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뭔가 아쉬운 지역 촛불집회, 이유는?

기록하는 사람 2009. 6. 11. 10:05
반응형
지금 이런 글을 쓰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의식하고 눈치보면서 블로그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본대로, 느낀대로 씁니다.

10일 서울에서 6·10 범국민대회가 열린 비슷한 시간대에 전국의 각 시·군에서도 6월항쟁 계승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제가 사는 마산에서도 '6월항쟁 계승 민주주의 회복 마산시민 촛불문화제'가 '6월항쟁계승 마산시민촛불문화제 행사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습니다.

원래 공지된 집회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회사 일을 마치고 8시에 가까워서야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는 그야말로 철저히 고립된 지역입니다. 2차선 도로에, 아래로는 남성동파출소(지구대)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가로막고 있으며, 뒤로도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나가려면 한참을 걸어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갔지만, 그제서야 집회가 막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직은 집회에서도 '코리안타임'이 확실히 적용됩니다.

10일 저녁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6월항쟁 계승 민주주의 회복 마신시민 촛불문화제.

가로로 앉은 사람의 숫자와 세로 줄의 숫자를 세어서 곱셈을 해봤더니 대략 300여 명이 참석했더군요. 물론 마산에서는 이 정도도 많이 모인 편입니다. (창원 집회에 참석한 아는 분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거긴 약 500명이 모였다고 하더군요.)


(무대라고 해봤자 펼침막 한장과 음향시설이 전부지만) 집회 대열 맨 앞쪽 무대 뒤에는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서서 지켜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오늘 가두행진도 하나요?"

정보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두행진은 없습니다. 오늘 경남 열 한 군데에서 촛불집회가 열리는데, 가두행진을 하기로 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주최측과 그렇게 합의를 한 건가요?"

"그렇죠."

"그래도 갑자기 가두행진을 하겠다고 밀어부칠 가능성도 있잖아요."

"아,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갑자기 그렇게 밀어부치면 막을 경찰병력도 없잖아요. 다 서울 가버렸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죠. 그래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10일 마산 집회에는 마산 수정만 매립지 조선소 설치를 반대하는 수녀님과 주민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렇게 정보형사와 대화를 마치고, 참석인원 수를 나름대로 세어보면서 집회대열 후미로 되돌아갔습니다. 거기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지금 마산 근교의 농촌지역인 함안군에 사는 분입니다. 마산에서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왔다가, 집회가 열린다기에 분위기를 보러 왔답니다.


"이래 갖고는 안 되겠네요. 함안서도 촛불집회하면 이 정도는 모이는데, 마산에서 이렇게밖에 안된다면…."

"그래도 지금까지 마산서 열린 촛불집회 치고는 많이 모인거예요. 오늘 창원에는 500명 정도 모였다는데."

"혹시나 87년 6월항쟁 때의 분위기가 좀 나려나 싶어서 와봤더니, '역시나'네요."


사실 제 느낌도 그랬습니다. 맥이 많이 풀려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6·10항쟁기념일이니까, 그리고 전국 다른 지역에서도 하니까 그냥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의례적'인 분위기도 느껴졌습니다.

나름대로 그동안 지역현대사를 공부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온 저로서는 오늘의 마산 촛불집회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오히려 집회 주최측보다는 경찰이 1987년 6월항쟁 때의 교훈을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87년 6·10항쟁 당시 마산에선 3·15기념탑 앞에서 시작된 집회대열이 육호광장과 마산종합운동장을 거쳐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으로 행진했었습니다. 10일에도 경찰은 마치 당시의 행진 루트를 의식한 것처럼, 창동에서 마산종합운동으로 통하는 육호광장쪽에 얼마남지 않은 경찰병력을 차량 2대에 대기시켜놓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쉬운 게 바로 그것입니다. 적어도 '6월항쟁 계승' 집회라면 집회장소부터 22년 전의 첫 집회장소였던 3·15기념탑 앞 광장(상당히 넓고, 고립된 장소도 아닙니다.)에서 시작하여, 6월항쟁 당시 집회가 절정에 이르렀던 마산공설운동장과 어린교 오거리를 거쳐 수출자유지역(자유무역지역) 후문까지는 행진을 하는 걸로 잡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길을 걸으면서 6월항쟁 당시의 정신과 의분을 다시금 상기하고,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게 '계승 집회'의 목적에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10일 마산집회는 서울광장에서 한참 열기가 무르익고 있던 9시 30분, 그냥 싱겁게 '자진해산'하고 말았습니다. 참석했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인근 술집에 들어가 소주나 맥주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10일 마산 촛불문화제 참석인원은 300여명. 이 정도면 마산에서 많이 모인 것이다.

제가 볼 때 MB경찰은 '지역촛불'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기 전략'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건 작년 촛불정국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집회를 열든, 행진을 하든 그냥 내버려두는 겁니다. 그게 단순한 행진을 넘어 각목이 나오거나 돌멩이가 날아드는 '명백한 폭력집회'로 나아가지 않는 한 그냥 무시하는 겁니다.


어차피 전국 모든 지역의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현재의 경찰병력 숫자로 무리입니다. 서울로 진압경찰을 거의 모두 차출해 가버린 상태에서 사실 다른 지역은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언론의 촛점이 집중된 서울만 차단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역은 또 이렇게도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면 "그럼 네가 주최측에 들어가 그렇게 해보지"라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기자이자 블로거일 뿐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써본 글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