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금요일 저녁에 3·15의거 기념일을 앞두고 이은상과 3·15의거기념사업회를 얘기해 봤습니다.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에서였습니다. 제가 김상헌 기자랑 하는 이 꼭지를 두고 ‘세상 읽기’라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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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 3월입니다. 3월이 왔습니다. 날씨가 예전 같지 않게 확 풀렸습니다. 거리에는 화사한 옷차림들이 꽤 넘쳐나는데요, 창원에 사는 사람들 마음 한 쪽 구석에는 어째 좀 찜찜하고 신산한 느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김훤주 : 5월이 광주에서 특별하듯이 우리 창원의 마산에서는 3월이 특별합니다. 1960년 3월 15일 3·15의거가 마산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엄청난 부정 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마산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 김주완 선배 사진인 듯^^


헌 : 그렇지요. 특히 4월 11일에는, 지금 마산중앙부두 자리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고등학생의 주검이 떠올랐어요. 3·15 당시 시위 과정에서 사라진, 당시 마산상고 그러니까 지금 용마고등학교가 되겠습니다만, 그 학교의 신입생이었던 김주열 열사였어요.

주 :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고 그 모습이 신문에 사진으로 실리면서 부정선거 규탄 데모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지요? 그게 4월 19일 4·19의거로 이어졌고 결국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일주일 뒤인 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해방 이후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었고 또 주권자인 국민이 독재지배자에게 최초로 승리한 대사건이었습니다.


헌 : 그런 빛나는 승리의 이면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3월 15일 당일 저녁 7시 30분에 시위가 시작됐는데, 시위군중이 1만명을 넘어서면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사격을 하는 현장에서만 7명이 목숨을 잃었고 870명이 크고작은 상처를 입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누나의 3월에 나오는 누나 양미와 악질 경찰 박종표. 마산mbc 제공.


누나의 3월에 나오는 시위 모습. 마산mbc 제공 사진.


주 : 세 해 전에 MBC경남이 엄청난 일을 해냈는데요, 바로 3·15의거를 기념하는 2부작 드라마를 특별 기획한 것입니다. 제목이 <누나의 3월>이었는데, 3월 26일 당시 마산MBC를 통해 처음 방영됐고요, 4·19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4월 18일에는 전국으로 방송이 됐는데요, 시청률이 7.8%로 아주 높은 편이었지요?


완성도도 높았습니다. 3·15 의거를 정면으로 다루고 실제 모습 그대로 그려내면서도 재미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서울이 아닌 지역MBC에서는 이런 일은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MBC경남이 진짜 큰 일을 해냈습니다.


헌 :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낯이 좀 뜨거워지기는 합니다만, 듣기가 싫지는 않습니다.


주 : 그렇게 특별 기획할 만도 했습니다. 2010년 그 해는 3·15의거가 일어난지 50년이 되는 해였거든요. 그에 더해 3·15의거기념일이 전에는 경상남도 기념일이었는데 2010년부터는 정식으로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는 국가기념일로까지 승격된 3·15가 위협을 받고 흔들리게 됐습니다. 바깥에서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헌 : 마산역 광장에 들어선 이은상의 가고파 시비 때문이죠? 철도공사가 땅을 대고 국제로타리클럽이 돈을 내어 만들었다는…….

경남도민일보 사진.


주 : 예, 저는 마산역의 일개 역장이 이렇게 한 도시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헌 :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좀 알는지 몰라도 청소년들은 이은상이라는 인물을 잘 모를 수 있을 텐데, 좀 소개해 주시죠. 또 이은상이 3·15의거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까지 함께요.


주 : 이은상이 마산이 낳은 훌륭한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은 사실이지요. 전국 문인 단체인 한국작가회의에서는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문인 가운데 뚜렷한 자취를 남긴 사람을 찾아 재조명하는 행사를 해 왔는데요, 이은상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해인 2003년에 그런 재조명을 이은상이 받기도 했거든요.

특히 시조를 잘 지었고요, 나중에 일본의 전통 시가인 하이쿠와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양장시조 형식을 개발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가고파 말고도 <봄처녀>가 널리 알려져 있고요.


어쨌든 간단하게 소개해 올리면 이렇습니다. 1903년 마산에서 태어났고 호는 노산입니다. 지금 노산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지요.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나 친일 잡지인 <조광> 주필을 지냈고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8·15해방으로 풀려났습니다. 그 뒤 여러 대학에 교수로 재직했으며 1959년부터 충무공이순신장군 기념사업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등을 맡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2010년인가 열린사회희망연대의 이은상 관련 사진전.


1967년 시조작가협회장·한글학회 이사를 지냈고, 1969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1976년 박정희 독재정권에 앞장섰던 쌍용양회 회장 김성곤이 만든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유신독재의 기구 가운데 하나인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을 맡았습니다.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 국정자문위원을 했지요. 그리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헌 : 참 화려하게 살았네요. 일제 강점기 탄압을 받은 것만 빼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그 어려운 시절에 하나같이 높은 대접을 받는 자리에 있었어요. 이런 이은상이 3·15의거를 깎아내리기까지 했죠?


주 : 그렇습니다. 1960년 4월 15일치 <조선일보>에서 3·15를 모독했습니다. 4월 11일 김주열의 주검이 바다에서 떠올라 2차 의거가 진행되던 때에 3·15의거를 두고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다! 불합리와 불법이 빚어낸 불상사다!"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재자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켜 3·15의거와 4·19혁명을 짓밟은 다음에는 박정희의 하수인 정당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 제정 이후에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며 독재정권을 미화·찬양했습니다.


더 나아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에는 <정경문화>라는 월간지의 9월호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에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 여론"이라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듬해 4월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돼 1982년 숨질 때까지 위원직을 유지했습니다.


