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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함양 치라골 민간인학살 구술증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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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임이택

생년월일 1938년 9월 15일

주소 경남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마을

조사 일시 및 시간 2008년 10월 2일 / 46분

주요 연보

 - 1938. 함양군 수동면 내산마을 출생

 - 2006~  함양군 수동면 치라골 양민학살 유족회장


◦ 구술자 : 임이택

◦ 면담자 : 김주완 공동연구원

◦ 면담주제 : 1949년 치라골 민간인학살 사건

◦ 면담일자 : 2008년 10월 2일

◦ 면담장소 :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마을(치라골) 자택 아랫방



(면담 상황)


구술자 (자문사례비 영수증을 작성하며) 통장계좌번호는 또 봐야 알겠는데...다소 작고 말고 간에 돈이라쿠는 거는 참, 명목이 있어야 되는데, 무신 명목으로 날 주는지 모르겠지만, 계좌번호 적어드릴께요. 팔삼일공칠오...


면담자 제가 좀 여쭙겠습니다. 어르신 성함이 임이택 어르신이고요. 몇 년생이십니까?

구술자 38년생이요.


면담자 그러면 칠십하나.

구술자 예 칠십하나.


면담자 우리나이로 칠십하나가 되신다 그지예?

구술자 예.


면담자 그때 사십구년돕니까?

구술자 예 사십구년이제.


면담자 형님께서 돌아가신 게 도북마을보다 빠릅니까? 비슷합니까. 날짜가.

구술자 하루상관이요. 도북은 하루먼저 경찰에 잡혀갔고, 여기는 하루뒤에 잡혀갔고, 죽는 것도 도북은 하루 먼저 죽고, 여기 사람은 하루 뒤에 죽고. 장소도 그때는 한 장소요, 구딩이만 아래 위로 틀리제, 한 장소고.


면담자 도북은 그 때 이발사하던 정주상이란 사람이 그래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 동네는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치라골은


