'는 전 전 대통령 아호입니다.

 

도비 20억원을 비롯해 68억원을 들여 만든 공원 이름이 원해는 '합천 생명의 숲'이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심의조 당시 합천군수가 비난 여론이 전국적으로 끓었는데도 일해공원'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게다가 2008년 군비 3000만 원으로 전 전 대통령 친필로 ‘일해공원’ 표지석까지 세웠습니다.

 

6. 창녕 영산호국공원과 경남도청에서는 전두환 조상이 잘못 기려지고

 

진 : 합천군과 이웃한 창녕군에는 전 전 대통령의 조상을 기리는 공원까지 있다고 하던데요?

 

영산호국공원에서 있는 부조. 가운데 말타고 칼 휘두르는 이가 전두환 조상 전제 장군입니다.

 

주 : 이또한 전 전 대통령 통치 시절에 벌어진 일입니다. 아직 바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역 유지들과 관료들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창녕군 영산면에 가면 영산호국공원이 있는데요, 여기에서는 창녕·의령 일대에서 임진왜란 당시 가장 크게 의병을 이끌었던 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자취도 없고 합천 일대에서 부장(副長) 정도 노릇을 했던 전제라는 인물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정유재란 당시 영산현감을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 뒤 울산 전투에서 권율 장군에게 효수(梟首)당했다고 <선조실록>에 기록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진 : 이런 것을 보면 전 전 대통령이 안하무인으로 굴면서 자기가 지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이든 아니면 물러난 지금이든, 지역에 있는 토호들이 이렇게 전 전 대통령을 감싸고돌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 : 저도 생각이 그렇습니다. 당시 관료들은 전 전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조상 전제를 '경남을 빛낸 선현' 여섯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고 경남도청 4층 대회의실에다 초상을 안치하기도 했습니다.

 

7. 지역 주민들이 동정심, 양비론, 지역감정, 노예기질을 버려야

 

전 전 대통령 또는 그 뒤를 잇는 세력들이 지역 토호들과 이해관계를 함께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는 그런 토호들과는 이해 관계나 인식이 다른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다른 방안이 없다고 봅니다.

 

2007년 10월 19일 고향 합천을 찾은 전두환. 경남도민일보 사진.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지역 일반 대중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대신에, 대통령을 지내기는 했지만 내란과 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해 국민 의사와 반해 억지로 대통령을 하면서 학살과 독재를 일삼은 사람으로 여겨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 대통령을 하기는 했지만, 집권 기간에도 그 정통성을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퇴임 뒤에는 민중의 거세찬 요구로 열릴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법정에서, 내란이라는 불법 부당한 행위에 뒤따른 권력 찬탈 그 자체였다고 판결났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 이해 관계도 없으면서 막연한 동정심이나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어설픈 양비론, 또는 그래도 같은 지역 사람이니까 하는 풋내기 지역감정, 과정이야 어찌 됐든 대통령을 한 양반 아니냐는 쪽팔리는 노예기질 따위에서 하루라도 일찍 벗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외람되지만 한 번 해 봅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