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자서전 대필 전문업체의 권유 편지

김훤주 2009. 3. 1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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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대필업 분야에 자영업자가 있는 줄은 진작 알았지만, 이처럼 전문 업체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가방을 뒤적거리다 보니 지난 1월 받았다가 그냥 넣어둔 이런 편지가 손에 잡혔습니다. 아마 선거철이 다가오니 신문사에 이리 보냈지 싶습니다만.

제 사는 동네서도 이런저런 이들이 ‘무슨무슨 언덕에 서서’ 따위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치러내기는 합니다. 저는 그이들이 적어도 초벌은 자기 손으로 쓰는 그런 자서전인 줄 알았습니다. 저도 몇 권 갖고 있는데, 본받을 구석이 하나는 있겠지 싶어 때때로 눈길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서울 ‘예아름미디어’라는 데서 제게 보낸 편지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보고 자서전을 내라는 것은 아니고요, 대충 살펴보니 자서전 대필해 주는 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돈이 된다는 것입니다.


“2010년 5월에는 광역단체장 16명, 기초단체장 232명, 지역의원 4167명 전국 교육감 16명과 교육위원 선출을 위한 선거가 있습니다. 이들 정원과 경쟁률을 감안할 때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은 2만 명 이상입니다”


“선거일 전 90일부터는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으니까, 예비 후보자는 자서전 작성 및 편집, 인쇄기간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2009년 11월 이전까지는 대필 자서전 출판을 의뢰해야 선거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지 주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특히 정치나 교육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분들이 자신의 홍보를 위해서도 아주 좋은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서전 시장은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선거출마 예상 인사를 대상으로 자서전 출판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필 사업에 참여할 지역 책임자와 일선 컨설팅 요원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역 책임자는 248개 시·군·구별로 덕망 있는 전·현직 언론인 혹은 유지를 모시고자 합니다.”

“지역 책임자로 직접 참여해 주시거나, 아니면 지역 책임자 또는 지역 요원을 소개해 주시거나 아니면 또는 자서전을 쓸 사람들을 소개해 주시라 요청합니다. 계약이 성사되면 규정에 따라 계약액의 일정 부분을 수당으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지역 책임자에게는 업무수행에 앞서 대필 자서전 출판 희망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물색,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직무교육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실적에 따라 업적수당을 추가로 지급합니다.”


그런 다음 ‘자서전을 써야 할 사람’ 1순위로 ‘선출직 출마 지망생’을 꼽으면서 “자서전을 주민들이 읽도록 한다면 인지도와 지지도가 월등히 향상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고는 “농협 축협 수협 등 각종 조합장”과 “기타 사회단체장 등”도 대상에 넣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서전 출판 과정’이 있는데요, “저자가 원할 경우 출판사 명의로 출판기념회를 주선”하며 “출판기념회의 축하금으로도 상당 부분 충당이 가능”하고,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자서전 출판 비용은 크게 부담되지 않습니다.”고까지 해 뒀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보고 조금 쓸데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제 몫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필한 자서전에는 자기 잘못이나 반성해야 할 구석을 드러내 보이는 부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자기 얘기를 아름답게 꾸미는 내용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이들은 아까운 나무를 잘라 만든 종이를 써서 만든 이 자서전을 또 사방팔방 뿌려대겠지요. 그러는 과정에서 선거법을 어기는 불법을 저지를 수도 있을 테지요. 이렇게 해서 자칫 잘못되면 선거에서 유권자들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업무)수당에 넘어갈 사이비 기자들이 통 없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해당 지역의 매체 종사자와 정치 지망생들이 어쩌면 이른바 커넥션을 형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이들 영업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 참 문제는 문제네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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