말하자면 이은상은 자기 글로 마산시민의 피가 어린 3·15의거를 부정하고 모독했습니다. 3·15를 부정하고 들어선 박정희 독재정권에는 협력하고 아부하고 미화·찬양했습니다. 그렇게 한 덕분에 좋은 자리를 골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헌 : 3·15의거를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더럽힌 문인이고 더 나아가 3·15의거와 4·19혁명을 짓밟은 정권에 부역한 문인의 시비가 마산역에 들어선 셈이죠. 그것은 아무래도 이은상이 이룬 문헉적 성과가 어떻든 관계없이 사회적·역사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라 할 수 있겠어요.


주 : 그렇지요. 그런데 정작 3·15의거기념사업회 변승기 회장이라는 분이 이런 이은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민 운동하는 운동권보다 더한 전사가 돼서 노산 이은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더욱이 변 회장은 3·15의거 당시 다리에 총상을 입기까지 한 분인데 말입니다.


헌 : 사실인가요? 어제 보도를 보니까 문제의 그 회장님이 문제가 된 공식 모임 자리에서 "당시 분위기도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추측에서 나온 낭설"이라고 부인을 했던데요.


주 : 예, 저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문제가 된 그 자리에 변 회장과 동석을 했다는 문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는데요, 그랬더니 변 회장으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변 회장이 자기 발언을 부인했다는 보도를 보면 그 자리에 있었던 문인들은 모두다 변 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손바닥으로 자기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헌 : 제가 알기로는 변 회장이 시를 쓰는 문인이기도 한데요, 마산문인협회 소속이죠? 마산문협은 3·15의거기념사업회와 유난히 관계가 돈독하잖아요. 3·15의거기념백일장 같은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으로 말입니다.


주 : 그러니까 이게 거의 정신분열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지요.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노릇을 문인들 그리고 문인단체가 하고 있습니다.


마산문협은 마산문학관을 이은상의 노산을 따서 노산문학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이은상을 기리는 데 목숨을 내걸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회원 112명 가운데 97.32%인 109명이 '노산문학관'에 찬성하고 반대는 3명뿐이다"라고 공개도 했습니다. 찬성 가운데 43명은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아" '묵시적 동의'로 '간주'된 숫자였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은상이 모욕하고 깎아내렸던 3·15의거를 기념하는 백일장 행사 주관은 이 단체가 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 상상력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헌 : 이번에 마산역 이은상 가고파 시비가 문제가 되니까 이 문인들도 적극 들고 나왔지요. 지난 4일 월요일 마산문협을 비롯해 창원문협·진해문협 등 지역의 스물다섯 개 문인단체가


'이은상 선생을 사랑하는 지역 문인단체'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그러면서 이은상을 애국지사요 민족시인이라 떠받들었습니다.


주 : 또 이은상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에 부분적으로 협조하게 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3·15를 마산 데모로 걱정하면서 불법으로 언급한 것은 긴박한 상황에서 학생 등 양민의 희생을 줄이고자 원로로서의 염려 이상의 언급이 아니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다 좋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율배반만은 하지 말라는 것이죠. 3·15를 욕보인 이은상을 찬양하는 그 입으로 이은상이 욕보인 3·15의거를 기념하는 백일장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 같은 떡고물에 입을 대지는 말아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이중으로 3·15의거를 모독하는 것이 바로 이런 문인단체입니다.


헌 : 바깥으로는 마산역장이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치밀한 의도에 따라 마산역 과장에 이은상의 가고파 시비를 세운 것이 3·15의거에 대한 위협이고 도전이라면, 안으로는 바로 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이 이은상을 지켜야 한다고 공언한 것이 바로 그런 위협이고 도전이 되겠군요.


주 : 이렇게 안팎으로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진보적인 문인단체라는 평을 듣는 경남작가회의는 아직 공식적인 움직임을 별로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난 4일 기자회견에 이름을 올린 문인단체들 면면을 보니까, 경남작가 구성원이 주도하고 있는 데도 있더라고요.

어쩌면 이른바 문인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기대를 접는 편이 속이 편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헌 : 이런 가운데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에 유치하자는 움직임이 다시 가시화되고 있지요? 지난 6일 '한국민주주의전당 마산유치추진위원회'가 결성돼 기자회견까지 열었잖아요? 여기 공동위원장으로 앞에서 말한 변승기 회장과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앞 줄 가운데가 변승기 회장. 그 왼편이 김오영 도의회 의장.


주 : 우습지요. 도의회가 민주주의와 3`15를 위해 무엇을 했다고, 그 의장이 이름을 올립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민주주의전당 마산 유치를 공약해서 그러는 것인가요?

변 회장도 참 딱합니다. 3·15를 모독했을 뿐 아니라 3·15를 짓밟고 들어선 박정희 독재정권에 빌붙은 이은상을 운동권보다 더한 전사가 돼서 지켜야 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바로 그런 독재정권에게 고통을 받은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전당을 유치하겠다고 하니 말씀입니다.


헌 : 전라도 광주와 서울에서도 유치 운동이 일고 있죠? 광주 유치는 200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것이고, 서울 유치는 남산 옛 안기부 자리에 들이세우자는 얘기라고 들었는데…….


주 :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마산에 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 정신과 반독재의 기상이 있는 곳에 민주주의전당이 들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산 3·15는 이미 이렇게 안팎으로 망가져 있습니다. 뼈도 살도 있지 않고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그나마 10.18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헌 : 4·19혁명을 기린 시인 신동엽의 시가 생각나는군요.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고 했었지요. 3·15도 이제 이렇게 껍데기가 되고 말았나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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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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