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겨울철 양산 통도사에서 본 싱싱한 들풀

김훤주 2008. 12. 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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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떤 시인에게서 ‘겨울이 되면 풀들이 다 말라 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시인과 흉허물 없이 말해도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아무 말 않았습니다만, 아무리 춥고 메마른 겨울이어도 풀이 죄 죽지는 않지요.

따뜻한 양지 바른 데 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곳에는 겨울에도 풀들이 싹을 내밀고 잎을 틔웁니다. 또 그런 자리는 낙엽 덕분이든 아니면 지형 때문이든 물기도 촉촉하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겨울에도 자랄 조건이 되면 자란다 이 말입니다.

멀리를 보면 실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를 봐야 실체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높이 들어 멀리 산을 보면 거기서 파란 풀을 볼 수 없습니다. 그냥 이미지만 머리에 남겨집니다. 그러나 고개 숙여 눈 앞 뜨락을 훑어보면, 거기에는 뚜렷한 실체를 가진 파릇한 풀이 있습니다.

이런 들판과 산에서는 멀리 눈길을 둘수록 실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13일, 양산 통도사 들어가는 길머리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이 풀들의 푸른 빛이 아주 장하기만 했습니다.낙엽 수북하게 쌓인 가운데에 이렇게 풀들이, 마치 민란이라도 일으키는 듯이 한꺼번에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여린 새순이 조금은 안타까웠지요.


겨울철에 이리 장한 푸른 풀들을 들판에서 눈에 담고 나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멀리 떨어진 데보다 가까운 데에 더 많이 눈길을 돌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공력에 힘입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돌려보니, 사람 사는 구체 정황과 나무와 풀들 살아가는 모습이 좀더 보이더라는 얘기입니다. 옛날에는 옆집에서 누가 나와도 그저 사람이겠거니 그냥 넘어갔는데 눈길 꽂고 보니 실감 있는 인간이더라는, 그래서 이웃 같은 느낌이 조금은 더 들었다는…….

물론 당연히 자연도 달라 보이겠지. 전에는 동요 ‘겨울나무’처럼 겨울이면 모든 나무가 딱 멈추는 줄 알았답니다. 그러나 뜨락을 한 번 뜯어보고 나서 달라졌겠지요. 딱한 것 같은 겨울나무도 보면 맨숭맨숭 잎눈과 보풀보풀 꽃눈이, 촘촘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들이 겨울에 열심히 생명 활동을 해서 잎과 꽃을 미리미리 안으로 준비를 한답니다. 겉으로 표시는 크게 나지 않지만.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가을에 낡은 잎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나무가 이런 눈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새 봄에 새 잎과 새 꽃을 밀어올리지 못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가까이 있는 풀과 나무와 옆집 아줌마 아저씨를 더 눈여겨 들여다보는 경험들을 하다 보면, 멀리 있는 고상한 존재들보다 가까이 있는 범상한 존재들과 더 친해질수록, 이처럼 여러 진실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더욱 커지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그렇지 않습니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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