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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누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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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침해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일본군 성노예(sex slaves, 이른바 '위안부')와 민간인 집단학살(genocide)을 든다. 불행히도 두 사건은 모두 우리나라가 최대 피해국이다. 국가권력이 가장 힘없는 국민을 희생자로 삼았던 범죄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두 사건의 다른 점도 있다. 성노예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백성에 대한 범죄라면, 민간인학살은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자국민을 죽인 것이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도 집단학살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나치가 유대인을 죽였다느 점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우와 다르다.


범죄의 가해 주체가 달랐던 만큼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 과정도 확연히 다르다. 독일의 경우 1945년 패전 후 전범재판에서 주모자급 12명이 교수형을 받았고, 일선 책임자 1000여 명도 사형 선고를 받았다. 독일 자체적으로도 유대인 학살 등 전쟁범죄에 대한 색출과 재판을 계속해 1990년까지 6400여 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공소시효를 아예 없애고 지금도 전범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법도 만들어 지금까지 약 78조 원을 배상했다. 참회와 사죄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을 비롯, 헬무트 콜 총리도 그랬고,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도 지난 8월 20일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였던 뮌헨 인근의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해 헌화하고 희생자들에게 속죄했다.


반면 일본은 성노예 범죄에 대해 반성과 사죄, 보상, 처벌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종전 직후 연합군에 의해 이뤄진 전범재판에서도 성노예는 물론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관동대학살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았다. 일본 자체적인 전범 색출도 없었음은 물론 오히려 전범을 추모·추앙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런 일본에 대해 전 세계의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과 미국 곳곳에서 '위안부 소녀상' 또는 '추모비'가 세워지고, 경남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급한 '위안부' 교육자료집과 다큐멘터리가 시민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진주 문산면 상문리에서 발굴된 암매장 유골.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이다. 이는 1948년 정부 수립 과정에서부터 1953년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제주 4·3과 여순사건, 보도연맹, 형무소 정치범 학살, 산청·함양·거창사건, 부역자 처단 과정의 학살 등을 포함한다. 유족과 학계에서는 그 희생자 수를 최대 100만 명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직 제대로 집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제정하여 조사를 벌였지만, 진실규명이 이뤄진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공무원직장협의회가 활동기간 종료를 앞두고 발표한 글에서도 실제 희생자 숫자의 5%도 안 되는 신청인에 대한 조사만 이뤄졌다고 했다.


그나마 진실규명이 이뤄진 사건에 대해서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후속 조치는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 과거사재단 설립 등을 포함한 여러 내용의 권고사항을 전달했지만 이후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모두 무시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 유해안치시설 설치를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지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진실화해위는 지자체에 대해 위령사업과 유해안치시설 설치 등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남만 해도 2004년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유해가 경남대의 컨테이너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2008년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발굴된 270여 구와 2009년 진주에서 발굴된 유해 등이 충북대 임시안치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러고도 과연 대한민국이 일본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최근 창원시의회에 상정된 '창원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안'의 통과 여부가 주목받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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