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마산 만초집 조남륭, 부산 한진중 김진숙

김훤주 2011. 12. 3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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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5일 마산 창동 실비집 만초에서 갱블 송년회를 했습니다. '갱블'이란 갱상도 블로그, 경남도민일보에서 운영하는 메타블로그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갱블에서 활동하는 이런저런 블로거들을 모시고 송년 행사를 치른 것입니다.

송년회에는 스무 분 남짓이 참여를 했습니다. 자리가 비좁을까봐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오히려 비좁은 덕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좀더 정겨운 가운데 송년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미리 주문을 하기는 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밥과 국을 먹을 수 있었고 나오는 안주도 보통 때와는 좀 달랐습니다.

어쨌거나 저희들은 이렇게 모여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이날 압권은 만초집 안주인의 노래였습니다. 지금은 '여자의 일생' 말고는 이날 부른 노래의 곡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안주인의 목청이 아주 좋았습니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날 안주인 부르시는 노래를 듣는 이들 표정을 보면 안주인 어른의 노래 솜씨를 나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주인 노래를 들으며 무아지경에 든 김주완 국장.


노래가 끝나고 나서 만초집 바깥주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저런 사람 하고 한 평생 살았으니 나도 잘 산 인생 아이가?" 덕분에 왁자하게 웃음 보따리가 한 번 더 터졌습니다. 맞습니다. 바깥주인께서는 안주인 노래 솜씨만으로도 잘 사신 한 평생 같았습니다.

바깥주인.


모임이 끝날 때쯤 돼서 술밥 계산을 했습니다. 바깥주인은 비운 술병이 몇이나 되는지 따위는 헤아려보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한 30만원 하면 안 되겠나?" 이러셨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싸다 싶어서 3만원을 더 얹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바깥주인이 "고맙다, 참 고맙다."면서 웃으셨습니다. 또 "더 안 받을 테니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서 한 잔 더 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리로 돌아오는데 무슨 그림책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 눈길을 주고 있으려니 바깥주인 어른이 그 어디쯤인가를 펼쳐서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에는 마산 창동 만초집 주인 '조남륭'의 한 평생이 잘 산 인생인 까닭이 하나 더 들어 있었습니다.


제목은 '막걸리 우동 클래식 조남륭'입니다. "육이오 때 피난 내려온 부산,/ 광복동 아폴로음악실, 칸타빌레/ 미화당 음악궁전, 부평동 오아시스/ 클래식 음악이 한없이 좋았어./ 험한 시절, 싸우지 않고는 못 견딜 때/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악인이 됐을지도 모르지./


차이코프스키 '1812년' 펑! 펑! 포 소리에 귀가 열리고/ '볼레로'에 이끌리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소나타'/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


여기 마산에 와서 막걸리 우동 팔면서 내 좋아/ 클래식 듣고 있자니 문인, 화가들 사람이 모였어./ 조두남 선생, 정진업 시인, 구상 시인도 단골이셨지./ 요즘 젊은 친구들 바쁜지 클래식을 안 들어./


정말 좋은 음악은 길가다 들려오는 곡을/ 가만히 서서 듣는 거야./ 클래식은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한 친구지/ 누가 나보고 칠십 넘도록 꼴이 이게 뭐냐 하면/ 나만큼 멋지게 산 놈 나와 보라 해!"


'손문상 화첩 산문집' <브라보 내 인생>이었습니다. 지금은 <프레시안>에서 일하는 손문상 화백이 부산일보에 적을 두고 있을 때 부산과 경남 일대를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림(부산일보에 연재를 했습지요)을 담은 책입니다. 부산의 대표 출판사 '산지니'에서 펴냈지요.


만초집 주인을 다룬 그림과 글은 다 읽었지만, 그래도 그냥 덮기가 아쉬워서 이리저리 뒤척였습니다. 그랬더니 거기 또 하나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 구성원 가운데 대부분이 낯익어하는 얼굴입니다만, 여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지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을 견딘 김진숙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이 인생이야 지금도 그 때도 그 전에더 한결같았지만, 그 한결같음을 나타낸 글과 그림을 보니 어쩐지 새삼스러웠습니다.

'연대와 희망의 이야기꾼, 김진숙'입니다. "강화, 고향은 너무 아프기만 하지요./ 가난하고 공부 못한 아이가 상처받은 기억뿐입니다./78년 열여덟에 부산 와서 반여동 대우실업 실밥 따는/ 시다부터 시작했지요. 그 수많은 노동자, 공순이였습니다./

첫 월급 만 팔천 원이 10원도 안 남더군요./ 공장을 30군데도 넘게 다니고 안내양, 외판원, 신문배달에/ 해운대서 아이스크림 장사도 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남자가 하는 일은 월급 많을 거라며 용접을 배웠습니다./ 직업훈련소 마치고 대한조선(현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이 됐죠./ 지옥이 따로 없더라고요. 거기서 다리도 심하게 다쳤습니다./

다치고, 노조 한다고 해고되고, 그보다 더 아픈 것은/ 그곳에서 동료 박창수를 묻고, 김주익을 묻고…/ 그들을 차가운 땅에 묻고 돌아와 언제부터인가/ 보일러를 못 올리겠더라고요. 보일러를 끄고 산 지 몇 년 됩니다./ 편하게 살려면 욕심이 한도 끝도 없지요. 면허도 안 땁니다./


지금 정규직노조는 고여 있는 물입니다. 비정규는 요동치죠/ 문제는 지금처럼 10년 가면 비정규도 고인 물 됩니다./ 비정규를 넘어 세상을 보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게 희망입니다."


보일러 올리는 것도 욕심이라 하는 김진숙. 칠십 넘도록 꼴이 이게 뭐냐 하는데도 나만큼 멋지게 산 놈 나와 보라 하는 조남륭.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두 사람이 여기 한 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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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손문상 (산지니,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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