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 그래서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리다 허망하게 숨져야 했던 한 여성의 짧은 삶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도 혜영씨와 이별하려 한다.

◇요절 시인 키츠를 좋아했던 그녀 = 여고 졸업과 함께 아버지를 잃고 이미 합격한 대학 진학마저 포기했던 혜영씨. 그 후 4년은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여성노동자로, 다시 4년은 아르바이트 비정규 노동자 겸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대학생이었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을 부양하는 가장까지, 1인 3역을 마다하지 않았던 혜영씨의 짧은 삶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좋아했던 영국의 요절 시인 키츠(1795~1821)와 닮아 있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도 그랬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위해 생업 전선에 나선 것도 같았다.

"누나라기 보다는 제2의 엄마와 같았어요. 힘든 일도 모두 누나와 의논했죠. 자기도 힘들면서 동생의 철없는 방황까지 이해하고 감싸줬던 누나였어요. 처음으로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고…, 정말 열심히 할 거라고 그랬는데…."

남동생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엄마같은 누나를 잃은 그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몸담고 있던 군부대에서 중사 승진시험에 합격하고도 탈락했다. 자포자기한 그는 군복마저 벗고 말았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의 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혜영씨의 사진들.


혜영씨를 잃은 그의 집안은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전화를 걸어오던 혜영씨의 학교친구들도 어머니가 매번 전화통을 붙들고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연락을 끊었다. 혜영씨가 재직했던 회사 사람들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입장도 요지부동이었다.

혜영씨의 마지막 월급까지 보태 변호사를 선임해봤지만, 1심 법원은 "망인이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사고 당시 과로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더라도 … 이와 같은 운전행위에 따른 망인의 사망은 그 업무수행에 기인된 과로에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어려운 말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 실의에 빠진 어머니는 항소를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변호사의 이야기라도 한 번 들어보자 싶었다. 그냥 눈에 띄는 법률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 참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처음 만난 변호사의 이 한 마디에 어머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1심에서 졌는데…, 해보면 될까요?"

"한 번 해봅시다. 복리후생이 열악한 회사일수록 통근버스도 제공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재해마저 차별받는 모순이 생기지요. 질 땐 지더라도 끝까지 법률적 판단을 받아봐야 할만한 사건입니다."

그 때가 2005년 10월이었다. 법무법인 미래로 도춘석 변호사는 수임료 대신 인지대만 받고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소송을 밀고 갔다.

"제대로 수임료를 받았다면 아마 대법원까지 못갔을 겁니다. 대부분의 유족이 몇 년씩 걸리는 긴 소송기간과 비용 때문에 1심이나 2심 정도에서 포기하곤 말죠."

도 변호사는 "혜영씨에 대한 자료를 읽고 난 뒤부터 밤에 집에 누워있어도 자꾸 생각이 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려 했던 그의 삶이 안타까워 포기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도춘석 변호사(왼쪽)가 소송 과정과 판결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4년 만에 승소 판결 받아냈지만 =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한 이 사건은 마침내 지난 9월 25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평균임금 1300일분의 유족보상과 장의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판결은 지난 7일 부산고법에서 최종 승소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혜영씨의 어머니를 부른 도 변호사는 깜짝 놀랐다. 딸을 잃은 후 겪어온 마음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후두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버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고맙습니다. 이제 딸도 영혼결혼이나마 시켜 주고, 아들도 장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네요."

군복을 벗은 남동생은 방황을 마치고 누나처럼 독하게 공부해 군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세상이 참 냉정하긴 하지만, 변호사님처럼 따뜻한 분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항상 동생 걱정을 하던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돌아서는 모자에게 기자도 한 마디 했다.

"빨리 건강 회복하시고요, 집에 가시면 전기장판만 때지 말고 보일러 좀 틀어 따뜻하게 하고 지내세요."

며칠 전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그들의 아파트는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던 것이다. <끝>

※이전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중)
※이전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상)
※관련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의 짦은 삶, 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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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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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효진 2008.11.19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나라에서는 맘 편히 하고 싶은 일, 공부 해가며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남아있는 가족분들도 힘드시겠지만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행운을 빕니다.

  2. Favicon of http://kkuks81.tistory.com 바람몰이 2008.11.19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완, 김훤주 기자님 혜영씨 관련 글 하나도 빠짐 없이 잘 읽었습니다.

    마치 제 여동생을 보는 듯 하여(혜영씨와 동갑)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행이 대법원까지 가 승소하여 좀 위안이 됩니다만..