구술자 대처, 그 당시는요. 참 주사들은 잘 모를끼요마는, 해방 직후 이 골짝 토지가 전부 다 부자 몇몇 사람 토지요. 그래갖고 전부 다 농사 지어가지고 지주들, 논 주인 말이요. 그때 도지가 한마지기에 보통 한 섬이라. 그럼 수확은 얼마나 나느냐. 한 섬 쪼금 더나고, 두 섬 난다쿠모는 농사 참 잘 지은 농사고, 서른말 나모든 보통농산데, 한섬 주고나면 한 열말 얻어먹는기요. 너머논을 갖다가...그것도 머슴들이 지어. 그리 살다가 해방이 척 되고 나서 어쩌는 게 아니라, 공산주의, 있는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분배한다 그리됐었소. 이북의 정치가. 그런께능 전부다 그 정치가 좋다 이리된기요. 군 치고도 부자집 그저 한 몇몇 사람 제외하고는 전부다 그 정치가 좋다. 이래가지고 여기 저저 함양은 상림, 거기 전부다 깃발 들고 가고 만세 부르고 뭐 이래샀소. 그때 그러나 그 당시에는 경찰이고 누구간에 간섭을 안했소. 우수수하게 해방직후 이래산께 이기 좋은가 저게 좋은가 경찰이든 누가 알끼요. 그러다가 차차 세월이 가니께능 우짜능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제. 대한민국을 미국이 잡고 있고, 이북을 소련이 잡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기요. 그래가지고 통일하겠다고 서로가 이래 샀고, 되나요? 뿌리를 벌써 미소가 딱 잡고 있는데? 그렁께능 어쩌는 게 아니라, 그 때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 뭐 초대국회 출마되고, 이래갖고는 안되겠다, 질서를 잡아야겠다고 해가지고, 저 좌익에, 이북에 머리를 쓰는 사람 전부 다 체포를 해라 이렇게 된기요. 잡아들이라 지서로. 잡아들일께능, 사실상 그 사람들이요, 무신 죄가 있나요. 이기 좋다 저기 좋다, 아니 사실상은 그리 못먹고, 있는 사람의 종질하다가 농사 지어갖고 거기 바치고 하다가, 아니 공평하게 갈라먹자는 그 정치가 좋다 카는데 누가 반대할끼요 말이제. 그런께는 이게 안되겠다 이래 가지고 좌익에 머리 쓴 사람 체포를 했소. 경찰에 잡아들였어. 잡아들이니 어쩌는게 아니라, 그때 머리 박힌 사람은 산으로 튀었소. 안 잡혀 갈라꼬. 그게 빨갱이요 말하자면. 그게 빨갱이라.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나가 가지고는,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요. 내나 먼데 사람도 아니라 지방 사람이라, 지방 몇몇 사람이라. 와가지고 밥 좀 도라. 내나 아는 사람들이요. 밥 좀 도라 이러카먼 밥 안주고 어쩌요. 그때는 인제 밥을 안주게 되면, 그 사람들 말 안듣게 되면 반동자다 이래가지고, 반대에 움직인 사람이다, 반동자다 이래가지고, 그 사람에겐 인자 행패를 주는기요. 그런께는 밥 도라 카는데, 뻔히 아는 사람이, 밥을 주는기요. 밥 주고 나면은, 그 차차 법이 좀 조아드는기요. 지서에서 밥을 주면은 지서에 와가지고, 보고를 해라, 보고를 안하면은 또 보고를 안한 법으로 걸리는기라. 그러니 보고를 하는기요. 보고를 하면은, 지서에 가면 뒈지게 맞는기요. 그마. 밥은 몇 번 줬느냐, 빨갱이 심부름 몇 번 했느냐, 두들겨패면, 매에 장사 없다고, 그 사람들에게 밥을 한 번 줘도 열 번 줬지 이러쿠먼 아이고 줬지요. 매에 못이기니 어쩨야. 그리 하는 세월이 한 몇 개월 흘렀어요. 여기 사람들이 처음에 가서 그리 맞고 와가지고, 인제 한 며칠 고생하다 살아나고, 또 한 일 이개월 흘렀던가 몰라, 또 한 사람이, 그 사람들이 밥을 해달라 해서 주고, 또 지서에 가서 보고를 하는기요. 또 두들겨 팬거야. 밥은 몇 번 해줬느냐, 양식은 얼마나 줬느냐, 그 사람들 심부름 얼마나 했느냐, 두들겨 패니까, 그 당시에는 몇 번 했지 하면 고마 예예, 저거들 말 하는대로 예예 하는거여. 두들겨 맞으니까. 두 번째 갈 때 지서에서 너거 동네 젊은 사람들이 30대 미만이 몇이나 되노. 그래 몇 명 될끼다 하니 이름을 다 적고 실컷 두들겨 패고 보내 준거요. 한 세 번째이거거마. 세 번째, 그때 날이 비음하게 샜어 음력 윤칠월이니까, 아 동네를 순경들하고, 그때 강청단이라고 있었어, 민간인이 말하자면 관에, 말하자면 협력 주동자라 할까, 뭐 움직이는데 협조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강청단이라고.



면담자 대한청년단 말하는 겁니까?

구술자 하모. 하모. 그 사람들하고 와 가지고 동네를 포위해가지고, 우리는 그때 어렸으니까, 눈비비고 일어나니까 총소리가 한 서너번 나더니 호각소리가 막 여기저기 나고 그래. 그러다가 동민을, 젊은 사람을 싹 집합시키는거요. 집합시켜가지고는 호명을 불러요. 호명 불러가지고는 착착 엮는거요.


면담자 엮었다는 건 손을 묶었다는 말입니까.

구술자 그렇제. 그때는 포승줄도, 포승줄이 그리 있는가. 한 사람이 그 가운데서 자기 처족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가고 없었었소. 없으니 그 사람 부인을 데리고 간거요. 그 사람 대신. 그래 가가지고 참, 오래도 안걸렸어. 한 삼일만에 그만 전부 다 죽었어.


면담자 그러니까 음력 윤칠월 이십칠일 잡혀가가지고 이십구일 돌아가신 겁니까?

구술자 그렇죠. 


면담자 그럼 그 때 마을 총 가구수가 몇 가구나 되었습니까?

구술자 이 동네 하고, 여기 안치라고일라고 있는데, 두 동리가 아마 30호? 한 30호 이상 됐을거요.


면담자 그러니까 바깥치라골하고 안치라골 하고 다 합쳐서 30호 정도. 30호 중에서 열 여덟가구가 다 잡혀갔단 말입니까?

구술자 죽은 사람은 십칠명이제. 잡혀간 사람은 열여덟이 잡혀갔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나왔어요. 한 사람이 살아나왔는데, 그 사람이 경호생인데, 올해 칠십아홉인가.


