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이 쓴 <살림의 경제학>과 윤혜신이 쓰고 김근희·이담이 그린 <살림살이>를 우리 <경남도민일보>에 소개한 기사를 조금 고쳐 써 본 글입니다.
이야기하듯 풀어낸 세간 도감 <살림살이>
자본주의의 대안과 공생 <살림의 경제학>
살림살이는 사전에서 찾아보면 ①살림을 차려 사는 일 또는 ②숟가락·밥그릇·이불 따위 살림에 쓰는 세간이랍니다. 이 살림과 살림살이를 내건 책 두 권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살림의 경제학>과 <살림살이>가 그것이지요.
1. '돈벌이' 경제학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으로
<살림의 경제학>은 2008년 2월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탄 데서 시작합니다. 알려진대로 한 노인이, 자기 집과 땅에 대한 보상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사건입니다. 지은이 강수돌은 숭례문이 불탄 원인이 돈벌이 패러다임에 있다고 잘라 말하고 있답니다.
돈을 두고 벌이는 아귀 다툼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런 현실은 그대로 두고 강력 처벌 철저한 관리 따위를 읊조리는 일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현실은 "돈벌이 논리 위에 사다리 (오르기) 질서로 움직이는 경제"이며 그 자체로서 '죽임의 경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강수돌은 그래서 돈 벌이를 가장 으뜸 가치로 여기는 지금 이 세상을 두고 "억압과 착취, 기만과 파괴를 일삼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건강하고 온화한 관계뿐 아니라 사람의 내면과 정신까지 파괴"한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만악(萬惡)의 근본이라는 얘기랍니다.
이런 가운데 강수돌이 '살림의 경제(학)'을 낸 목적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접해도 현실로 돌아오면 또다시 불확실성과 불안함, 두려움과 혼란함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이웃에게 삶의 줏대를 똑바로 세우고 비록 느리더라도 올바른 길을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노동운동과 여성운동과 환경운동과 지역운동에게도 제안합니다. 돈벌이 논리가 압도하는 현실에서 이들을 설득하는 일은 당위만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강수돌이 '살림의 경제'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고 그코록 애쓰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관점은 이렇습니다. "'살림의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풀뿌리 민중의 삶이 어떻게 되는가이다." 경기가 아무리 좋은들 부자들 입으로만 다 들어가는데 그것 어디 쓰겠느냐는 물음이 성립되는 동시에, "남는 것은 결국 피폐한 자연과 병든 몸뚱이, 세상에 대한 원망, 두려움과 불안감뿐"이라는 답이 나오는 순간이지요.
이렇게 되는 원인은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효율성 개념에 숨어 있습니다. 생산성(효율성)을 높이려면 당연히 투입을 줄이거나 산출을 늘려야 합니다. 줄이기는 인원감축, 임금 삭감, 비정규직화, 원자재 무단 채취, 다단계 하청 등이고 늘리기는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 차별적 성과급제 따위가 될 것입니다.
물론 부패 척결이나 낭비 청산, 신기술이나 신기계·공정 도입 같은, 좋은 줄이기와 늘리고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줄이기와 늘리기의 대부분은 "개별 자본의 '돈벌이' 관점에서 보자면 생산적이지만, 인간의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는 더 없이 파괴적이다."
이를 일러주는 지표가 있습니다. "국내총생산 11위, 자동차 생산 6위, 선박 건조 1위, 조강 생산 5위, 전자제품 생산액 3위, 수출액 13위, 외환 보유액 4위, 1차 에너지 총소비 10위, 1인당 에너지 소비 17위". 그리고 "한 해 자살 1만3000명, 신용불량 300만 명, 단전·단수 100만 가구, 빈곤계층 700만 명, 7가구 가운데 한 곳은 실업 가정".