    또 다른 어느 곳에 제2의 혜영씨가 있을 지 모른다는 마음에 가슴아픕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꾸준히 활동해주시고, 말 그대로 약한 자의 힘이 되어주는 기자님들 되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3. 2008.11.19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blog.shinwonpat.com 와초우 2008.11.19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가족들의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아무리 생각해도 당사자들의 맘 근처도 못가겠지요.
    아직도 부당한 대우에 많은 젊은이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실비단안개 2008.11.19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변호사도 있군요.()

    어머님과 동생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구요,
    어머님 건강이 꼭 회복되시길 빕니다.()

  6. Favicon of http://blog.daum.net/ymj5588 물망초5 2008.11.19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딸 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혜영에게 .....
    저와 같은 일을 당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일들과 너무도 힘든 현실에 목이 메이고
    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불행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요
    억울한 죽음에 명예까지 더럽혀지게 한 사람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진실이 밝혀져서 제 딸이 평안하게 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대한송유관에 입사하여 인사과장으로부터 직장내성희롱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살해된 사건에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래봅니다

  7. 트라이피스 2008.11.19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춘석 변호사님의 도움에도 정말 감사드리네요.. 인지만 받고 해주셨다니..

    저도 소송을 몇 번 해본 결과 얼마나 돈과 시간.. 노력이 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당한 일이 있어도 돈과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없으면 항소를 포기하게 되는 현실..

    여기저기에서 어용검찰 기회주의 판사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도춘석 변호사 같은 분과 민변같은 협회가 있는 이상..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8. Neo 2008.11.19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젯밤에 '상''중'글을 읽고, 기다렸는데, '하'글이 올라왔네요.
    잘 읽었습니다. 눈물이 흐르는 건 저만은 아닐텝니다.
    26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망인과 그 망인의 뒤를 바라보던 유가족들의 삶을 생각하면,
    남일 같지는 않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분을 만나서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과는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요 몇일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읽으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적지 않는 기부를 한 사람에게, 되먹지 못한 글을 적어 비방하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이나..
    공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세금을 사용하며 못된 권위의식을 가지고, 도박까지 하면서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이나..
    자신의 과오로 한 이혼에서 거짓을 말하며, 전처가 사망하자, 재산에 관심을 같는 사람이나..
    뭐가 자유민주주의인지도 모르는, 스스로 아집에 차있는, 소위 이 사회의 기득권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씁쓸하기도 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스스로는 보면서 한심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래도, 아직은 남을 도우시는 좋은 분들이 많으시고,
    가진것들을 나누려는 분들이 많은 이 사회를 보면서, 괜히 가슴이 따뜻해지고, 뭉클하고 그럽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9. 시은 2008.11.21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국의 법 질서를 개탄합니다.
    또한 도춘석 변호사님과 같은 아직 살아있는 양심이 이 사회에 남아 있음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혜영씨의 명복과 남아있는 그 가족의 행복을 빕니다.

    저 역시 혜영씨의 짧은 인생 바라보며 희망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

  10. 바라기 2008.11.24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르는 사이 이 세상 우리나라 우리이웃에서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나네요. 그 와중에 혜영님과 같은 안타까운 일도 있었구요.
    어머님의 간절한 마음에 도춘석 변호사님같은 좋은분을 만나시게 되었나봅니다.
    전 도춘석 변호사님께 참 감사한 맘이 드네요. 어려운 형편도 살펴주시고, 또 열악한 환경의 근로자입장도 살펴주시구요.
    좋은 님들이 계셔서 이 세상 우리나라 우리이웃이 아직은 살아갈만한가봅니다.

    혜영님의 명복을 빌며 가족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11. 강판성 2008.12.12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물이나네......

  12. 모노폴리 2009.03.01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고 눈물이 납니다.
    제가 얼마나 안이하고 편하게 살았는지 돌아보게되네요..
    혜영씨 동생분과 모친 모두 행복한 삶을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모자가 혜영씨 몫까지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시길..

  13. cocomo 2009.03.01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상,중,하)모두 잘 읽었습니다.
    참... 정말 힘든 삶을 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개개인은 열정을 다해서 살고 있다면 누군가는 복지와 안정, 노동 강도 조절에 힘쓰는 역할을 해서
    균형있는 삶을 살게끔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 말이죠.
    그래도 다행이 도춘석 변호사께서 도와주셔서 영혼이라도 달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