면담자 지금 살아계십니까?

구술자 아, 한 칠팔년 전에 죽었고마. 칠팔년 전 죽었는데. 그 분이 평소에는 자기가 같이 갔다가 자기 혼자 살아나왔으니 좀 그런 얘기를 안하는데, 술한 잔 먹고 나면 그런 얘기를 하는거요. 우리들한테. 그 당시에 그리했다고, 거 죽은, 잡혀간 이야기, 고문 받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 저런 이야길 하는거요.


면담자 그 분 이름이 뭐라고요?

구술자 임기택이.


면담자 임기택?

구술자 네. 근데 전번에.


면담자 그런데 그 때 잡혀간 명목이 빨치산들에게 밥 주고 협력을 했다 그 명목이네요.

구술자 그렇지.


면담자 그래가지고 일차로 어디로 끌려갔습니까. 경찰서로, 아니면 군 부대로.

구술자 처음에 잡아가기는 지서에서 잡아갔고, 지서에서 잡아갖고 경찰서로 넘기고,


면담자 함양경찰서로?

구술자 응, 경찰서에서 두들겨가지고 빨갱이라는 죄목에다가 군인에게 넘겨준거요.


면담자 아, 거기서 고문을 해가지고 자백을 받아서 군인에게 넘겨준거네요.

구술자 하모 하모, 죽이기는 군인이 죽였고.


면담자 군대는 어느 소속인줄 혹시 아십니까?

구술자 남원, 소속이 남원이라고 해. 남원인데 뒤에 들어보니까 34연대니 뭐니 하던데 그게 몇 연댄지 나도 모르고. 사실상.


면담자 그래가지고 윤칠월 29일날 죽었네요. 돌아가신 장소는 어딘지 아십니까?

구술자 거기 저 함양 이인당?


면담자 쓰레기매립장 있는데.

구술자 하모, 거기 보면 도북사람하고 치라골 사람하고 죽은 사람 비가 길가에 서 있어.


면담자 네, 봤습니다.

구술자 거기 도북사람하고 치라골 사람하고 같이 있소.


면담자 딱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그 인근이다 그죠?

구술자 그 당시 이야기 듣기로 아래 위의 구덩이로 그리 죽였다, 장소는 같은 장손데 구덩이만 틀린다.


면담자 17명이 어쨌든 그 한자리에서 당한거네요.

구술자 그렇죠.


면담자 그 다음날 도북사람들 죽은 다음날. 죽인 군대도 똑 같은 군대고?

구술자 그렇지. 내나 남원의 그 군대지.


면담자 총살로?

구술자 그렇지.


면담자 그리고 나서 돌아가신 분들 시신은 언제 수습을 했습니까? 수습을 못했습니까?

구술자 그 당시는요. 고마 아니, 우리는 어렸었고, 부모네들이 자식 죽은 데 거기 가보자 해서 가다가 거기, 그것도 경찰서에 어찌 그리 신고가 빠른고, 그래 가지고 여기 뒤지면 전부 다 죽일 거니 가라 이래갖고 꼼짝도.


면담자 접근을 못하게 했네요? 경찰이?

구술자 하모, 그렇게 안했으면 시신이라도 찾제. 그 당시는 뭐. 어찌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빨갱이를 죽였다 이리 된거라. 그러니까 죄인, 말하자면 반역자 아닌가배? 빨갱이를 죽였응께. 그래가지고 시신 찾고 그런 생각도 하지도 못했고.


면담자 그러면 열 일곱명 돌아가신 분들 성함은 다 있습니까?

구술자 있제.


면담자 돌아가신 분들 유족들이 모여서 유족회라든지 그런 걸 구성한 건 있습니까?

구술자 했제. 한 삼 년 넘게 됐나?


면담자 회장은 누가 맡았습니까?

구술자 회장은 처음에 날보고 맡으라 해서 안할란다 했는데, 명칭은 날 넣어놓고, 내 당질이 임채길이라고 저 산청 살고 있거마는. 네가 해라. 실제 일은 내 당질이 하고 있지.


면담자 이름이?

구술자 임채길이라고, 산청 택시회사도 하고 있고 거기 산청에 잔잔한 가옥들도 몇 개 갖고 있거마능.


면담자 돌아가신 형은 성함이?

