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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학살

홍준표 이창희 박대출 김재경의 민간인학살에 대한 입장 지난 2일(토) 오후 1시 진주에서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66주기 제8회 합동위령제'가 열렸다.전국에서 각 지역 유족회장들이 참석했고, 시민사회단체와 진주지역 문화단체, 진주시의회 시의원 등 많은 사람이 참석해 함께 해원(解寃)을 기원했다.하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창희 진주시장, 김재경 국회의원, 박대출 국회의원은 참석하지 않는 대신 '추모사'를 보내 자료집에 실었다.선출직 정치인으로서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그들이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학살에 대해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갖고 있는지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그래서 여기 기록해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 한국전쟁은 현대사에 가장 큰 비극이며, 특히 민간인 희생사건은 더 할 수 없는 상처를 우리 가슴에 남겼습니다. 진주지역에.. 더보기
[문경 학살]살려줄테니 일어서라 해놓고 다시 사살 지난 2006년 12월 23일 경상북도 문경에서 문경민간인학살 피해자 증언이 있었다. 앞의 글에서 이어지는 채홍연 씨의 증언이다. ☞앞의 글 : [문경 학살]창자 쏟아진 형이 살려달라 했지만...문경 민간인학살 생존자 채홍연씨의 피맺힌 증언1949년 12월 24일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석달마을 사람들이 국군들에 집단학살을 당한 그 때 저는 11세의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가족은 69세의 아버지와 77세의 종조모와 25세의 오빠와 저 넷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그 날 점심 때 쯤 되었을 때 갑자기 많은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들이 닥쳤습니다. 갑자기 우리 마을에 들이 닥친 군인들은 마을 앞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서 떠들면서 머물러 있더니 갑자기 호각을 불면서 큰 소리.. 더보기
마산에 전국적 노동운동가가 있었지만 묻힌 까닭 소담(昭潭) 노현섭(盧玄燮) 풍천 노 씨 곡안리 민간인학살사건|마산 민간인학살 진상 규명운동|마산 여양리 민간인학살지 1921 구산면 안녕마을 출생1944 일본 중앙대 법대 졸1946 마산보통상업학교 교사1950 마산부두노조위원장1952 마산고등공민학교 교장1954 전국자유연맹 위원장1955 마산시 교육위원1956 마산노동병원 병원장1960 양민학살 전국유족회장1991 사망 [정의]1960년 4·19혁명 직후 마산에서 처음으로 양민학살유족회를 결성하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나섰으며 전국유족회장을 맡았으나 1961년 5·16쿠데타 직후 연행되어 용공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한 사회운동가이자 항운노조의 전신인 자유노련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 [가계]아들 노치웅(전 경남에너지 총무·기획이사) 씨 등.. 더보기
한국전쟁기 창원에서 누가 어떤 짓을 벌였나 한국전쟁기 창원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군(軍)이 행정·치안·사법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시·군 행정기관과 경찰은 군의 하부기관이 되었다. 그리고 우익단체와 지방 유지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돼 군의 보조기구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평소 반정부 활동을 벌였거나 진보적 성향을 보여 정부의 특별 관리를 받아온 사람들은 예비검속 대상이 되어 학살되었다. 이미 정치범 또는 시국사범으로 수형 중이던 재소자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후 당시 마산시와 창원군, 진해읍은 7월 8일 정부의 계엄령 선포에 따라 계엄사령부 통제 하에 들어갔다. 당일 이유성(중령) 마산지구위수사령관과 김성삼(대령) 진해군항사령관은 마산·고성·창원.. 더보기
진선미 이재오 정수성이 발의한 학살 규명 법안 어제(5일) 오후 1시부터 창원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65주기 제8회 합동위령제가 있었다. 장소는 옛 부산형무소 마산분소 자리였던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이었다. 여기엔 이 지역구 이주영 국회의원(새누리당)도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전쟁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들에 대한 추모와 명복의 뜻을 여러분과 함께하고자 한다. 국회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여러분과 뜻을 함께하면서 유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길에 함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국회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일이란 현재 계류 중인 진상규명 법안이 통과할 수 있도록 적극 힘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법안이 계류되어 있는지 알아보았다. 2015년 9월 현재 국회에는 3건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및 보상 관련 법안이 계류.. 더보기
팩트의 힘은 강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 레드 툼 "저는 아버지란 사람이 원래 없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다른 아이들 집에는 아버지가 있는 거에요. 그때서야 우리 아버지만 없다는 걸 알았지요." 엄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를 잃었던 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민간인학살로 살해됐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보통 우리는 부모를 잃고 1년 만 지나도 슬픔을 잊는다. 아버지 제사가 돌아와도 우는 경우는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영화 (감독 구자환)에서는 나이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65년 전 헤어진 사람을 그리며 서럽게 운다. 빗속에서 진흙탕에 막걸리를 뿌리며 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원통하게 했을까? 영화 은 어설프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 더보기
한국 역사에서 꼭 해결해야 할 3가지 문제 1960년 창립했다가 1961년 5.16쿠데타로 강제해산되었고, 2009년 재창립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네요. 2009년 바로 이 자리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마산유족회' 재창립을 논의하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 후 마산 창원 진해 통합으로 '통합 창원유족회'가 되었고, 오늘은 또 사단법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네요. 창립 당시부터 쭉 같이 해왔었는데, 해마다 참석하는 유족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참 뿌듯합니다. 엊그제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한 연구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제에 부역.. 더보기
우리지역 둘러보기-진주인권학교 진주지역 시민사회에서 진주를 '인권도시'라 표현한 것은 제법 오래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정해방운동이자 신분차별 철폐운동이었던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진주이니만큼 진주가 인권도시여야 한다는 당위는 확보된 셈이다. 진주는 또한 지난 2012년 7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무장애 도시(Barrier Free City)'를 선언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 장애인, 어린이, 임산부를 비롯한 시민 모두가 장애없이 이동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장애 없는 생활환경' 구축을 통해 살기 좋은 복지도시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무장애도시는 이창희 진주시장이 직접 선포했고, 관련 조례도 제정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서은애 진주시의원의 발의로 '진주인권조례'도 제정됐다. 진주가 인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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