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4일 창원 중앙동 메가박스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습니다. 2007년 1월에 있었던 김명호 전직 성균관대 교수의 이른바 '석궁 테러'를 다룬 영화입니다. 1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열린 시사회였습니다.

영화는 앞서 여러 사람 말대로 꽤 잘 만들어졌습니다. 김명호(영화에서는 김경호) 전직 성균관대 교수의 항소심 재판을 다뤘는데 변론을 맡은 박훈(영화에서는 박준) 변호사가 함께 나와 지루하지 않고 경쾌하게 진행됐습니다.

1. 명백한 사건을 미스터리로 만든 재판

쟁점은 알려진대로 김명호가 교수 지위 확인 청구 소송에서 자기한테 옳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는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쏘았느냐 여부였습니다. 검찰은 쐈다고 주장했고 박훈과 김명호는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경영. 항소심 재판을 처음에 맡은 판사로 나와 당혹해하는 표정 연기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문성근. 항소심 재판을 마지막에 맡아 얼터리로 진행하는 역할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석궁 화살에 맞았다는 판사는 법정에서 진술이 오락가락했으나 재판부는 그 판사를 다시는 증인으로 부르지 않았고 속옷에 있는 핏자국이 이상하게도 겉옷인 와이셔츠에는 없는 부분도 검찰 입증 없이 넘어갔습니다.

게다가 와이셔츠에 남은 피와 그 판사의 피가 같은지 여부를 검증하자는 박훈과 김명호의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또 김명호가 문제 판사를 쏘았다는 '부러진 화살'(그리고 끝이 뭉툭해진)이 부러지지 않은 멀쩡한 화살로 바뀌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아무 입증 없이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박준 변호사(박원상)과 김경호 교수(안성기).

시사회에 모인 사람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리고 재판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석궁이 제대로 발사되면 문제 판사가 다친 것처럼 가벼운 상처는 나오지가 않는답니다. 아주 세게 발사돼 깊숙하게 박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습니다.

석궁은 또한 제대로 장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냥 흘러내릴 뿐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문제 판사가 크게 다치는 대신 가벼운 상처만 입는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생길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제대로 장착돼 발사됐으면 치명적인 상처가 나고 제대로 장착되지 않았으면 발사조차 안 돼 아무 상처도 입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문제 판사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고 그 또한 와이셔츠에는 핏자국조차 없었으며 이런 미심쩍음을 검증해야 한다는 김명호와 박훈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증거에 입각한 재판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 더 김명호 교수가 구속될 적에 죄명은 살인미수였습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상해죄로 바뀌었습니다. 이 또한 우스운 노릇입니다. 김명호에 대한 유죄 판결은 제대로 된 석궁 발사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살인미수가 맞고 상해는 터무니없습니다.

2. 과연 '법대로'가 가능한 얘기일까?

영화에서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 김명호는 법을 두고 "아름다운 것"이라 하고 박훈은 "쓰레기 같은 것"이라 합니다. 이번 사건은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매우 뚜렷하게 재판관들이 법률을 위반한 채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김명호의 얘기가 맞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법률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고 법대로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시사회를 마치고 무대 앞에 나온 정지영 감독과 박훈 변호사.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미국의 실천하는 지식인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쓴 책 <권력을 이긴 사람들>(도서출판 난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178쪽에 '밥과 정의의 차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번역투 문장이라 조금 껄끄럽기는 하지만 뭉뚱그리자면 법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법은 쓰레기일 수도 있고 쓰레기가 아닐 수도 있다, 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국면에서는 '법대로'를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가 있는 모양입니다. 대충 보면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 또 미국의 관할권에 드는 모든 사람은 미국과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정도가 되는 모양입니다. 시민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수정 헌법 제14조가 1954년 미국 대법원이 학교 인종 분리를 잘못이라고 판단했을 때 그 근거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스꽝스럽지만 58년 전인 1896년 열차 인종 분리를 합당하다고 판단했을 때도 같은 수정 헌법의 제14조가 근거였다고 합니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짚었습니다. "학교에서의 인종 분리에 대한 1954년의 브라운 판결은 이 사건에 수정 헌법 14조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갑작스런 깨달음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인종간 분리를 확정했던 1896년 플래시 사건에서 인용됐던 것도 동일한 수정 헌법 14조였던 것이다. 대법원에 갑작스레 계몽을 불러온 것은 남부의 용감한 가족들이 주도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하워드 진의 이 글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다 나오지는 않아 다른 데서 찾아봤더니 이랬습니다. 플래시 사건은 1대7 비율 흑백 혼혈인 플래시가 백인 열차칸에 있다가 체포된 일을 이릅니다. 이를 두고 미국 대법원은 1896년 '분리하되 평등한' 시설이라면 인종을 분리해도 평등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브라운 판결은 1954년 공립학교 인종 차별은 부당하다는 소송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 때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분리하면 불평등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같은 수정 헌법 제14조를 두고 제각각 다른 결론이 나온 셈입니다.

3. 쓰레기 같은 법을 아름다운 법으로 바꾸려면

하워드 진의 글은 이어집니다. "1883년 대법원은 호텔과 식당 같은 민간업체들은 흑인 출입을 금지할 수 있다고 수정 헌법 14조를 해석했다. 그러나 1960년대 초에 남부에서 연좌농성이 일어나고 흑인 수천 명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자, 1964년 대법원은 공중 편의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조용하게 법률적으로 허용했다."

"법은 정의로울 수도,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 법이 마치 신성한 왕권처럼 궁극적인 권위를 물려받을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다." "헌법과 '법의 지배'에 대한 그 경건한 숭상의 주위에는 엄청난 위선이 존재한다. 헌법은 성경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가변적이고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봉사하는 목적으로 이용된다."

그러면서 다시 말합니다. "빈민, 여자, 유색인과 다른 모든 반대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대법원에 의지하는 것은 순진한 태도일 것이다. 이들의 권리는 시민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조직하고, 저항하고, 시위하고, 파업하고, 보이콧하고, 반항하고, 법을 위반할 때만 살아난다."

"노동자, 여성, 흑인의 권리는 법원의 결정으로 쟁취된 것이 아니었다. 정치체제의 다른 부문들이 그랬듯이, 법원 역시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한 직접 행동에 참여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 권리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합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법원이나 선거 등을 무시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나 백악관 혹은 의회에 어떤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유리해질 경우도 있다. 지든 이기든, 법원은 쟁점들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김명호가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수감되면서 다른 수형자들한테 얼차려를 시키는 교도관들 이름을 손바닥에 적었을 때 이를 막으려는 교도관을 따돌리는 장면.


어쨌거나 하워드 진이 말하는 요지는 분명합니다. "'직접 행동'만이 쓰레기 같은 법을 아름다운 법으로 바꿀 수 있다." <부러진 화살> 광고 문구는 "이 남자의 분노에 주목하라!"입니다. '이 남자'는 석궁을 들고 판사를 을러댔고, 영화 <부러진 화살>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의 분노에 주목하라!"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이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부러진 화살>이 내미는 고발장을 접수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바로 <부러진 화살> 영화 보기입니다. 장애인 학교 간부들의 장애 학생 성폭행을 고발한 영화 <도가니>에 맞먹을 정도로 사람이 들면 사법부도 바로잡히겠지요. 이것이 어쩌면 하워드 진이 말하는 '직접 행동'일는지도 모릅니다.

김훤주
부러진화살
카테고리 정치/사회 > 법학
지은이 서형 (후마니타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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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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