구술자 임한택이.


면담자 그 당시 몇 살이었습니까?

구술자 그 당시에 스물 두 살.


면담자 그 당시에 집에 어른은 안계셨습니까? 부친은?

구술자 왜 없어. 우리 부친, 조부님 다 계셨지.


면담자 그런데 임한택 어른은 당시 결혼한 상태였습니까?

구술자 결혼해가지고 한 2년 됐던가.


면담자 재금이 난 상태였네요?

구술자 아니지, 한 집에 같이 살았지.


면담자 그런데 왜 집에 어른이 안 잡혀가시고 형이 잡혀갔습니까?

구술자 그 때는 죽은 사람이 다 스물 두 살 세 살 그런 정도지 나이많은 사람은 (없었지) 삼십대 미만으로 아까 내가 이야기한 것이 두 번째로 잡혀갈 때 경찰서에서 삼십대 미만이 몇이나 있느냐, 그때 명단을 전부 누구누구 몇 살 먹은 거까지, 그래갖고 잡아간기라.


면담자 혹시 그 당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중에서 이 동네 출신도 있었습니까?

구술자 없었지.


면담자 도북 사람들은 있었다고 하던데.

구술자 하모, 도북은 있었제. 도북도 있고 저기 가성도 있고, 그렁께 내나 다 이 부근 사람들이라.


면담자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의 숫자가 얼마나 됐는지는 잘 모르십니까?

구술자 모르제.


면담자 그 때 군대가 와서 빨치산들하고 전투도 하고 했습니까?

구술자 아이가. 전투라니.


면담자 없었나요?

구술자 없었고.


면담자 그럼 애매하게 주민들만 희생을 당한거네요.

구술자 군인들은 어쩐게 아니라 경찰을 시켜서 하여튼 두들겨패서 빨갱이 심부름했다 동조자가 그거만 받으면 빨갱이로 그걸 갖다가 서류를 해가지고 군인에게 넘겨주면, 군인은 어쩌는게 아니라, 그건 내가 뒤에 소문을 들으니까 그랴. 이 이박사에게 보고를 하기를 사실상 양민 죽이는데, 오늘 빨갱이 몇 몇 잡았다 이리 보고를 한다네.


면담자 전과로 보고를 하는 거군요.

구술자 그렇지. 빨갱이 몇 명 잡았다 이리 보고를 한다는거야. 그러면은 그 성과가 자꾸 올라간다는거여. 아 이놈들이 그래서 그렇게 했는가, 사실상은요, 내가 전번에도 그런 얘기 했소만은 진실위원단인가 그 사람한테, 광주사태 난 것이 그 정권 잡기 위해서 났고, 사실상은 여기 해방직후 질서가 나라에 안 잡혀가지고 어수선할 때 죽은 사람들이 빨갱이 동조자가 이래갖고 죽였고, 그 뒤에는 이 보도연맹, 보도연맹 조직하기를 내나 정부에서 조직해가지고 그걸 놔두고 후퇴를 하면은 인민군에게 도움이 될거다 하는 거기서 다 죽였고, 말하자면 정부 질서를 잡는데 희생양이다. 앞서 빨갱이로 죽은 사람들 전부 다. 그 사람들이 왜 빨갱이. 무슨 죄고 말이제. 그런 걸 갖다 정부에서도 뻔히 알건데, 조사받고 지랄하고, 해줄 마음이 없으면 아예 치우제. 억시 그걸 가지고 팔자 고칠 일도 아니고, 사람들이 의리가 있제, 그런 식으로 하면 감정이 더 생겨여. 차라리 양민회복을 해주고, 그러면 양민회복을 해주면 틀림없이 너 보상해내라 이렇게 할 것 아닙니까? 그럴때는 그 당시에 정부시책이 그랬었고, 좀 줄여서 이름이라도 걸어가지고 그러는게 낫제, 어째서 그 때 사람들이 죄가 있니 없니, 그런 멍청한 놈의 자슥들, 노무현이가 그 당시에 집권당에 숫자가 많고 적으나 그렇게 했으면 그때 해결을 했을낀데 집권당이 숫자가 적으니 그 때 해결을 못하고 어수선하게 있다가, 지금 이명박씨가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줄낀데, 그걸 갖다가 무슨 묻고 어쩌고 참 한심합니다. 내가.