2. '살림의 경제' 핵심은 소통·연대·실천
강수돌은 다수 대중이 자본 논리를 내면화하고 그 파괴에 중독돼 가는 사회 내면도 따져 살핍니다. 초국적자본과 한미FTA가 설쳐대고 넘실대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숨은 모습도 손수 뒤집어 보여준답니다. 아울러 '복지국가'의 물적 토대라든지 거기 담겨 있는 수동성-타율성 같은 문제점도 함께 짚어봅니다.
복지국가는 특히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북유럽을 비롯한 복지국가라 일컬어지는 대부분 나라들이, 걸게 말하자면 제3세계에 대한 착취 수탈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자살률이 높은 보기를 들면서, 복지국가에도 소외(넓은 뜻에서)가 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단지 임금을 위해서가 아니라(그러니까 실업이라든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실현과 보람과 건전한 공동체 형성을 위하는 속에서, 제대로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꾸미는 것이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훨씬 나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살림의 경제(학)에서 핵심은 연대와 소통입니다. 아시는 그대로, 개별 활동·실천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수돌은 직접 참여와 직접 활동이 가능한 지역사회와 마을에 눈길을 보내면서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진영에게 진지하게 제안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기 이것은 물론 전부가 아니라 일부입니다. "생산력 증대 대가를 돈으로 받는 대신 '시간 주권'과 '삶의 주권'으로 연결"하고 "증가한 자유 시간이 다시 소비나 노동 등 자본 울타리 안에 묶이지 않고 대안사회 생성에 활용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등등.
이 책이 날리지 않는 까닭은 이 같은 강수돌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이는 고려대 교수 노릇을 하면서 충남 연기 서당골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는 마을 이장도 하고, 2008년에는 공공노조 사회공공연구소 소장도 맡았습니다.
그이는 마을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아파트 건립저지 투쟁을 벌였고 또 벌이고 있으며, 텃밭 가꾸기와 똥오줌으로 거름 만들기와 합성세제 안 쓰는 세수·설거지 따위도 하고 있습니다. '살림의 경제'를 위해 소통·연대·실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안사회 변화는 위로부터 급격히 오는 것보다 아래로부터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마치 '행복 바이러스'처럼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 더욱 건강하고 지속가능할 것이다." "'나부터' 행복바이러스의 토종 시앗을 하나씩, 정성껏 뿌려나가자." "더불어 느긋한 마음으로, 올바르고 행복하게 걸어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되고 희망이 된다!"
3. 세밀화로 되살린 옛날 '살림살이'
<살림살이>는 '겨레 전통도감' 기획의 첫 번째 책이랍니다. 전래놀이, 악기, 농기구, 탈놀음 따위가 뒤를 이을 것입니다. <살림살이>에 나오는 주인공은 30~40년 전만 해도 집안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세간들,입지요. <살림의 경제학>과는 사뭇 다르답니다.
그렇지만, <살림의 경제학> 지은이 강수돌 집에 가면 여럿 구경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스물네 절기로 나눠 살림살이를 풀어놓았습니다. 그리 풀어놓다 보니 한 해 살림이 되고 사람의 인생살이가 되고 한 집안과 한 마을 살림이 됐습니다.
"살림은 집에서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야. 살면서 하는 모든 활동이 다 살림이지. 농사 짓고, 집을 짓고, 집짐승을 키우고, 담을 쌓고, 농기구를 만들고, 다 자란 자식을 혼인시키는 것까지 말이야. 그러니 어느 한 사람 힘만으로 할 수 있겠어?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마음을 모아서 했지. 살림이란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지혜이자 나와 남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
강수돌이 내놓은 '살림의 경제'가 조금씩 실현이 되면 이런 '살림살이'들이, 이런저런 민속박물관 귀하고 깨끗한 자리에서 걸어 나와 부자 강박증과 일중독증과 성장 중독증과 무한 탐욕 따위를 말끔히 지우고 부엌 살강에 올라가 앉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림살이>를 아이들과 함께 읽다보면, 아이들에게 어떤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보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도 저리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무치는 짜릿함도 더불어 있습니다. 김치라든지 장을, 어떻게 담그면 되는지 따위도 같이 일러주거든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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