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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⑤백성이 권력 이긴 첫경험 4월혁명을 낳은 3·15의거 지금부터는 마산 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3·15의거를 알아보도록 해요. 어른들은 3·15에 대한 기억들이 생생해요. 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말로만 들었지 아득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세히 한 번 살펴보자구요.(친구들 집중 집중!!) 3·15의거는 1960년에 일어났어요.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 58살이니 어느새 60년 전의 역사가 되었군요. 친구들은 3·15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지요? 김주열~~(우와 완전 짱~~!!) 이승만요!! 하고 답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구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1948년 대통령이 되고 난 후 2대 3대까지 대통령을 했어요. 이제 그만~~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의 욕심이란.. 더보기
3.15마산의거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인가? 지난 1962년 건립된 마산시 합포구 신포동 3·15회관(지금은 철거되고 없음)의 전면에는 모두 12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기둥이 하필 12개인 것은 1860년 3·15마산의거 당시 경찰이 쏜 총탄에 학살된 12명의 열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12열사가 아니라 사실은 14열사 이들 12열사는 김영호(당시 19세·마산공고)·김효덕(19·직공)·김용실(18·마산고)·김영준(20·무직)·전의규(18·무직)·김삼웅(19·무직)·김영길(17·직공)·오성원(20·구두닦이)·김주열(17·마산상고)·강융기(19·마산공고)·김평도(38·점원)·김종술(16·마산동중) 등을 가리킨다. 이들 중 김영길 열사는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떠오른 날 밤 경찰과 대치하던.. 더보기
잊지 말아야 할 악질 경찰 2명 공개합니다 두 악질 경찰과 두 독립운동가 4·19혁명 55주년이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이기도 하다. 일제 때 ‘아라이 겐기치(新井源吉)’라는 아주 악질 헌병보조원이 있었다. 부산헌병대에서 신상묵(신기남 전 국회의원의 부친)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 악랄한 고문을 자행하기로 유명했다. 다음은 해방직후 반민특위 조사기록 중 한 대목이다. “곤봉, 죽봉, 죽검 등으로 난타하고 2, 3일간 굶기거나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화로를 머리 위에 들고 있게 하고, 두레박줄에 묶어 깊은 우물 속에 담구거나 이른 아침에 방화용 수조의 꽁꽁 언 물을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깬 후 결박한 채로 얼음물에 앉히고는 머리부터 빙수를 내리붓고는 거꾸로 매달아 전신을 얼음굴에 처박곤 했습니다. 이로써 실신하면 부채질이.. 더보기
4.19 원흉 최남규는 일본경찰 출신이었다 대개 3.15의거나 4.19혁명 등 시민항쟁에서 시위대에 총질을 하거나 고문을 가한 악질 경찰관들의 전력을 찾아보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경찰 출신들이 많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악질 경찰 박종표도 그런 케이스였죠. 그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이미 포스팅했으니 참고하시고... ☞친일헌병 박종표는 김주열 살해한 원흉이었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당시 경남경찰국장으로 3.15부정선거를 지휘한 주범이자, 3.15 마산의거 당시 시민들을 살해하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최남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15와 4.19로 이어지는 혁명 과정에서 최남규의 지휘를 받은 경남 경찰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한 번 보시죠. 1960년 당시는 경찰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3·15 이후 부산지검 한옥신 부장.. 더보기
3월에 생각해 보는 3·15기념사업회 3월 8일 금요일 저녁에 3·15의거 기념일을 앞두고 이은상과 3·15의거기념사업회를 얘기해 봤습니다.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에서였습니다. 제가 김상헌 기자랑 하는 이 꼭지를 두고 ‘세상 읽기’라 하는군요. -------------------------------- 김상헌 : 3월입니다. 3월이 왔습니다. 날씨가 예전 같지 않게 확 풀렸습니다. 거리에는 화사한 옷차림들이 꽤 넘쳐나는데요, 창원에 사는 사람들 마음 한 쪽 구석에는 어째 좀 찜찜하고 신산한 느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김훤주 : 5월이 광주에서 특별하듯이 우리 창원의 마산에서는 3월이 특별합니다. 1960년 3월 15일 3·15의거가 마산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엄청난 부정 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마산시민들이 들.. 더보기
누나의 3월 : 비루한 욕망과 남루한 폭력 1960년 마산 3·15 의거를 다룬 이 18일 밤 전국 방송을 탔습니다. 3월 27일 마산MBC 권역 방송을 했을 때 전국 방송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4월 혁명 기념일 4월 19일을 하루 앞두고 이렇게 방송에 나왔습니다. MBC가 고맙군요. 저는 3월 26일 마산 MBC 아트센터에서 한 시사회에 가서 봤습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정식 방송으로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전국 방송에 때맞춰 당시 제게 들었던 느낌을 좀 얘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잘 짜인 드라마에서 50년 전 상황을 아주 잘 구현해 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엉뚱하게도 제 감수성이 시대에 뒤떨어졌음과, 욕망에 대한 남자의 비열함과, 폭력에 대한 인간의 남루함을 느꼈습니다. 1. 시대에 뒤떨어진 나의 .. 더보기
'누나의 3월'에 나온 용공조작, 사실은 이랬다 어제(18일) 밤 10시 40분 MBC를 통해 4·19혁명 50주년 특집극 '누나의 3월'이 전국에 방송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송 직후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에서 실시간 인기검색어로 '누나의 3월'이 올라오는 등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우선 드라마에 나온 내용 중 시위학생과 시민을 용공으로 몰았던 당시 이승만 정권과 경찰의 행태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다시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드라마에서는 '학생들의 호주머니에서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쓴 비라가 나왔다'는 말이 잠깐 지나가듯이 나오는데, 자칫하면 실제 그런 비라가 나왔던 걸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전말을 알려드릴 필요도 있겠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가상인물인 누.. 더보기
드라마 '누나의 3월' 리뷰에 앞선 메모 -드라마를 보면서 울었다. 중반부터 계속 삐질삐질 눈물이 나왔다. 끝까지 눈알이 쓰라렸다. -역사고증을 철저히 했다. 특히 주요한 핵심 인물(박종표 친일, 오성원 구두닦이, 다방레지 등 민중, 그리고 학생, 민주당원, 기자, 경찰서장) 제일여고 학생회장 노원자 등을 잘 배치했다. 주인공인 누나 양미, 동생 양철은 가상인물, 실재인물과 가상인물을 적절히 잘 배합했다. -권찬주 여사, 김주열, 그의 형 광열, 친구 김용실도 잘 형상화했다. 다만 권찬주 여사는 극중인물보다 실제 인물이 훨씬 반듯하게 잘 생겼다. 권 여사의 얼굴을 아는 사람으로서 약간 아쉬웠던 점이었다. -그 외에 아쉬운 점은 검찰지검장 서득룡, 서울신문 기자 이필재 기자, 국회의원 이용범, 사찰계장 강상봉 ... 등 진짜 원흉들 형상화 한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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