면담자 그럼 지금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뭡니까?

구술자 아, 양민,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질서를 잡는데 희생양이라. 그런데 죽였으면 그 사람들 양민회복 시켜주고.


면담자 그러니까 죄없이 죽은 사람들에 대해 명예회복을 시켜주고?

구술자 그래 명예회복을 시켜주고, 그 뒤에 보상문제는 줘도 좋고 안줘도 좋은데, 그래도 안 주려고 하면 그것도 경우가 아니니 이름이라도 걸어주고 그렇제. 어째서.


면담자 이름이라도 걸어준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구술자 금액은 적더라도 다문 얼마라도.


면담자 상징적으로라도?

구술자 하모, 그런식으로 해야지, 어째서 그 당시에 대한민국에 질서가 안잡히고 어수선할 때 희생양으로 죽인 사람들을 어째서 죄가 있니 없니, 이걸 묻고...


면담자 그 때 돌아가신 형은 자식이 있었습니까?

구술자 결혼하고 한 2년 됐으니 형님이 죽고나서든가 여식애가 하나 태어났어. 그런데 사람 죽이고 나서 어쩌는게 아니라 음력 윤칠월 이십구일날 죽였는데, 2일만인가 소개를 시켰어. 저기 큰동네로. 완전히 동네를 싹 다 비웠소.


면담자 어느동네로 갔습니까?

구술자 여 아랫 동네,. 교항 오산 이 아래동네. 전부 다 소개를 시키고 동네가 텅비었었소. 그러니 그거 뭐 사는 것도 아니고 아이고.(한숨)


면담자 그러면 남의 집에?

구술자 그렇제. 그 작은 방에, 참 아이고, 거기 참, 그래.(한숨)


면담자 그래갖고 한 몇 개월 정도 남의 동네에 살았습니까?

구술자 윤칠월에 소개해가지고 가을도 그 아래서 거두고, 그 이듬해 농사철 올라왔다가 농사지어가지고 또 소개를 시켰어. 그러니 참.(한숨)


면담자 그러면 남의 동네에서 6개월이 넘게 살았네요?

구술자 그렇제. 두 번 소개를 했으니.


면담자 혹시 그 당시 국군 말고 빨치산에게 피해를 당한 분은 이 동네에 없습니까?

구술자 빨치산에 피해당한 일은 없고, 사실상...사실상 거 빨치산 땜에 당한거지.


면담자 그 이후에 보도연맹으로 피해당한 사람은 없습니까?

구술자 젊은 사람 다 죽어버렸는데 보도연맹 할 사람이 누가 있소? 보도연맹 조직하기 적에 싹 다 죽어버렸는데 뭐.


면담자 그래서 지금 아직까지 열 일곱 분에 대한 명예회복도 안되고 있고.

구술자 그렇지.


면담자 그런데 도북은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합장묘라도 만들어잖습니까?

구술자 그래서 우리도 시신을 찾아보자 이래서 한 번 갔었소. 가서 보니 거기 농지가 되어 있고, 그 주위에 정비손가 뭔가 있고, 통 모르겠어요. 근데 도북 사람 팠다는데, 거 아래 위에 있다고 해서 도북 사람 판 위에 보니, 개울인가 네모가, 위에 물 반듯하니 파가지고 확 패여나갔너니만.


면담자 결국 못찾았네요?

구술자 못찾았지.


면담자 형님 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구술자 죽었제. 소개당해가지고 가을철에, 칠월에 그랬으니, 가을에 추수하러 와가지고 그 쪼끄만걸 눕혀놓고 옷가지 하나 덮어주고 나락을 베는거요. 거기 뙤악볕에 어쩌면...거 참. 그러니 감기가 든거요. 요즘은 의사에게 가고 하지만, 그때는...집이 참, 못죽어서 사는기라.


면담자 그러면 제사는 각자 지냅니까?

구술자 각자 지내지.


면담자 위령제는?

구술자 합동으로 묘도 못했고, 시신도 못찾겠고, 그래서 군수한테, 사실상 우리가 시신을 못찾으면 초혼장이라도 해서 묘지를 조성해야겠는데, 판에다 써서 하는 게 있거마는. 돈도 모아놓은 사람도 없고, 많이도 말고 한 오백만원만 보태달라 했는데, 군수 하는 말이 오백만원이 그리 큰돈도 아니고 보태줄 순 있는데, 그게 무슨 명분이 있어야 된대. 그걸 할려고 하면 군 사회과에 가서 이야길 해가지고 그것이 줄 수 있는 여건이 되면 해주겠다. 사회과에서 이야기해보니,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데, 이게 양민회복이 되면 전부 다 될거니 걱정할 것 없다고...


면담자 그러니까 정부에 다 미뤄버리는 거네요.

구술자 그렇지. 시신만 나오면 기자들 소집해가지고 떠들썩하게 해볼테니 시신을 찾아라 하는데, 시신을 못찾고. 그런데 한 삼년 전 추석인데 비가 많이 와서 수해가 한 번 났었어. 그때 막 떴다는거야. 그 주위에 사람들이,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바가지라고 돌멩이로 패기도 하고, 떴는가 우리가 못찾았는지는 모르겠고....


면담자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도북은 시신이라도 찾았는데.

구술자 지금 우리는 생각이 그렇소. 도북에 서른 둘인가 서인가 그런데, 라면 일곱박스라는데, 훼손이 좀 됐다 하더라도 사실상 일곱박스밖에 안되느냐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도북사람들이야 그렇게 믿든가 말든가 우리뼈가 거기 묻혔다 이렇게 보요.


면담자 섞였을 수도 있겠죠.

구술자 아니 구덩이가 다르니. 그러니까 열일곱도 일곱박스는 더 됩니다. 시신을 담으면, 라면박스에 안접고 편 상태에서 일곱박스라고 하거든, 두구씩 들어가도 이칠이 십사, 한 열 네구. 그러면 우리는 생각이 이렇소. 아이구 뭐 저거 시신이건 우리 시신이건, 우리 시신이 거기 가서 대접 잘 받으면 다행이제 그런 생각만 하고, 일부는 그걸 DNA검사, 그걸 해보자는데 그러면 또 돈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하고 우리하고 또 원수지간 되고. 그럴 필요 있나. 어쨌든 안 뜨고 거기 묻혔으면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면담자 그러면 어쨌든 이 동네선 열 일곱집의 제삿날이 같겠네요.

구술자 그렇지.


면담자 그 열 일곱 집이 다 이 동네 살고 있습니까?

구술자 나갔지.


면담자 떠난 사람들이 많네요?

구술자 많지.


면담자 그럼 몇 집이 여기 살고 있습니까?

구술자 한 대여섯집 되나? 다섯집인가배.


면담자 다른 집은 다 객지로 나갔네요?

구술자 그러니 어지간하면 자식 살던 동네 그만 눈에 좀 안보는 게 낫다. 그래가지고 막 뜬기요.


면담자 혹시 그 일로 죄인취급 당해 자식들 출세에 피해 입은 게 있습니까?

구술담자: 피해 입을 게 없지. 입을 게 없는 게 그 당시는 집이 벌써 망했거든. 망할 대로 망했지. 먹고 살기에 바쁘고, 공부라는 건 생각도 못했어. 그래서 뭔가 좀 고위직에 앉아야 피해를 입든지 말든지 하지. 밥먹고 살기 위해 허덕이는데 거기 뭔 피해를 줄거요. 그 자녀들이 다 먹고 사는데 근근히 그리 지냈지, 공부해갖고 무신, 그런 거 어찌 생각하요. 그런 건 없었지.


면담자 혹시 더 하고픈 말은.

구술자 그래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사실상 우리가 여기서 그래봐야 구들방에 앉아서 저 정부에 눈흘기는거요. 아무 소용없는거요. 소용없고. 그나저나 내가 생각하는거는, 진실조사 뭐 위원단? 그분들 활동비가 있는 모양인데, 활동비가 뭐 줄어들었단 말도 있더만, 사실상 그 활동비 그거 보고 다닐려고 해서는 이거 규명 못합니다. 그 뭐 의지가 좀 있어갖고 그리 해야 하지, 그 뭐 요새 활동비 줄었지, 나온다고 해서 활동비 보탤 사람 없지. 그래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아까 임기택이 살아나왔다고 했는데, 그분이 살아나온 이야기를 저번에 진실규명 위원단인가 와서 그 사람에게 그런 이야길 했어요. 그 사람이 잡혀가가지고 16명은 죽이려고 차에 태우고, 1명은 사는 길로 나왔다. 그 사람을 누가 살렸느냐 묻더구만. 그래서 임주례라고 당시 형사대장이라 카는데, 우리가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형사대장이라 하더라. 그러면은 그 분의 가족이 있느냐. 형사대장이라는 사람. 가족도 없고 자기 부인은 있는데를 아는데, 그런데 부인도 형사대장과 오래 산 것도 아니고 도중에 헤어졌다더라. 그런데 살고 있는 데를 안다. 그러니 그러면 그걸 알려달라 하더라, 자기에게. 자기들이 열 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것이 증거로 중요하니까. 말하자면 경찰서까지 가서 잡혀갔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아니냐. 이 사람이 거기서 빠져 나왔기 때문에 확실한 것 아니냐. 그래서 전화번호랑 알아서 알려드리죠 하고 그 이일날까지 조사를 받았어. 살려줬다는 임주례의 안식구가 내나 이 동네 사람이라. 이 동네에 자기 친정조카가 아직 있어. 그 조카에게 물어 주소를 알아서 그 사람을, 그 부인을 데리고 조사하는 그분에게까지 데려와서 사실을 물어봐야겠다고 하여. 밥을 먹고 임주례 안식구 사는데 찾아간다고 차를 타고 가는데, 임채길이라는 내 당질이 진실위원단인가 이 뭐라는 (이원균?) 그 사람이 뭐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데리고 오면 데려오는 도중에 그에게 돈을 주고 유리한 쪽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법에서 인정이 안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타고가다가 나는 내렸다. 주소하고 그거는 다 가르쳐 줬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거기 찾아갔는지 안갔는지 궁금한거야. 명함을 하나 받았는데, 그게 궁금해.


면담자 열 일곱 명 중에서도 한 명 살아난 사람이 있다는 겁니까?

구술자 아니 열 여덟명 중에서.


면담자 그러면 살아난 사람이 임기택 어른을 살려준 사람이 그 형사대장이란 말입니까?

구술자 그렇지.


면담자 그 형사대장은 임기택씨를 어떻게 알고 풀어준 겁니까? 돈을 쓴 겁니까?

구술자 뭘 돈은 썼는지 모르겠고, 임기택하고 형사대장하고는 맺어진 처남 남매간이라. 임주례의 안식구라는 사람이 여기 살았는데, 임기택하고 임주례 안식구와 동갑이라. 임기택이라는 사람이 낳고 나서 자기 엄마가 젖이 없어. 그래서 임주례 안식구와 젖을 같이 먹고 큰 거여.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은인이지. 그래서 처남 남매간으로 맺어진 인연인데.


면담자 그러니까 형사대장은 죽었고, 그 부인은 살아있는데...

구술자 그렇지, 그런데, 이 증거라고 한 그 분이 그 부인에게 안 찾아간 거요. 이게 중요한 증거다 이렇게 해놓고, 그런 게 있으면 우리가 직접 찾아간다 해놓고 안 찾아간 거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 활동비만 받아먹고 다닐라 해서는 안 된다 그말이요. 그런 게 있으면 자기가 직접 가서 알아보고 해야지, 그래가지고 되느냐 이 소리요. 그런 참, 일을 맡았으면 정직하게 밝혀봐야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지.


면담자 그 부인이라는 분이 함양에 있습니까.

구술자 저 남원에 있지.


면담자 아마 가보려 했는데 연락이 안 됐든지 그러지 않았을까요?

구술자 연락처는 다 있지. 저녁에 친정 조카라는 사람과 나, 내 당질과 전화를 했는데, 우리가 아니고 친정 조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지. 그랬더니 내가 뭐 아무것도 모른다. 그 당시에 죽어나가는 마당에 당주양반이, 임기택이 어른 택호가 당주양반이라. 당주양반이 이야기해서 그 때 빼줬다 하더라. 그래 그거면 증거가 되거든? 친정 조카가 그러는거야. 당주양반이 이야기해서 빼줬다 하네. 그게 증거지.


면담자 이번에 우리 조사원이 왔을 때는 가르쳐 줬습니까. 김준순씨.

구술자 그 얘기까진 안했는가 모르겠구만.


면담자 그러면 그 전화번호를 아직 갖고 있습니까?

구술자 나는 안 가지고 있어도, 내 당질은 가지고 있을 꺼구만.

(※추후 확인 결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임주례의 부인 증언을 확보했다고 함)

(인터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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